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에 빠져 사는 데 익숙해지면, 기능을 넘어서 있으면서 기능을 지배하는 더 높은 단계의 비전이나 꿈을 그냥 장식처럼 다루거나 심지어는 불필요한 것으로 여긴다. 성적을 특히 중시하는 교육에서는 성적만 좋으면 된다. 운동을 안 해도 되고, 심부름을 안 해도 되고, 부모가 모든 것을 대신해줘도 되고, 봉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학업 내용과 관련 없는 독서는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성적이라는 기능적 성취만 중요할 뿐, 상위의 지배력 있는 가치는 쓸모없다. 성적을 높여서 대학에 가기만 하면 되고, 꿈 같은 것을 꿔서는 오히려 안 된다. 그러나 꿈이 없는 기능적 학업은 분명한 한계가 분명하다.
쓸모 있음에 갇혀서 쓸모없음을 지향하는 동력을 상실하면 새로운 도전이나 높은 상승은 불가능하다. 나는 꿈을 가진 사람이 꿈 없이 기능만 행사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성취를 이루는 것을 자주 봐왔다. 사실, 지적 성장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 아직 쓸모없어 보이는 것을 향한 부단한 도전과 다르지 않다. 쓸모 있음에 갇혀 있으니 이미 있는 것을 다루는 ‘대답’만 할 줄 알고, 쓸모없는 것으로 넘어가려는 ‘질문’이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따라하기라는 기능적 활동을 잘해서 발전하였다. 쓸모 있는 것을 잘 수행해온 것이다. 그래서 모두 목표를 세워 추구할 줄은 잘 알지만, 목적을 추구하는 훈련은 되어 있지 않다.
방송국은 시청률만 추구하다가 방송의 본질을 세우지 못하고, 고등학교는 대입 진학률만을 따지다가 교육의 본질을 놓치며, 대학은 취업률에 갇혀서 대학으로서의 본질을 포기한다. 방속에는 시청률 너머에 방송국으로서의 목적이 있으며, 고등학교는 진학률 너머에 고등학교로서의 목적이 있으며, 대학에는 취업률 이상의 목적이 있을 것임에도 지금은 모두 시청률이나 진학률이나 취업률과 같은 기능적인 목표에만 빠져 있다. 작은 쓸모에 빠져 쓸모없게 보이는 큰 쓸모를 놓친 형국이다.
우리는 쓸모 있는 것을 이루는 것으로는 가장 잘한 민족이다. 이제 쓸모없음을 향한 도전의 길이 남아 있다. 목표 수행 능력은 아주 높다. 이제 목적을 세워보는 것이다. 쓸모없음으로 쓸모 있음에 길을 내줘야 한다. 기업도 쓸모 있는 인재만을 구하는 일을 넘어서서 쓸모없음을 향할 줄 알아야 한다. 깨달은 자는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 사이에서 들락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