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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117] 시대에 맞는 그 시대의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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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327회   작성일Date 23-09-11 11:08

    본문

    시대에 맞는 비전은 그 시대의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나와 세상을 바꾸는 만남  
    (사)새말새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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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117
    2023. 08. 28.

    안녕하세요? 새말새몸짓입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철학자 최진석의 글은  『경계에흐르다』에서 발췌했습니다.  '질문'과 '대답'에 대한 철학자의 인식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짧은 글입니다. 또한 미래에 대하여 우리가 갖춰야 할 태도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아래에서 한번 확인해 보세요. 이번 한 주도 새말새몸짓으로, 늘 한 걸음 더 나은 삶으로 건너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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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조국 대한민국은 혼란스럽다. 어찌 보면, 그리 새삼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줄곧 혼란 속에서 살아온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의식을 수행하면서 관점의 차이들로 비롯되는 혼란은 소란스럽더라도 오히려 그것이 전체적으로 균형과 역동성을 보장하며 전진하는 힘을 굳건히 유지한다. 건국 이래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것이 역동성을 보장하는 생기 넘치는 혼란이 아니라, 벽에 갇힌 채 방향을 못 잡거나 들기 버거운 천장 하나를 머리에 이고 짓눌려 가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서로가 다 숨이 막혀 가고 있는데도 상대방의 숨통만 짓누르느라 자신의 숨이 끊어져 가는 줄도 모르는 매우 무지(無知)한 지경에 빠져 버렸다. 시대가 흐르지 못하여 나라 전체가 썩고 있는 것이다. 썩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다. ‘흐르는 물이라야 썩지 않는다(流水不腐·『여씨춘추·진수盡數』).’

     

     썩는 시대를 살리려면 흐르게 하는 수밖에 없다. 시대가 흐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새 시대에 맞는 새 비전을 설정하고, 다수의 세력이 그 비전을 중심으로 모여 끌고 간다는 것이다. 시대에 맞는 비전은 그 시대의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구세대가 새 비전을 만들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그렇다.

     

     습관이나 감(感)을 넘어 지적으로 보자. 이런 혼란은 해방 이래 처음이다. 해방부터 지금까지 이미 나 있는 길을 남보다 덜 자고 덜 먹으면서 부지런히 걸어왔다. 선례와 모델을 목숨처럼 섬기며 몰두했다. 그래서 성공적인 중진국에 도달하였다. 훈고(訓詁)의 삶이었다. 훈고는 질문보다 대답을 하게 한다. 대답은 이미 있는 지식과 이론을 먹었다가 누가 요구할 때 뱉어내는 일이다.

     

      이때 승부는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원형 그대로 뱉어내는가가 가른다. 여기서 핵심은 ‘원형’에 있다. 대답에 빠지면, 원형만을 중시한다. 그러면 애석하게도 지성의 활동은 정지하고, 모든 논의가 과거의 틀을 넘지 못한다. 지성을 원형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우고 있는 사람은 모든 논의를 진위 논쟁으로 끌고 가 버린다. 우리 사회가 왜 그리 과거에만 집착하면서 진위 논쟁에 빠져 허우적대는지 알 수 있다. 대답, 원형, 진위에 대한 갈구로는 과거를 지킬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지금 그렇다.

     

     얼마간은 유효했더라도 지루하고 비효율적인 훈고의 역사에서 벗어나려면 지성을 질문하는 힘으로 재무장시켜야 한다. 그래서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질문은 자신만의 고유한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원형을 뒤틀려는 시도이다. 미래는 원형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여 창백한 진위 논쟁으로부터 이탈하면서 비로소 열린다. 미래를 보려는 사람은 지켜야 할 이념에 빠져있지 않고,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부단히 질문한다. 이 질문은 마침내 우리 시대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건설하는 일에 닿을 것이다. 질문은 우리를 꿈꾸게 하고 정해진 모든 것을 비틀어 미래를 향하게 한다. 도전적인 질문은 우리에게 선도적이고 전략적인 역량을 갖게 할 것이다.

     

     대답에 익숙한 사람은 대답이 기능하는 정도의 ‘사람’으로 고착된다. 질문을 시도하는 사람은 질문이 제공하는 수준으로 상승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결국 ‘사람’이 관건이다.

     

    최진석, 『경계에 흐르다』, 소나무, 2017, 226~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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