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개조’를 많이 이야기한다. 옳은 일이다. 그렇다면 그 ‘국가 개조’의 방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국가 목표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잘 맞추어 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정도로 발전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해방이후에는 국가 목표가 반드시 ‘건국’(새 정부 수립)일 수밖에 없다. 소란스러운 풍경이 있지만, 그래도 건국이라는 국가 목표를 잘 완수했다. 건국이라는 목표는 잘 설정되었고, 또 잘 실현되었다. 건국 이후의 목표는 당연히 국가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산업화’는 건국 다음에 설정되어야 할 당연한 국가 목표다. 또 매우 적절했다. 현실에 맞는 적절한 어젠다 설정은 국가를 효율적으로 전진하게 한다. 우리는 그렇게 했다. 그 다음에는 당연히 정치적 수준의 상승이 필요했다. 그래서 국가 목표는 ‘민주화’가 되었고, 그것도 잘 실현되었다.
자! 이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제까지 우리가 견지한 목표의 설정과 실천이 모두 눈에 보이는 차원의 일었다면,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을 읽으면서 하는 차원으로 상승해야 한다. 바로 ‘선진화’다. 선도할 수 있는 차원으로 상승해야 한다. 음악가가 예술가로 상승해야 하듯이,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상승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길은 외부자들의 철학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훈고의 기풍을 벗어나서 철학적 활동으로 생기를 되찾는 창의의 여정으로만 실현된다. 철학을 하는 길이 독립의 길이고, 창조의 길이며,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불가능성이 훨씬 큰 길이다. 일대 혁명이 아니면 도달하기 어려운 일이다. 선례도 없다. 이제 구체적인 전략과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데, 가능할까? 어쨌든 나는 한번 몰두해 볼 요량이다.
벌레 먹은 콩을 골라내는 단순한 일을 반복하다가 가벼워진 나는 이미 있는 이론에 철두철미해지기보다는 세계에 직접 한번 닿아보려고 했다. 이론을 가지고 세계를 보려 하지 않고, 세계에 직접 접촉하여 문제를 만나 보려 했다. 문제가 보이면 그때 필요한 이론을 얻어다 써 보려고 했을 뿐이다.
나는 문제아로 남고 싶었지, 정해진 이론에 의하여 모범적으로 정련되는 것을 싫어했다. 구멍이 좀 듬성듬성 나고 허점이 가려지지 않더라도, 그냥 그렇게 걷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하여 나는 나의 현실에서 생산되지 않았으면서도 고급스런 포장에 담겨 수입된 이론이 나에게 그렇게 큰 가치가 있는게 아니란 것 정도는 알게 되었다. 내가 철학을 공부하던 그 많은 시간들이 왜 그렇게 재미가 없었는지, 그 이유도 알았다. 적어도 내 생명은 어디에도 종속시키지 않고, 좀 촌스럽더라도 내 것으로만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나와 철학과 창조와 독립과 국가개조는 이렇게 해서 한 교차로에 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