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규정하는 말은 적지 않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파베르, 호모 루덴스, 호모 이코노미쿠스 등.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드는 일을 기준으로 한 분류들이다. 이런 모든 분류를 하나로 통합하여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말하면, '인간은 문화적 존재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도전에 나서지 않는 인간은 인간적이지 않다.
문명은 인공적이고 조작적인 것이며, 이런 문명을 쌓는 인간은 인공적이고 조작적인 활동을 하는 존재라는 것을 철저하게 인식해야 한다. 인공과 조작을 거부하고, 그냥 아무렇게나 하거나 내버려두는 것을 자연이라고 하면서 높은 차원의 것으로 인식하는 흐름이 있는데, 이는 인간적이라기보다는 패배적인 자세일 뿐이다.
문명을 건설하는 사명을 가진 인간에게 '자연적'이라는 말은 인위와 조작적 활동의 결과를 원래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경지까지 끌어 올렸다는 것이지, 인위와 조작을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인간적인 삶은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하를 야기하는 삶이다. 다시 말해,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이고 창의적으로 사는 삶이다. 이런 삶의 태도는 있던 곳에서 없던 곳으로 나아가게 한다. 즉, 변화를 야기한다. 아직 인식되지 않은 곳, 아직 경험된 적이 없는 곳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근본적인 의미에 닿아 있는 인간이라면 머무르지 않는다. 혁명의 깃발을 완장으로 바꾸지 않는다. '지속 부정'과 '새 말 새 몸짓'으로 무장한다. 지금 우리에게 '새 말 새 몸짓'은 무엇인가?
제도의 높이에서 멈춘 상태를 넘어 삶의 태도의 관점의 혁신을 감행해야 한다.철학과 과학과 문화적인 높이로 상승하는 일이다.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 선진국 높이로 올라서는 도전을 감행해야 한다. 바로 문화적이고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단계로 상승하는 일이다.
건국과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 신화는 물건과 제도의 높이에서 이룬 발전이다. 후진국과 중진국 정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제 이런 성공 신화를 뒤로 물리치고 한 단계 더 높고 새로운 신화를 써야 한다.
산업화 세력이 건국 세력을 도태시키고 새로 등장했듯이, 민주화 세력이 산업화 세력을 밀어내고 나라를 새롭게 했듯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새 말 새 몸짓'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력이 민주화 세력을 도태시키는 도전이다.
민주화 단계까지 올라서면서 하던 이야기와 주장을 아직도 계속하면서 그것을 지키려고만 하고 있다면, 당신이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아직 인간적이지 않다. 권력과 재력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인간으로는 미성숙 상태에 있다. 깃발을 완장으로 바꿔 차고 그저 그렇게 살고 있는 사소한 사람일 뿐이다.
최진석,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2021, 252-2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