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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114] 말에 대한 다른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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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312회   작성일Date 23-08-2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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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다른 것을 하려 애쓰지 마라. 우선은 자기가 한 말만 지켜라.
    나와 세상을 바꾸는 만남  
    (사)새말새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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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114
    2023. 08. 07.

    안녕하세요? 새말새몸짓입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철학자 최진석의 글은  <정치란 너의 혀를 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경계에 흐르다』에 수록되어 있는 이 글은 중국 진나라의 상앙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의 경우처럼, 시대의 변화에 따른 혁신을 위해서는 말의 신뢰를 세우고, 국가의 신뢰를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말의 신뢰가 중요해진 때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일독을 권해봅니다. 이번 한 주도 새말새몸짓으로, 늘 한 걸음 더 나은 삶으로 건너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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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중국에 처음으로 통일을 이룬 사람은 진시황이다.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중앙집권 관료체제를 확립한다. 인류 최초의 근대형 국가다. 진시황이 만든 제도의 다양한 변주로 중국은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참으로 위대한 업적이다.

     

     진나라는 원래 강국이 아니었다. 주변의 위, 제, 초나라에 비해 국력이 약했으며, 심지어는 위나라에 영토를 뺏긴 적도 있다. 이런 약소국이 강국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비교적 빨리 제도 개혁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제도를 시대에 맞게 개혁하는 데에 성공해야 나라는 효율성을 발휘한다. 진나라가 그 일을 해낸 것이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제도를 달리하고 비전을 달리해 나가야 하는 것은 국가 경영의 핵심이다.

     

     진시황 출현 수백 년 전인 춘추시대 말기부터 중국은 급격한 변화에 휩싸인다. 아마 이런 정도의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변화는 세계 어디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철기가 산업에 투입되면서 생산 방식이 달라지자 사회를 주도하는 계급에 변화가 생긴다. 주도 계급이 달라지니 정치제도도 달라져야 했다. 나라 형태에도 변화가 요구되었다. 규모가 작고 개수는 많은 나라들로 되어 있던 중국 천하가 규모는 커지며 개수는 줄어드는 방향으로 변화해 나간 것이다. 개수가 줄어들고 줄어들어 ‘하나’로 된 것이 바로 진시황의 통일이다. 다른 나라들도 제도 개혁, 즉 ‘변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지만 과거 세력들의 저항 때문에 신진 세력이 순조롭게 등장하지 못했고, 결국 그들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다른 나라보다 먼저 변법을 성공시킨 나라가 진나라였고, 그 효과로 최초의 통일 국가가 이루었다.

     

     진시황의 통일을 언급할 때는 그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변법을 성공시켜 놓은 상앙(商鞅)의 업적을 빼놓지 못한다. 상앙은 위(衛)나라 왕의 서자로 태어났으나 등용되지 못하자 또 다른 위(魏)나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도 실패하자, 당시 인재를 적극적으로 초빙하기 시작한 진나라로 건너가 등용되어 당시 왕인 효공(孝公)의 신임 아래 제도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런데 상앙이 변법에 나서면서 마주친 가장 큰 문제는 백성들이 국가의 정책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신뢰를 회복하지 않고는 어떤 정책도 효과를 낼 수 없다고 판단한 상앙은 하나의 묘책을 낸다. 성의 남문에 석 자 길이의 장대를 세워 놓고 방을 붙였다. “이 장대를 북문으로 옮겨 세운 자에게는 황금 열 덩어리를 상으로 준다.” 방을 보고도 누구 하나 믿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상앙은 상금을 다섯배로 올린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장대를 북문으로 옮겨 세웠다. 상앙은 즉시 황금 50덩어리를 상으로 준다. 자기가 한 ‘말(言)’을 그대로 지켜 국가의 ‘신뢰’를 회복한다. 장대를 옮겨 세우는 하찮은 일로 국가의 신뢰를 얻었다. 말을 살린 것이다.

     

     신뢰는 근본적으로 말에 대한 신뢰다. 특히 정치는 모두 말로 이뤄진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말을 주로 하는 연설가라는 뜻의 ‘레토르rhetor’가 정치가라는 뜻으로 통용되었을 정도로 정치와 말은 서로 포함관계에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국가 개혁의 성공여부는 말에 대한 신뢰가 좌우한다. 적어도 정치인은 국민에게 원칙이라고 공표한 말만큼은 제대로 지켜야 한다. 기능적인 승리에만 집중하면 자기가 한 말을 무겁게 여기지 않게 된다. 말보다 눈앞의 기능이 더 커 보이는 것이다.

     

     정치는 말이고 정치공학은 기능이다. 그래서 말을 놓치면 정치공학에 빠져 기능적인 승패에 갇힌다. 그리고 결국에는 말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정당화하는 비굴한 논리 속으로 빠진다. “우리는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덜하다”고 하거나, “나만 그런 것이냐”고 하거나, “너는 더 심했다”고 하는 식이다. 비굴한 논리로는 구태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면 겉으로는 무척이나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같은 수준에서 처지만 바뀐 것일 수 있다.

     

     국가 발전은 같은 수준에서 처지만 바뀌는 일로는 보장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상승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말과 비전에 매진해야 한다. 말을 그 이전과 다르게 다루지 않고는 정치가 달라지지 않는다. 말에 대한 다른 태도만이 다른 정치를 기약한다. 굳이 다른 것을 하려 애쓰지 마라. 우선은 자기가 한 말만 지켜라.


    최진석, 『경계에 흐르다』, 소나무, 2017, 134~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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