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로그인
  • 참여
  • 공지사항
  • 참여

    공지사항

    [새말새몸짓 레터 #128]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1)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4회   작성일Date 23-11-27 10:02

    본문

    2663_1503300334.png
    새말새몸짓 레터 #128
    2023. 11. 13.

    안녕하세요? 새말새몸짓입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철학자 최진석의 글은 소설 <노인과 바다>의 독후감입니다.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에 수록되어 있는 부분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주는 그 앞부분을 먼저 소개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이번 한 주도 새 말 새 몸짓으로 힘차게 한 걸음 더 나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1)



    평생 한 가지 일에 자기를 모두 바치며 살아온 사람들의 말에서는 구도자의 기품이 느껴진다. 진실하게 자신을 모두 바치면 구도자가 된다.


    어부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출렁이는 바다와 헤밍웨이의 원고지 사이는 부부처럼 가깝다. 헤밍웨이는 원고지를 바다 삼아 낚시하고,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바다를 원고지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고기가 물고기로 태어난 것처럼 나도 어부로 태어났을 뿐이야.” 자기를 향해 진실하게 오래 걸어온 그는 투쟁 대상인 물고기도 자기 자신의 길을 간다는 동질감을 느끼고 그와의 경계를 과감하게 허물어버린다. 


    세상의 이치는 어부도 물고기도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진실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를 속여선 안 된다.” 자기에게 진실하면 누군가를 필요로 하며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오랜 시간 고기를 잡지 못하던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거대한 청새치를 잡아 항구로 돌아가는 길에 상어 떼들이 그의 업적에 손상을 내려고 달려들자 그는 그들과 싸워 물리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하는 것이다.


    “노인은 뱃전 너머로 몸을 기울여 상어가 물어뜯은 그 자리에서 물고기의 살점을 한 점 떼어내었다. 그리고는 그걸 입에 넣고 먹으며 고기의 질과 좋은 맛을 음미했다.” 결국 이렇게 그는 세계와의 온전한 합일을 이뤄낸다. 자기를 향해 진실하게 오래 걸으면 언젠가는 정치적이거나 도덕적인 담장들을 밀쳐 넘어뜨릴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자신의 길을 가는 인간이 이룰 수 있는 품위의 한 형태다. 노인은 물고기 잡는 실력을 넘어 고단한 노동으로 단련해 낸 기품을 가진 한 인간으로 홀로 서 있다.


    보통의 어부가 84일 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다면 우선 스스로에게 망신이다. 그러나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조건과 환경을 탓하지 않듯이 자기도 탓하지 않는다. 몇 번이나 체면을 구긴 경험을 뒤로하고 마침내 자기의 공(功)을 크게 세운 사람을 만나면, 그 공을 이루게 한 가장 근본적인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진다.

    산티아고에게는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한 문장을 발견했다. “내일은 멋진 날이 되겠구나.” 인생을 아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이런 자들은 묵묵히 자기를 향해 걷는 자들이면서, 자기를 책망하는 대신에 모든 사람이 떠나가더라도 끝까지 혼자 남아 자기를 사랑하고 지킨다. 이들의 주문은 효험이 있다. 자기를 비루하게 여기고 쉽게 지치는 사람은 물고리를 못 잡은 지 85일째가 되던 날 바다로 나가면서 “85는 행운의 숫자이지”라고 말하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낙관적인 내공 앞에서 부끄러움을 감추기 어렵다. 희망을 잃지 않으면 어디에나 자기를 위해 마련된 높은 자리가 있다.

    이런 낙관적인 자세는 자기를 믿는 자만 가질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주변을 탓하지 않는다.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던 84일을 포함해서 사자 꿈을 꾸며 곤한 잠에 빠지기까지 나는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남이나 환경을 탓하는 불평 한마디를 들어본 적이 없다.

    탓하지 않는 자는 빌리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빌리지. 나중에는 구걸하게 돼.” 나는 제우스가 무엇을 빌려 썼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이 노인네에게서 오히려 존재의 당당함이 더욱 빛난다. “그에 관한 모든 것은 눈을 제외하곤 전부 노쇠했는데 두 눈은 바다 색깔을 띠고 기운찼으며 패배를 모르는 듯했다.” 나는 이런 눈빛을 가졌는가. 나는 이런 눈빛을 가지려고 단련을 하는가.

    이런 눈빛을 가지고 당당하게 존재하는 자들에게서는 향기가 난다. 공자도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동조자가 있다.”(德不孤, 必有隣)라고 말하면서 그 향기에 취해 궁극의 신뢰를 보여주는 사람의 출현을 확신한다. 산티아고 할아버지에게는 마놀린이 바로 그랬다.

    (다음주에 계속)




    최진석,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 열림원, 2022, 148-151

    48760_1668340092.png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