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독립'을 생각한다.
삼전도의 치욕 국가는 배타적인 경계 안에서 공통의 가치와 이익을 함께 누리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기 위해 만든 제도다. 여기서 ‘배타적’이라는 말은 나라의 근본 토대를 표현한다. 배타적으로 확보되는 존재성이 바로 ‘독립’이므로, 독립은 나라의 존엄을 가리키는 가장 선명한 명제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자신의 ‘독립’을 조금이라도 침해하는 일에는 가장 예민하고도 과격하게 반응해야 한다. 얼마나 견결하게 영토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느냐가 ‘독립’을 지키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를 증명한다. 중국도 ‘핵심 이익’이라는 사항을 정해 놓고 국가로서의 위엄을 과시한다. 우리의 핵심 이익은 무엇인가? 핵심 이익에 관한 합의가 있기라도 한 것인가?
우리나라는 줄곧 강하지 못했다. 물론 강했던 때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길지는 못했다. 강하지 못한 결과 우리나라의 독립은 자주 손상됐다. 중국은 끊임없이 천자의 지위를 자칭하며 우리를 제후국으로 하대하였다. 주자학 이념에 갇힌 조선의 지식인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려는 왕을 향해서 제후국의 왕이 천자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막아서곤 했다. 중국의 압력도 있었지만 스스로 제후국으로 자처하며 종속의 길을 선택한 점도 있다.
최근 영화 ‘남한산성’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우리나라 왕이 중국 청나라 왕 앞에 무릎 꿇고 나아가 머리를 땅에 찧었던 삼전도의 치욕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 뒤로 300년 후에는 일본에 아예 나라를 뺏겨 버렸다. ‘독립’은 사라졌다. 3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나라 없이 살면서 어린 누이들은 위안부로 끌려가고, 젊은 사내들은 남의 전쟁에 총알받이로 나갔다. 중국과 일본은 누가 더하고 누가 덜하다고 할 수 없이 우리의 ‘독립’을 끊임없이 손상시키려 시도하였고, 그들이 전략적으로 맘을 먹을 때마다 국내의 진영 논리에 갇혀 내부 싸움만 하던 우리는 속절없이 당해 왔다. 이런 치욕을 당하고도 우리는 다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지금도 북한 문제를 미국과 중국이 논하고 미국과 일본이 논한다. 누구나 알듯이 이 사이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심지어 우리가 할 일이 별로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하는 대피 훈련을 실시하고, 중국은 북-중 국경에 군사력을 증강할 뿐만 아니라 난민 수용소를 준비한다. 우리는 미군의 움직임에 겨우 따라붙을 뿐, 심지어는 대피 훈련도 없다. 이 상황을 자신의 문제로 보고 있기나 한 것인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기 문제로 감당하려는 용기가 있기는 한 것인가. 갖고 있는 것들을 잃을까봐 겁먹고 있지는 않은가. 중국의 국가주석이 미국의 대통령에게 “사실 역사적으로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해도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위중한 발언인지도 모르고 그냥 눈만 껌벅이며 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독립’이라는 최후의 명제를 의식이나 하고 있는가. 아직도 ‘독립’을 말해야 하는 슬픈 우리여.
독립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 경기 가평에는 ‘경기도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는 조종암(朝宗巖)이 있다. 소중화(小中華)의 성지다. 중국 명나라를 향한 숭배와 감사를 담은 글씨들이 새겨져 있는데, 조선 선조(宣祖) 대왕의 글씨 ‘만절필동(萬折必東)’도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제후가 천자를 알현하는 일을 조종(朝宗)이라 한다. 만절필동은 황허강의 강물이 수없이 꺾여도 결국은 동쪽으로 흐르는 것을 묘사하며 충신의 절개를 뜻한다. 의미가 확대되어 천자를 향한 제후들의 충성을 말한다. 남(南)이나 서(西)로 흐르는 강물을 가진 민족이 동쪽으로 흐르려 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날 방명록에 ‘만절필동’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한시적인 정권은 영속적인 국권에 봉사해야 한다. 진영에 갇히면 정권만 보이고 나라는 안 보일 수도 있다. 각자의 진영에 갇혀 나라의 이익을 소홀히 하는 일이 길어질 때 항상 독립이 손상되었다. 그 후과는 참혹하다. 지금 한가한 때가 아니다. 경제 이익으로 안보 이익이 흔들리면 안 된다. 안보가 ‘독립’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슬프고 둔감한 우리여, 작은 이익이나 진영의 이념을 벗고, 한 층만 더 올라 나라를 보자. 최진석,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북루덴스, 2021, 27~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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