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염치
초기 자본을 집 장사로 마련했다는 부자가 있다. 내용인즉슨 허름한 집을 싼값에 사서 고친 다음에 가격을 올려 되파는 일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집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정작 돈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 집의 구조나, 벽체나 하수관, 상수관 등 숨겨진 것들은 따지지 않고, 상대적으로 돈이 덜 들어가는 벽지, 샹들리에, 수도꼭지, 변기나 욕조 등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고 구매를 결정하기 때문이란다. 구조를 보지 않고 현상만 보는 피상적인 구매자들 덕분에 돈을 벌 수 있었다 한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구조를 중요하게 살피지 않으면 겉만 번지르르하고 기실은 튼튼하지 않은 집들로 가득 찬 동네가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의 삶은 “생존의 질과 양 증가”라는 한 문구에 수렴한다. 인간을 지도하는 문장으로서는 입구이자 출구다.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려는 분투 노력이 인간의 문명사인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생존의 질과 양을 효율적으로 더 잘 증가시킬 수 있는 장치를 누가 갖느냐가 관건이 된다. 그 장치가 바로 생각이다. 생각할 줄 알면, 눈에 보이는 것을 제어하는 구조·논리·가치·의미 등과 같이 안 보이게 숨어 있는 것에 파고들 수 있다. 생각할 줄 모르면, 안 보이는 것에 접근할 능력이 없어서 눈에 보이는 현상을 다루는 일만 하게 된다.
생각은 생각대로 잘 작동하지 않는다. 그때그때의 심리상태나 감정이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집단 등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지적으로 단련해야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지적인 단련의 가장 기초가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논리를 따르는 것인데, 감정을 따르는 것은 즉각적이어서 쉽고, 논리를 따르는 것은 생각하는 수고가 들어가므로 어렵다. 단련되지 않으면 어려운 쪽을 피하고 쉬운 쪽을 택하기 쉽다. 우리는 지금까지 생각의 결과를 수입해서 살았지, 아직 스스로 생각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지식 생산국이 아니라 지식 수입국이라는 뜻이다. 선도국가가 아니라 추격국가로 살았다는 뜻도 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삶을 살지 못하면 논리보다는 쉽게 감정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구조를 살피지 않고 현상만 보고 피상적인 감각으로 집을 구매하는 것과 같다. 논리란 생각의 구조이자 말의 질서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 후 ‘굴욕외교’를 하고 왔다고 항의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생각할 줄 알면, 생각의 구조와 말의 질서를 지키기 때문에 범한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굴욕외교’ 자체에 일관되게 항의할 것이다. 생각하는 능력이 배양되어 있지 않으면, 논리를 지키지 않고 감정을 따르기 때문에 선택적으로 항의한다. 대한민국 외교사에서 가장 굴욕적인 장면은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혼밥’을 하고, 수행 기자들은 중국 경호 요원들에게 두들겨 맞았을 뿐 아니라, 대통령은 심지어 중국을 ‘대국’ ‘높은 산봉우리’로, 한국을 ‘작은 나라’로 표현하고, 중국의 ‘꿈에 함께 할 것’을 약속하는 데에서 보인다. 대한민국의 주중 대사는 신임장을 제정하는 날,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고 썼다. 제후가 천자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는 말이다. 중국을 천자국으로, 대한민국을 제후국으로 쓴 이 말보다 더한 굴욕외교는 대한민국 외교사에 아직 없다. 문재인의 그것은 굴욕외교로 느껴지지 않고, 윤석열의 그것만 굴욕외교로 보이고 가슴이 찢어질 듯 분하다면, 스스로는 나라를 위하고 민족을 위하여 항의하는 것으로 인식하겠지만, 사실은 그냥 감정적인 분풀이 이상이 아니다.
윤석열 정권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이 문재인 정권을 ‘주사파공화국’이라고 비판했었다. 주사파 운동권 출신들로 대부분의 자리를 채운 것을 문제 삼았다. 여기서 논리적으로 다룰 문제는 ‘인사 편중’이다. 생각할 줄 안다면 자신이 비판하던 내용 그대로는 차마 따라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조(논리)를 살피지 않고 피상적인 감각으로 집을 사는 사람처럼 하다가 윤석열 정권도 결국 ‘검찰 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듣는다. 문재인 대통령을 거짓말한다고 비판한 사람들은, 거짓말을 안 해야 논리를 지키는 지적 태도를 가진 격이 된다. 하지만 거짓말은 윤석열 대통령도 이미 적지 않게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이나 다 거짓말하고 ‘내로남불’이다. 한쪽의 거짓말만 거슬린다면, 논리를 지키는 심장은 이미 쪼그라든 것이다. 한쪽의 ‘내로남불’만 머리에 남는다면, 생각하는 능력이 거세된 것이다.
이 글이 누구 편을 들고 있는지를 따지는 것보다 한국이 생각의 한계에 갇혔음을 인지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생각이 있어야 말의 질서를 지킬 수 있다. 말의 질서를 못 지킬 때, 인간은 최소한 양심에 동요가 일어난다. 양심에 동요가 일어나면, 염치나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생각이 있어야 염치도 있다. 우리 사회 지도층에 염치가 사라진 것은 위험한 신호다. 대한민국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기실은 부실한 나라일 수도 있다.
최진석, <생각과 염치>,
《중앙일보》, 2023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