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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163] 지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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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1회   작성일Date 25-04-2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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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는 자유에 대한 지식은 있는데 자유롭지 못할까?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나는데도 왜 우리는 더 유
    나와 세상을 바꾸는 만남  
    (사)새말새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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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163
    2024. 7. 15.

    안녕하세요? 새말새몸짓입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철학자 최진석의 글은 <지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입니다. 일찍이 철학자는 '명사에서 벗어나 동사로서 존재하라'는 명제를 강조하였습니다. 이 글도 이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는데요, 인문학을 하나의 활동의 씨앗으로 보고있는 철학자의 시선을 한번 살펴보세요.  

    이번 한 주도 새 말 새 몸짓으로, 경쾌하게 건너가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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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지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자유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은 있는데 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할까?

    행복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은 있는데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까?

    긴 시간동안 다양한 방면에서 인문학적 지식을 접촉했음에도 그 인문학 지식이

    왜 우리 삶에서는 구체화되지 않을까?

    왜 나는 행복에 대한 지식만 쌓지 정작 내 자신의 행복한 삶을 꿈꾸고 실천하지 못할까?

    왜 나는 자유에 대한 지식만 쌓지 정작 내 자유로운 삶을 생각하지 못할까?

    왜 나는 행복과 자유를 창조하지 못할까?

     

    우리는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들을 배웁니다. 대개는 서양의 그것들 또는 중국의 그것들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철학자나 문학가들의 것들도 배웁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식의 형태로 받아들이는 그것들이 그것을 산출한 바로 그 생산자들에게는 체계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삶이었지요. 바로 현장(現場)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고 삶의 표현들이죠. 율동의 일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는 그 사람들의 삶의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삶의 율동으로서의 인문적 지식을 만들 때 개입되었던 그들의 땀 냄새, 고뇌, 희망, 번민, 갈증의 느낌 등등은 세탁되어 버립니다. 그들을 둘러싸던 부산스러운 저잣거리의 소음들, 바람 소리, 흙먼지, 싸움 소리 등등도 제거되어 버립니다. 역사의 뒤틀림, 혁명의 열정, 미래를 마주하는 불안한 눈빛들도 탈색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율동감이 사라진 고요와 창백한 추상만 남습니다. 우리가 흡수한 지식 체계는 그렇게 남겨진 것입니다. 사건은 잊혀지고, 사건이 남긴 지식만 갖게 되는 것이지요. 사건과 지식 사이의 유기적 관계에 대한 체득은 사라지고, 창백한 지식만 남게 됩니다.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냐? 인문학은 지식이 아니라 활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문학 공부하는 것이 고시 공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인문적 지식이 마치 법조문 외우듯이 하나의 지식 체계로 흡수되어 있으면 거기에서 무슨 지혜의 빛이 발광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인문적 지식을 가지고 어떻게 인문적 활동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자유에 대한 지식은 있는데 자유롭지 못할까?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나는데도 왜 우리는 더 유연하지 않을까? 왜 우리는 더 행복하지 않을까? 이제 이 질문에 답해 봅시다. 저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우리한테는 지식을 지혜로 숙성시키거나 자기가 아는 지식과 경험을 유연함, 행복, 창의성 등과 같은 인격적 단계로 밀어 올릴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지식이 지혜로 넘어가고, 이미 있는 경험의 기억이나 지적 체계들이 삶의 동심원을 더 활발하게 펼쳐줄 수 있는 활동의 힘이 갖춰져야 합니다. 체계가 아니라 힘입니다! 그 힘을 저는 ‘주체력’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인문력’이라고 하면 너무 억지일까요?

     

    여러분들도 ‘덕(德)’이라는 말은 한 번쯤 들어 보셨죠? 주체력과 관련해서 우리는 ‘덕’이라는 말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진석, 『인간이 그리는 무늬』, 소나무, 2013, 161-164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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