[새말새몸짓 뉴스레터 #017] 왜 생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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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목적은 생존!! 생존은 삶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나와 세상을 바꾸는 만남 (사)새말새몸짓 새말새몸짓 뉴스레터 #017 2021.09.27 왜 생존일까요? 지난주 공개된 생존철학 3편에서 철학자 최진석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래 영상과 글을 함께 소개합니다. (*ep.03편의 일부 내용을 발췌합니다. ) 우리의 삶의 전략이 고도화 된 것, 그것을 우리는 지식이라고 합니다. 아직 우리는 지식 생산국이 아닌 지식 수입국입니다. 지식 수입국이라는 말은 내 삶의 전략을 내 피와 내 땀과 내 욕망으로 건설한 것이 아니라,다른 사람의 피와 다른 사람의 땀과 다른 사람의 욕망으로 내 삶을 컨트롤하고, 조정한다는 뜻 입니다. 우리는 왜 창의적이지 않은가? 우리는 왜 자유롭지 않은가? 우리는 왜 독립적이지 않은가? 하는 것은 우리 삶의 전략이 우리로부터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는 단 하나의 방법 밖에는 없어요. 우리 생존의 전략, 우리 삶의 전략을 이제는 건설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건설하지 않고,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독립적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주체적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창의적일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있는 이론을 우리 삶에 적용하려는 태도보다는 나한테 문제가 있는지? 나는 어떤 불편함을 느끼는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이런 문제와 불편함을 먼저 살피는 태도가 일어나려면, 우리 삶의 목적. 생존! 생존의 질과 양을 증기시킨다는 이 목적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최진석, <생존철학>EP_03 중에서 자유란, 모든 것이 나로부터 말미암은 상태 (중략) 앞서 장자 이야기를 하다 보니 ‘종속적 주체’와 ‘능동적 주체’를 말한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가 떠오른다. 그는 근대 사회는 주로 종속적 주체들로 구성되었지만,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능동적 주체로 구성된 삶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코는 근대적 인간을 왜 종속적인 주체라고 했는가? 여기서 먼저 ‘주체’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무슨 활동을 하거나 판단을 할 때 자기 자신이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판단하는 것이다. 이때 자기가 주도적인 결정과 행동을 한다고 여기는 자의식이 있는 상태의 사람을 주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나라고 하는 자의식이 보통 자기로부터 생산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이미 만들어진 보편적인 생각을 각자가 내면화해서 그것을 ‘나’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활동하고, 자신이 생산하고, 자신이 생각하고, 자신이 판단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주체지만, 그 주체가 가지고 있는 의식이 자신에 의해서 형성되지 않고 외부에 존재하는 보편적 의식을 내면화한 것이라는 의미에서는 종속적이다. 종속적 주체는 비록 주체지만 아직 피지배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성을 갖춘 주체라고 하기 어렵다. 종속적 주체는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나 이념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지,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독립적으로 건설하고 실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푸코는 이런 종속적 주체성을 벗어나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능동적 주체란 무슨 의미인가? 자기만이 자신의 주인인 주체다. 자신이 하는 판단과 행위가 모두 자기의 결정으로부터 나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주체, 이 사람이 능동적 주체다. 종속적 주체는 내면화된 이념이나 가치가 주인이기에 그것들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해져서 대답에 익숙하다. 능동적 주체는 자신이 주인이기 때문에,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근본적인 토대인 궁금증과 호기심이 살아 있다. 그래서 질문을 할 수 있다. 능동적 주체는 이렇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주체로 등장한다. 능동적 주체를 장자식으로 표현하면, 자신을 지배하던 규정적 관념, 즉 성심(成心)으로부터 벗어나 소요(逍遙)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다. 그것을 일반화하여 ‘자유(自由)’라고 표현해도 된다. ‘자유’라는 말 자체가 ‘자기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자기가 주인이라는 뜻이다. ‘자유’라는 말 주위에 있는 ‘자율(自律)’ ‘자정(自正)’ ‘자정(自定)’ 등에도 모두 이런 의미가 포함된다. 모든 것이 자기로부터 말미암기 위해서는 자기 이오의 것들은 다 자신의 외부에 있어야 한다. 자기안에는 오로지 자기만 있다. 자기 이외의 것들은 자기를 키우고 단단하게 하는 수단으로만 사용될 뿐이다. 자기 안에 오로지 자기만 남긴 상태를 동양의 많은 고전에서는 ‘허심(虛心)’ 혹은 ‘무심(無心)’으로 표현한다. 외부로부터 들어와 자기를 지배하는 기존의 정해진 가치관을 버리고 오직 자기로만 자기를 채우는 것을 뜻한다. 처음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형성된 것이라 해도 이미 고정되어 이제는 자신을 고착화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사실은 이미 외화(外化)된 것으로 취급하고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이렇게 해야 내가 비로소 주인으로 등장한다.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21세기북스, 2018, 219~221쪽 중에서 (사)새말새몸짓 홈페이지에서는 새말새몸짓의 활동을 소개하고 참여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만, 늘 새말새몸짓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아울러, 저희는 비영리법인으로 후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들의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새말새몸짓 회원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내역은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사)새말새몸짓 www.nwna.or.kr | newwordnewattitude@naver.com 서울시 서초구 청계산로 207(신원동, 신일해피트리앤), 501호 수신거부 Unsubscri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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