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밀다, 즉 건너가기란 모든 종교, 과학, 사상, 기술, 삶에서 인간이 발휘하는 능력 가운데 최고의 능력이라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건너가기란 문명의 동력인 창의적인 활동의 핵심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문명을 건설하는 존재입니다. 영혼이 병들지 않는 한, 인간은 문명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문명을 건설하는 존재이고, 문명을 건설할 때 인간이 하는 활동을 문화(文化)라고 칭합니다. 문화란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활동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 가운데 세상에 더 공헌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사람이 되겠죠.
그렇습니다. 인간은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문화적 존재입니다. 인간에 대하여 이보다 더 근본적인 정의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문화적 존재라는 전제를 딛고서야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정의가 내려지는 순간 사람은 두 층위로 나뉩니다. 무언가를 생각하여 무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사람과, 누군가가 야기한 변화를 수용하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변화를 야기하려면, 멈춰 있지 않아야 합니다. 멈추면 멈춰 선 그 자리가 그 사람의 한계입니다. 딱 거기까지만 살다 갈 것입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어쩔 수 없이 계속 다른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구걸하거나, 힐링을 찾으며 심리적인 편안함을 행복으로 착각하다 가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한 번 가진 확신이나 이념을 평생 지키는, 고루한 동네 현자(鄕原)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멈추면 끝입니다. 딱 거기까지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완성되는 길을 걷기 위해서는 건너가기를 실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술 작품이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일 것입니다. 자코메티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건너가기 외에 다른 길은 없다,” “멈춰 서서 죽음을 기다리지 말고, 끝까지 걷다가 죽어라.” 사람들은 보통 건너가는 자를 자유롭다고, 창의적, 독립적, 주체적이라고 평가합니다. 대신 건너가기를 멈추고 다른 사람이 야기한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수용하기만 하는 사람은 종속적이라고 평가합니다.
자유로운 자는 건너가는 자입니다.
독립적인 자는 건너가는 자입니다.
창의적인 자는 건너가는 자입니다.
주체적인 자는 건너가는 자입니다.
대답하는 자는 멈춰 있는 자이고, 질문하는 자는 건너가는 자입니다. 모든 질문은 아직 해석되지 않은 곳을 상상하는 행위입니다. 아직 설명되지 않은 것을 꿈꾸는 행위입니다. 그러니 질문은 바라밀다이고, 대답은 상에 갇혀 멈춰선 격입니다.
인간이 근본적인 의미에서 문화적 존재라면, 인간은 건너가는 자로 태어난 것이 확실합니다. 인간은 건너가도록 태어난 존재이므로, 깨달음이란 결국 자기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는지를 각성하고, 그대로 살 수 있는 용기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는 지적 능력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습니다. 심지어 지혜는 지적 능력 그 자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것에 대해서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 그것을 ‘앎’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해석된 것, 설명된 것을 받아들이는 지적 활동은, 즉 지식을 흡수하기만 하는 지적 활동은 멈춰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멈춰선 지식을 디딤돌 삼아 다시금 모르는 곳, 아직 해석되지 않은 곳으로, 아직 설명되지 않은 곳으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건너가려고 몸부림치는 것, 이것이 지금 맥락에서의 앎입니다.
짧게 말하면, 진정한 앎은 건너가려는 몸부림 자체입니다. 자녀나 학생들에게 무엇을 알게 해주느라 애쓰다가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없애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태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알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자가 인간이고, 천재이고, 아는 자입니다. 알고 싶어하는 몸부림이 바로 건너가기죠. 다시 말해 건너가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고, 이것이 지혜입니다. 건너가는 태도 자체가 바라밀다입니다.
피안이라는 아주 높은 경지가 정해져 있고, 정해진 그 높은 경지를 향해서 부단히 나아간다고 하면 아주 멋진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것만이 바라밀다는 아닙니다. 어디에 서 있건 지금 이 자리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음을 도모하는 것, 익숙함을 뒤로 하고 낯설면서도 위험하고도 해석되지 않은 곳으로 건너가는 용기 있는 동작, 이것이 바라밀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