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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061] 마법의 양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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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691회   작성일Date 23-04-30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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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너가기’를 하는 삶이 가장 인간다운 삶이며, 책 읽는 습관을 쌓으면 그 내공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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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061
    2022. 08.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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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입니다. 매주 월요일 철학자 최진석의 글과 (사)새말새몸짓의 소식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헌 말 헌 몸짓에서 새 말 새 몸짓으로 나아가자는 저희들의 외침이 한 단계 더 성숙한 '나', 더 상승하는 '우리'가 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최진석 이사장님의 신간이 발간되었습니다.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이라는 제목입니다. 새말새몸짓의 '책 읽고 건너가기' 운동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요즘 책 읽기에 좋은 휴가철입니다. 일독을 권하며, 이번주 소개해 드릴 글로는 신간의 서문을 담았습니다. 

    • 이번 한 주도 늘 한 걸음 더 나은 삶으로 건너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책 읽기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는 일입니다. 하늘을 나는 융단에 몸을 싣고 ‘다음’을 향해 가는 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곧 상상력이고 창의력이지요. 높은 지혜는 인간을 ‘다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인간은 머무르지 않고 변화하는 존재이기에 멈추면 부패하지만 건너가면 생동합니다.

     

     건너가기를 멈추면 양심도 딱딱하게 권력화됩니다. 건너가기를 멈추고 자기 확신에 빠진 양심은 양심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도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너가기의 힘은 책 읽기고 가장 잘 길러집니다. 우리 함께 책을 읽고 건너갑시다.

     

     마사 누스바음Martha C. Nussbaum의 책 『역량의 강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파키스탄 경제학자 고(故) 마붑 울 하크Mahbub ul Haq가 1990년 유엔개발계획의 「인간개발보고서」를 처음 발간하면 이렇게 말했다. ‘한 국가의 진정한 부는 국민이다. 국민이 오랫동안 건강하고 창의적인 삶을 누릴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개발의 진정한 목적이다. 이 간단하지만 강력한 진실은 물질적-금전적 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종종 잊히곤 한다’”

     

     마붑 울 하크는 국가를 놓고 말했지만, 인간 삶의 근본 토대를 ‘건강’과 ‘창의력’으로 보는 것은 매우 옳고 정확한 시선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몸과 마음의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요. 이와 달리 ‘창의력’은 단순히 여러 기능적 능력 가운데 하나로만 여겨집니다. 오히려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본 조건임은 쉽게 잊어버리지요.

     

     인간은 가장 근본적 의미에서 문화적 존재입니다. 문화적 존재라 함은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변화를 딛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건너가는 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활동이지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그 힘을 우리는 창의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답’은 건너가기를 멈춘 상태에서의 소극적 활동이고, ‘질문’은 전에 알던 세계 너머로 건너가고자 하는 적극적 시도입니다. 전자에는 창의의 기풍이 없지만 후자에는 창의의 기풍이 꽉 차있지요. 세계는 대답하는 습관으로 닫히고 질문하는 도전으로 열립니다.

     

     책 읽기는 정보 수집이 아니라 일종의 수련입니다. 낱말과 문장을 이해하는 것이 독서의 전부는 아닙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낱말과 낱말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텐트를 치고 남몰래 머무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남몰래’입니다. 문장들 사이에 자기만의 처소를 다지는 것이 책 읽기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책을 쓴 자의 길을 신경 써서 따르기도 하고, 거기서 또 내 길까지 찾아야 하니 간단하지 않은 일이지요. 이 두 가지 일이 하나가 되어야 하지만, 그것을 의식하고 하나로 만들려고 하면 잘 안 될 것입니다. 그저 우호적인 태도로 읽고 또 읽으면 됩니다. 자비와 사랑을 읽다 보면 세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생깁니다. 그럼 즐겁지 않을 수가 없지요.

     

     우리는 보통 ‘공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성공(成功)’이라고 하는데, 노자는 ‘공이 이루어진다’혹은 ‘공이 드러난다’는 의미에서 ‘공성(功成)’이라고 합니다. 『순자』의 「권학」에서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순자는 바람과 비를 갖고 싶으면 우선 흙을 쌓아 산을 이루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람과 비가 거기서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것이지요. 흙을 쌓고 산을 이루는 수고만 하면 바람과 비는 행운처럼 그냥 드러납니다.

     

     바람과 비는 만들어 갖는 것이 아닙니다. 내 수고를 거쳐 현현하는 그들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다만 나타난 결과가 온전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마음의 터전을 닦고 또 닦을 뿐이지요. 이렇듯 심리적인 준비가 중요합니다. 그럼 읽을수록 점점 더 책이 재미있어질 겁니다.

     

     어떤 분들은 ‘책 읽고 건너가기’에 어떻게 참여하냐고 묻습니다. 책을 읽는 자체로 이미 참여한 것입니다. 형식적으로나마 강제 장치가 있으면 더 좋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선은 다른 장치 없이, 모든 개인에게 감춰진 위대한 자발성만을 유일한 강제 장치로 사용합니다. 이보다 더 큰 강제 장치가 있으면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건너가기’를 하는 삶이 가장 인간다운 삶이며, 책 읽는 습관을 쌓으면 그 내공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건너가기의 내공 키우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책 읽고 ‘마법의 양탄자’에 올라탑시다.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



    최진석,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열림원, 2022),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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