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거칠고 과감하게
축구는 이미 운동 경기라는 테두리를 넘어서서 정치가 되었다. 나라의 총체를 보여주는 무엇인가로 진화했다. 한국 축구는 2002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외국인 거스 히딩크 감독을 모셔 왔다. 히딩크는 국내 감독들이 가져본 적 없는 자율권을 갖고 한국 축구 개혁을 시도하는데, 새롭고 독특한 전술 같은 것이 아니라 의외로 체력에서부터 시작한다. 히딩크의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나머지 전술들은 다 체력 이후의 일이다. 체력이 강하면 원하는 전술들을 발휘하는 능력도 덩달아 배가된다. 체력이 약하면 어떤 기술도 통제가 되지 않아 적절하게 발휘할 수 없다. 축구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기업도 그렇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근본을 장악하면 나머지 것들은 다 그 자장 안에서 통제되고 빛난다. 나라의 근본 체력은 국방력이다. 한 나라 체력의 총화가 국방력이다. 과학기술, 국가관, 문화 수준, 나라의 비전, 정치력 등이 사실은 모두 국방력으로 집결된다. 나라의 체력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기둥은 조세 제도이다. 그 나라 국민의 의식 수준, 공정함, 행정 집행 능력 등이 모두 조세 제도의 운영으로 모여든다. 제대로 된 나라는 국방과 조세 제도가 튼튼하고, 국방과 조세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면 그 나라는 바로 좋은 나라이자 강국이다. 그 나라의 건강성은 국방과 조세 제도만 들여다보면 다 알 수 있다. 축구에서의 체력, 나라에서의 국방과 조세 문제는 그래서 타협이나 유보나 양보나 자의적 해석이나 편의적인 접근이나 변통과 같은 것들로부터 철저히 격리되어야 한다. 근본이기 때문이다. 근본이 제대로 되면 강해져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주도권을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는 말은 전략적이냐 전략적이지 못하느냐 하는 말로 바꿀 수 있다. 전략적이지 못한 단계를 전술적이라 한다. 전략과 전술은 무엇이 다른가. 전략은 판을 짜는 일이다. 자기 뜻대로 재배치하는 일이다. 뜻대로 디자인하는 일이다. 전술은 전략적 차원에서 재배치해 놓은 판 안에서 재배치된 질서를 깨지 않고 거기서 어떻게 살아보려고 이 궁리 저 궁리 하며 자신의 동작을 결정하는 일이다. 전략적 차원에 있는 사람이나 국가는 거칠고 강력하며 과감하다. 그리고 상황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전술적 차원에서는 항상 판이 짜지고 디자인되기를 기다리는 데에 익숙해서 상황의 변화에 덜 민감하고 어떻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습성이 생긴다. 대증요법이 주요 치료 방법이다. 판이 벌어지는 일까지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무의식적으로 인정한다. 일이 터지고서야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다. 게다가 점잖은 말과 인내와 포용과 평화 지상주의가 세련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 히딩크의 축구도 매우 거칠었다. 얼마나 또 과감했었던가. 판을 주도하려고 노력하는 전략이 돋보였었다. 모두 체력이 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전술적 차원에 있는 나라는 전략적 차원의 국가들이 만들어 놓은 판 안에서 산다. 거기서 형성된 질서를 받아들이고 그 질서가 유지되도록 구성된 이론을 그대로 수용한다. 전쟁 없이 오랜 세월을 보내면 전쟁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전쟁이 막상 발발하기 전까지는 자기 일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은 악이고 평화는 선이라는 진리가 생긴다. 대결은 무조건 나쁘고 화해나 타협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진리도 생긴다. 전략적인 나라는 전술적인 나라들이 지키는 선악 관념을 넘어선다. 선악의 질서를 재배치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화와 타협이 좋은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들의 전략적 판단하에서 거칠고 과감한 심정으로 얻어진 결정이 아니고, 전술적 차원에서 당연한 것으로 수용된 것이라면 종속적이다. 평화라는 진리도 다르지 않다. 가진 것을 잃을까 봐 주도권에 대한 집착까지 잃으면 안 된다. 잃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설령 잃더라도 그 다음에 더 크게 이룰 야망을 가지면 된다. 고대 중국의 관자(管子)라는 철학책에서는 나라가 망해가는 9가지 현상을 적시하는데, 그 가운데 맨 앞에 배열한 두 가지가 바로 국방을 게을리하는 일과 맹목적인 평화주의가 난무하는 일이다. 깊이 음미하지 않아도 되겠는가. 최진석, 『경계에흐르다』, 소나무, 2017, 200~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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