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자가 감당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짐은 뭐니 뭐니 해도 그 말이 옳은지의 여부다. 누구든지 자신의 말을 옳은 말로 확신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말을 하겠는가? 전문 사기꾼이라도 스스로 옳은 말을 하는 자로 확신하지 않으면 사기 행각은 성공하기 힘들다.
세상의 모든 말은 각자에게 다 옳은 말이다. 틀린 말과 옳은 말 사이의 다툼은 간단하다. 틀린 말은 지고 옳은 말은 이겨야 한다는 당위를 동반하기 때문에 옳은 말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세상의 거의 모든 다툼은 옳은 말들끼리 벌어진다. 심지어 예수와 율법주의자들의 다툼도 이치는 같다.
예수는 자신이 옳다 하고,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옳다 했다. 우파는 자신이 옳다 하고, 좌파는 자신이 옳다 한다. 사회주의자는 끝까지 자신이 옳다 하고, 자본주의자는 끝까지 자신이 옳다 한다. 이러하다면, 세상의 거의 모든 다툼은 옳은 말과 옳은 말 사이의 다툼이다. 그래서 세상은 해결되는 일이 없이 언제나 혼란스럽다.
옳은 말과 그른 말 사이의 다툼은 간단한 일이지만, 옳은 말과 옳은 말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툼은 논쟁과 토론으로 해결이 안 된다. 우리는 대화로 서로를 설득하여 양쪽이 조금씩 양보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이는 관념에서나 가능하지 실제 세계에서는 없을 일이다. 양보가 실제로 일어났다면, 이는 필시 말로 한 대화의 힘이 아니라 말을 넘어선 어떤 것의 압력에 의한 것이다.
그럼 주도권은 누구에게로 가는가? 그것은 옳고 그름 너머의 다른 어떤 힘을 가진 자에게로 간다. 그래서 주먹이 있고, 정치가 있고, 전쟁이 있다. 주먹도 정치도 전쟁도 옳은 말과 옳은 말 사이의 다툼을 넘어서는 특별한 방식이다. 말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최진석, 「나는 말한다, 좌파와 우파에 대하여」 중에서 발췌,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2021, 118-1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