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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139]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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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120회   작성일Date 24-04-30 10:34

    본문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나는 것이 아니라, 좌우의 날개를 뜻대로 부리려는 의지와 방향성, 즉 머리로 난다는 것을
    나와 세상을 바꾸는 만남  
    (사)새말새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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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139
    2024. 1. 29.

    안녕하세요? 새말새몸짓입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철학자 최진석의 글은 '분열을 극복하는 법'에 관한 것입니다. 분열의 상황에서의 극복은 분열에 대한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미래를 열고자하는 의지와 실행이 있어야 한다는 통찰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번 한 주도 새말새몸짓으로 건너가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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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지 않는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라는 구절에서 ‘탁월’, ‘사유’ 그리고 ‘시선’ 가운데 가장 핵심적이거나 중심이 되는 단어가 무엇인지를 물으면 ‘탁월’이나 ‘사유’를 고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생각하는 훈련이 충분하지 않으면 논리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더 믿는다. 그러면 중심이 되는 단어를 고를 때도 문법에 따르기보다는 감정에 따라 고르게 된다. 생각의 질서인 논리보다는 평소 자신의 정서적 습관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중심 단어는 ‘시선’이다. ‘탁월’이나 ‘사유’는 ‘시선’을 수식하고, ‘시선’은 수식을 받는다. 수식을 받는 쪽이 주인행세를 하는 중심이다.


      추상적인 것이 보통은 더 가치 있고 큰 역할을 하지만, 눈에는 잘 안 보인다. 기능적인 것들은 구체적이어서 눈에 잘 띈다. 5·18을 왜곡하는 헛소리는 눈에도 잘 보이고 귀에도 잘 들린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는 추상적이어서 눈에 잘 안 보인다. 생각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것이 커 보이고, 눈에 안 보이는 것이 작아 보인다. 그래서 구체적인 왜곡의 헛소리를 멸절하기 위해 더 가치 있는 ‘민주’를 포기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5·18 왜곡 처벌법도 이런 경로로 나왔다. 다 지적인 훈련이 덜 된 것, 생각하는 훈련이 안 된 것과 관련된다. 어찌 되었건 사회의 진화는 안 보이지만 더 중요한 추상적 가치를 향하여 한 단계라도 더 건너가려고 몸부림쳐야 일어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다. 날개를 펄럭이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좌우의 날개가 새를 날게 하는 것 같지만, 본질은 그렇지 않다. 새는 날려는 의지와 방향성으로 난다. 그 의지를 수식하고 실현하는 일이 날갯짓일 뿐이다. 부지런히 페달을 밟는 두 발의 수고로 자전거가 달리는 것 같지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의지나 방향성을 왼발과 오른발이 죽어라 수식하며 실현해주는 것이다. ‘자전거는 좌우의 발로 달린다’는 문장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새가 나는 것도 중심은 수식을 받는 새의 의지와 방향성에 있고, 자전거가 달리는 것도 중심은 자전거 타는 사람의 의지와 방향성에 있다. 문제는 중심의 지위를 차지하는 의지가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가 하는 좌우의 날갯짓은 눈에 쉽게 띄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두 발이 바쁘게 페달을 밟는 것도 눈에 아주 잘 보인다. 생각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앞서고, 눈에 안 보이는 것은 뒤로 밀려난다. 그래서 누군가 어떤 목적하에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말하면, 지적 숙고는 포기한 채 그 말에 쉽게 빠져서, 그것으로 세상을 평가하거나 거기에 기대어 살려 한다. 말하는 쪽이나 열광하는 쪽이나 생각하는 훈련이 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은 과학적이기보다는 그저 선동의 문구이다. 중심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좌’쪽에서 ‘우’를 무너뜨리기 위한 전술적 목적에서 나왔다. ‘좌우의 균형’이라는 그럴듯한 묘사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최종적인 목적은 ‘우’를 멸절시키고 ‘좌’만 남기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하곤 한다. 역사를 잊지 않는다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도달하고자 했던 결론이 무엇인지 모를 리 없다. 역사 속에서 모든 좌우합작은 다 ‘좌’의 최종 승리, 즉 공산화로 귀결되었다. 2차대전 후 해방된 폴란드는 좌우 연립정부를 갖추지만 결국 공산화된다. 체코도 마찬가지로 좌우합작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공산화된다. 헝가리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좌우합작, 즉 국공합작도 결국은 공산화로 귀결되었다. 호찌민이 이끌던 베트남 민주 공화국도 처음에는 좌우합작 상태였다. 2차대전 후의 모든 좌우합작은 하나도 예외 없이 모두 공산화의 길을 갔다. 대한민국의 해방공간에서도 좌우합작의 주장이 매우 강했지만, 대한민국은 좌우합작의 길을 가지 않았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공산국가에서 직접 살아본 나는 가난과 독재보다는 풍요와 자유가 더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능력이 없으면 세상의 변화에 자신을 맞춰가며 삶을 확장하기보다 자신에게 한 번 들어온 철심처럼 굳은 이데올로기를 지키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 정의와 진리의 수호자라는 착각까지 동반하니 고치기가 더 어렵다. 조선이 내내 그러다가 식민지가 되었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나는 것이 아니라, 좌우의 날개를 뜻대로 부리려는 의지와 방향성, 즉 머리로 난다는 것을 알자. 좌우의 문제에서 균형을 맞추고 통합하려 애쓰지 않을 일이다. 차라리 그 힘을 앞으로 나아가려는 데에 쓸 일이다.


     분열을 극복하려면 분열 주체들 간에 애매하게 타협하고 균형을 맞추려 할 필요 없다. 분열을 압도하는 비전으로 미래를 향해 서둘러 전진하면 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수치스러운 역사를 다시 산다. 이제라도 생각을 시작해야 한다.

     


    최진석, 〈중앙일보〉 2023년 2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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