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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104] 삶을 튼실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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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313회   작성일Date 23-08-21 10:18

    본문

    우리는 튼실한 삶을 위해 죽음을 의식적으로 자주 불러들이는 수밖에 없다. 인생이 짧디 짧다는 것을 항상 기억
    나와 세상을 바꾸는 만남  
    (사)새말새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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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104
    2023. 05. 29.

    안녕하세요? 새말새몸짓입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철학자 최진석의 글은 <금방 죽는다>입니다. 『경계의 흐르다』에 수록된  이 글은 최진석 이사장님의 강연에서도 많이 다루었던 내용일 것 같습니다. 한주의 시작인 오늘, 급한 일 보다는 중요한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하루가 되면 어떨지요? 이번 한 주도 새말새몸짓으로, 늘 한 걸음 더 나은 삶으로 건너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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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금방 죽는다

     

    (중략)  장자에 의하면, 우리의 일생은 고작 이 찰나적인 간격을 천리마가 지나치는 그 시간 정도밖에 안 된다. 이것이 앞에서 근본적인 체득으로 이끈다고 했던 바로 그 한 구절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사는 시간이라는 것은 마치 천리마가 벽의 갈라진 틈새를 내달리며 지나치는 순간 정도다. 홀연할 따름이다!"([장자 지북유])


    장자가 말하는 무한확장, 적후지공, 절대자유, 위대한 성취는 모두 금방 죽는다는 이 처절하고도 두려운 체득에 푹 빠졌다가 건진 결과들이다. 순간에 대한 체득만이 영원으로 확장하려는 강한 욕망을 갖게 한다. 장자 철학의 핵심은 절대적으로 이 한구절의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장자가 살았던 자유롭고 투철한 삶은 모두 죽음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기초로 한다. 


    죽음은 경험되지 못한다. 경험하는 순간 경험하는 주체의 의식이 원래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이탈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제3자의 일로 다가올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타자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전부다. 내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금방 죽는다"는 말을 듣거나 의식하는 당시에는 평정이 허물어지고 내면이 동요하기 때문에 체득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 잠깐 지나면 "금방 죽는다"는 문장이 나의 일로 남지 않는다. 나에게 경험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죽음'으로만 존재하지 죽어 가는 일로서의 '사건'으로 의식되지 못하는 것이다. 


    보자. '죽음'은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죽어 가는 일'뿐이다. 체득은 '죽음'에 대하여 내용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 가는 사건'으로 직접 경험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죽어 가는 사건'을 내가 경험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다만, 죽음의 구체적 상황, 비슷한 경우 속으로 나를 밀어 넣을 수는 있다. 나에게 직접 닥치는 '사건'으로 체득하려면 '죽음'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평정'이 무너지며 내면이 동요하는 그 경험의 시간을 계속 늘려 나가는 수밖에 없다. 억하고 의식하는 수밖에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운명처럼 우연히 다가와서 집요하게 머물러 죽음을 '사건'으로 대면할 수 있기도 하지만, 보통 그런 경우는 매우 희박하므로 우리는 튼실한 삶을 위해 죽음을 의식적으로 자주 불러들이는 수밖에 없다. 인생이 짧디 짧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나는 '금방 죽는다'는 사실과 '죽어가는 사건'의 실재성을 연속적으로 붙들어 놓고 싶다. 그것이 삶을 튼실하게 하는 비결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조용히 앉아 "나는 금방 죽는다"고 서너 번 중얼거린다. 그러면 적어도 그날 하루는 덜 쩨쩨해질 수 있다. 최소한 그날 오전까지만이라도 덜 쩨쩨해 질 수 있다. 나 자신을 번잡하고 부산스러운 곳에 두는 일을 그나마 조금 줄일 수 있게 된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소중하게 쓸 수 있게 된다. 급한 일보다는 중요한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래도 사는 것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을 보면 나는 아직 덜 죽은 것이 분명하다. 더 철저하게 죽어 버려야겠다.  



    최진석, 『경계에흐르다』, 소나무, 2017, 21-23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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