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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129]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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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274회   작성일Date 23-11-2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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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129
    2023. 11. 20.

    안녕하세요? 새말새몸짓입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철학자 최진석의 글은 지난 주에 이어 소설 <노인과 바다>의 독후감입니다. "소유의 길이 아닌 존재의 길을 걷는 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는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한 주도 새 말 새 몸짓으로 힘차게 한 걸음 더 나아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2)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그렇지 않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인간은 무게중심이 낮게 자리해 흔들림이 없다. 아마도 ‘지금 여기’를 버리고 먼 곳의 결말에만 희망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나를 소홀히 하면서까지 우리에 집중하지 않을 것이다. 공을 잘 치려면, 공이 맞는 여기의 순간에 집중해야지 공이 도달할 먼 저기를 미리 보려고 하면 안 된다. “매일매일은 새로운 날이지.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만. 우선은 지금 하려는 일에 집중하겠어. 그러면 운이 찾아 왔을 때 준비가 되어 있을 테니.” 운은 자기에게 진실한 사람에게만 오는 선물이다.

     

    또한 85일 만에 청새치를 잡은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행운은 신뢰의 결과이기도 하다. 마놀린은 “믿음이 깊지 않은” 제 아버지보다도 서로 믿는 사이인 산티아고 할아버지에게 존재의 많은 부분을 열어주었다. 바다로 나가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에게 소년은 “두 마리의 신선한 작은 참치 또는 날개다랑어를 주었는데, 할아버지는 그것들을 가장 깊은 곳의 낚싯줄 두 개에 추처럼 매달았다.” 할아버지의 자부심을 드러나게 해준 680킬로그램도 넘을 거대한 청새치는 바로 이 소년이 준 미끼를 물었다. 신뢰는 항상 빛나는 결과를 안긴다.

     

    “자네 스스로에게나 당당하고 확신을 갖는 게 낫지 않겠나.” 스스로에게 당당한 자! 이보다 더 높은 사람이 또 있을까? 집단이 공유하는 이념이나 믿음으로 당당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당당한 자라니! 다른 사람의 인정에 좌우되지 않고 자기에게 떳떳한 자다. 어부로 살면서도 그는 “단지 생존을 위해 그리고 먹거리로 팔기 위해 물고기를 죽였던 건 아니었다”. 그는 “자부심을 위해 물고기를 죽였다. 그는 어부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떻게 스스로 존재해야 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은 자다.

     

    상어 떼와 목숨을 건 싸움도 자기가 잡은 청새치를 하나의 전리품으로서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는 어부로서의 자부심을 지켜야 했을 뿐이다. 청새치를 지키는 데 실패하더라도 그는 자기가 어부로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소유의 길이 아니라 존재의 길을 가는 자들은 언제나 자기에게 당당하다.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자신만의 향기를 내뿜으며 말한다.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 청새치가 다 뜯겨 나가고 뼈만 남는 한이 있더라도, 더 나아가 청새치를 지키다가 상어에 물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부로서의 자부심만은 잃지 않겠다는 자세다. 이는 작은 이익들에 휘둘리는 삶이 아니라 자부심과 존엄을 지키는 삶을 살겠다는 인간 선언이다.

     

    대학에 떨어지더라도 부정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학생,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비리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정치인, 가난하더라도 당당함은 잃지 않겠다는 가장, 시청률이 떨어지더라도 거짓과 편향은 피하겠다는 방송국, 뜻대로 하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더라도 독재의 길은 가지 않겠다는 대통령, 혁명의 깃발은 꽂을 자리가 보이지 않더라도 완장을 두르지는 않겠다는 혁명가, 이익이 줄더라도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겠다는 기업인, 임금이 줄더라도 기업을 어려움에 빠지게 하지 않겠다는 노동자, 승진이 안 되더라도 표절은 하지 않겠다는 교수.

     

    이들은 모두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사람들, 산티아고 할아버지처럼 자부심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망망대해에서 고기 한 마리 낚을 수 없을 때 허망하듯이,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이런 이들을 낚지 못한다면 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자기에게서도 소유의 욕망을 억누를 존재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살 이유를 어디서 찾겠는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헤밍웨이가 이해되는 바다 같은 밤이다.

     

    나는, 존재의 각성으로 수고롭던 나는, “너무 멀리 나갔던 것뿐이야”라고 말하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며 정체불명의 눈물을 떨군다. 그리고 마지막 그 문단을 오랫동안 떠나지 못했다. “길 위쪽 그위 오두막 안에서 노인은 다시 잠들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얼굴을 대고 자고 있었고, 소년이 옆에서 그를 지켜보며 앉아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는 중이었다.”



    최진석,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 열림원, 2022, 15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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