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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090] 철학이 의자가 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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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680회   작성일Date 23-04-30 23:45

    본문

    우리가 선진국을 희망한다면 반드시 이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와 세상을 바꾸는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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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090
    2023. 02. 20.

    안녕하세요? 새말새몸짓입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철학자 최진석의 글은 2014년에 발표되었던 "철학이 국가 발전의 기초이다"라는 것입니다. 현실에 맞닿아 있는 철학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는 글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한주도 늘 한 걸음 더 나은 삶으로 건너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철학이 국가 발전의 기초이다

      

    금요일 수업이 끝난 후, 한숨 돌리고 나서 최철주 고문님과 대화를 한다. 오늘이 둘째 날이다. 고문님께서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한 말씀 하신다. 어떤 버스가 “절약하는 당신이 녹색 발전소”라는 문구를 달고 다니는데, 곰곰이 생각하다가 “철학하는 당신이 나라발전소”라고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셨단다. 깜짝 놀랐다. 이정록의 「의자」도 함께 이야기했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의자」, 『의자』, 문학과지성사, 2006)

     

    모두들 ‘불금’을 향해 나갈 채비를 할 때, 발전소와 철학과 의자 얘기를 하는 일은 참 즐겁다. 고문님은 이 즐거움에 굵은 마디를 걸쳐 주신다. “철학이 결국은 의자다.” 깜짝 놀란 이유가 바로 전날 밤에도 이런 얘기를 듣고 깊은 상념에 잠겼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온 도사(道士)와 밤늦게 만나 2시간 정도 한담을 나눴다. 내가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임을 알자 대뜸 말한다. “철학이 국가 발전의 기초이다.” 철학을 긴 시간 공부하면서도 나는 한국 사람 가운데 누가 “철학이 국가 발전의 기초이다”고 말한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돌이켜 보면, 이전에도 중국이나 미국 등에서는 이런 말을 들어 본 기억이 있다. 한국 사람에게서는 오늘 오후에 최 고문님으로부터 듣는 것이 처음인 것 같다.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칼 야스퍼스는 그의 저작 『실존철학’(Exisitenzphilosophie)』에서 “얼치기 철학은 현실을 떠나지만, 진정한 철학은 현실로 돌아온다”는 말을 한다. 철학을 잘 모르면 철학과 현실을 서로 분리된 것으로 보지만, 철학을 제대로 알면 철학이 곧 현실이고 현실이 곧 철학임을 안다는 뜻이다.

     

    우리는 보통 철학이나 문화나 예술 자체가 현실임을 알기 어렵다. 철학이나 문화나 예술은 항상 구체적인 현실 너머의 어떤 것, 여분의 어떤 것, 시간이나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향유하는 어떤 것으로 치부된다. 철학이나 철학의 친구들을 현실과 분리된 것으로 본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가 철학적 레벨에서 작동하는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꾸려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적 레벨에서 작동하는 시선이란 어떤 것인가? 박물관 감상을 예로 들어보자.

     

    박물관에 가는 일 자체가 일상이 되지 못하고, 매우 고상한(?) 일로 치부된다면 이는 철학과 현실을 분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일이다. 얼치기 철학이기도 하다. 박물관 가는 일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는 것부터 철학적 시선은 겨우 시작된다.

     

    박물관에 가면 이전 사람들이 남긴 유물들을 본다. 유물들 한 점 한 점을 보면서 우리는 감탄한다. “옛날에도 벌써 이런 것들이 있었다니!” “참 멋있다! 지금 써도 되겠다!” 등등. 이렇게 하나하나에 대하여 감탄하는 일로 박물관 감상을 마친다면, 아직 철학적 시선의 입구에 도달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철학적 시선에서 박물관을 감상한다는 것은 하나하나를 보는 일이 아니라, 박물관 전체를 하나의 풍경으로 놓고 눈 앞에 펼쳐진 다양한 유물을 남긴 사람들이 드러내 보여주는 ‘동선’을 읽는 일이다. 유물들이 시간적 흐름 속에서 연결되어 나타나는 무늬, 즉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보는 것이다. 한국 박물관에서는 한국인들의 동선을 읽고, 중국 박물관에서는 중국인들의 동선을 읽는다.

     

    유물은 눈에 구체적으로 보이지만, ‘인간이 그리는 무늬’나 ‘동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지성의 힘으로만 잡을 수 있다. 철학적 시선은 바로 지성적 시선이다. 철학을 지성과 친한 학문, 즉 필로소피(philosophy)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지성적 레벨에서 즉 철학적 시선에 잡힌 동선을 따라 끌고 가려는 의지가 바로 창의력이다. 이 힘이 만들어 낸 결과가 바로 ‘선진’이고 ‘선도’이고 ‘일류’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적극적으로 활동되는 국가가 선진국이다. “철학이 국가 발전의 기초이다”라는 말을 잘 들어보지 못한 것은 선진국을 운영해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지성적 레벨의 시선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해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진국을 희망한다면 반드시 이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읽는 능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창의도 어렵고 상상도 어렵고 선도나 선진도 힘들어진다. 바꾸어 발하자. 철학적 시선으로 현실을 지배하고 관리해야 한다. 우리가 한 단계 올라서서 나아가야 할 길은 결국 철학이 우리의 의자가 되는 길이다.

     


    최진석,  <철학이 국가발전의 기초이다>. 《광주일보》 2014년04년18일

    *이 글은 후에 '철학이 의자가 되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경계에흐르다』(소나무,2017)에 개정되어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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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말새몸짓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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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학교>
    * 새말새몸짓 기본학교3기 수업은 지난 토요일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이번 수업은 김문수 교수님의 강의로 진행되었습니다. 암호학과 블록체인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세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열띤 강의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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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2일 함평, 고산봉 정상에서의 일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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