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든지 출발은 항상 감동에서 시작해야 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자주 결심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 휩싸이지 않은 사람이다. 원하는 것이 강하면 인간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고 예민하면 감동, 즉 세계에 대한 직접적이고 전 인격적인 접촉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감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전인격적 근본 장치를 호기심이라고 한다.
호기심이 있느냐, 없느냐가 국가의 운명도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독립국가라고 다들 이야기한다. 그리고 독립국가여야 하고 계속 그래야 한다. 그런데 중국은 한국에 대해 ‘너희는 원래 우리 것이었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2017년 4월 19일의 연합뉴스에 의하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월스트리트와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시진핑 중국 주석이 중국과 한반도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국이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 온라인 매체 쿼츠는 “한국을 격분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지적했지만 한국에서 격분하는 분위기는 별로 없었다. 자주(自主)와 정의(正義)를 훼손하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강하게 저항하며 시위를 하던 사람들 누구도 이 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왜 그럴까?
1894년에 일어난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고 1895년에 일본과 청나라 사이에 시모노세키조약이 체결되었다. 제1조 조문은 “청(淸)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자주독립국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본이 ‘조선은 독립국’이라는 조항을 넣은 것은 중국과 조선의 관계를 끊고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도 중국의 자동개입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서 조선을 독립국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조선을 자주독립국으로 만드는 일은 훨씬 전부터 있었다.
1875년 9월, 일본은 운요호를 앞세워 강화도를 공격한다. 1876년 2월에 이 사건의 해결을 빌미로 하여 조일수호조규, 즉 강화도조약을 맺는데, 이 조약의 첫째 항목도 역시 ‘조선은 자주국’임을 천명한다. 시모노세키조약 이후로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제는 조선의 독립됐구나!”라면서 독립협회를 만들고 중국 사신을 만났던 영은문을 부수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1897년에는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고종을 황제로 만든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은 1910년에,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졌다.
1543년 9월, 일본 가고시마 항 남쪽으로 배를 2시간 정도 타고가면 나오는 다네가시마라는 작은 섬에 포르투갈 상선이 표류해왔다. 열다섯 살의 도주 도키타카는 그들로부터 화승총 한 자류를 선물로 받았는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한 자루를 사서 대장장이 야이타로 하여금 본떠서 만들게 하였다. 그래서 일본은 자신들이 직접 조총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포르투갈 사람들을 알려고 노력한다. 1653년, 조선에 네덜란드 상선이 표류하였다. 인원은 36명이었고, 그중에 하멜이라는 청년도 있었다. 그 배에는 대포와 조총이 가득 실려 있었고, 항해 전문가와 무기 전문가들이었었지만, 조선의 그 누구도 이런 문물에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살아남은 여덟 명이 일본의 나가사키로 도망갔다. 그 후 하멜은 네덜란드로 돌아가 자신이 조선에 머무는 동안 받지 못함 임금을 받기 위한 증빙자료로서 조선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것이 『하멜표류기』다. 그 당시 일본은 나가사키에 네덜란드 상인 구역을 만들고 네덜란드와 상업을 하고 있었다.
왜 조선은 이방인들이 왔을 때 그들이 가지고 온 기술을 배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까? 호기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계속 자기가 알고 있고 자기가 가진 정답이었던 주자학으로만 세계를 관리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유교 경전을 읽으면서도 그것을 정답으로 적용하지 않고 호기심을 더 앞세웠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지적 영역에 있는 사람이나 아닌 사람들이나 다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거나 감동을 구하지 않는다. 단지, 이미 가지고 있는 정답을 적용하는 데에만 더 열심이다.
정답으로 간주되는 특별한 이념을 숭배하는 삶을 오래 살다 보면, 정답을 수행하는 당위만 강해지고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핵심 가치나 존재의미는 살피지도 않는 바보가 되기 쉽다. 그래서 생각하는 능력까지도 퇴화된다. 국가 간의 관계 문제에 있어서도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면, 우선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놓치지 않는다. 상대국이 우리의 영토와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는지 존중하지 않는지를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사회주의와 같이 이념화된 특정한 정답을 가지고 덤비면, 상대 나라가 우리의 역사나 문화, 영토를 욕심내는 데도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정답’만을 건지려하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의 생존을 위협받는 지경에까지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감동이란 결국 ‘너는 누구냐?’ ‘네가 너냐?’ 라는 질문으로 돌아간다. 이 질문은 ‘너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이론을 정답으로 신봉하고 수행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너만의 호기심으로 가득 차서 세계와 감동을 매개로 관계하는 있느냐?’ 하는 의미이다. 자기의 호기심으로 감동을 행사하는 사람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주체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