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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소개] 선진화, 이제는 건너야 할 강(江) <매일경제 202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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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331회   작성일Date 21-06-30 10:49

    본문

    우린 선진국인가 개도국인가
    그 질문 앞에 흔들리는 자아상
    산업화, 민주화 뒤엔 선진화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과제
    이를 주도할 리더십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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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선진국인가 개도국인가? 대학이나 기업에서 강의할 때 필자가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개도국 편에 손드는 사람은 꽤 있지만 선진국이라고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 어디쯤 있는 중진국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객관적 지표만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분명 선진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나 교육, 의료, 과학기술 수준 등 모든 측면에서 그렇다. 국제사회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우리만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남들 눈에 선진국으로 비친다고 해서 다 선진국은 아니라는 데 있다. 국제사회에 선진국을 구분하는 다양한 경제사회 지표가 있지만 규범적 정의나 기준은 없다. '자기 선택(self-election)의 원칙'만 있을 뿐이다.


    선진국 자격을 갖춘 나라 중에서 스스로 선진국이라고 선언하는 나라, 다시 말해 특권뿐만 아니라 책임과 의무도 다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나라만 선진국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당분간 중진국 노릇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권리·의무를 논의하는 국제협상에서 중진국 카테고리는 없다. 개도국과 선진국 중 택일해야만 한다.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 적당한 지점에서 원하는 수준의 책임과 의무만 부담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럼 과연 우리는 선진국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렵다. 그동안 우리는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선진국과 개도국을 오가며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해왔고, 지금도 이런 자세에 근본적 변화는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과거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서 우리는 공산품 협상에서는 선진국처럼 소리 높이 자유화를 외친 반면, 농산물 협상에서는 수입 개도국 뒤에 숨는 이중적 태도를 취해 양측으로부터 모두 빈축을 샀다. 쌀 시장 개방 문제 등과 관련한 국내 정치적 허들을 넘지 못한 결과이긴 하지만, 지금 다시 진실의 순간을 마주한다 해도 우리 사회의 대응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두고 진지한 성찰과 담론의 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2년 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미국 압력에 못 이겨 우리 정부가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결정한 적이 있지만, 이를 선진국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는 정책선언으로 간주해도 될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우리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여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성숙한 과정을 거쳐 내린 결정이 아니라 도무지 미덥지가 않은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이런 태도는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우리 국민의 심리적 경향에 비춰봐도 이율배반적인 측면이 있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하면서도 자신의 말과 행동이 만들어내는 모순된 이미지에 대해서는 깊이 성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의 눈에 비친 우리 모습과 자아상(自我像) 사이에서 작지 않은 간극을 발견하고 좌절감을 느끼곤 한다. 문제는 그 좌절감이 종종 대외 정책에 투영돼 뒤틀림 현상을 낳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시야가 세계와 미래로 확장되지 못하고 과거와 현재, 국내와 한반도, 동북아의 좁은 틀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 민주화를 달성한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과제는 선진화다. 선진국도 개도국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표류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고 이제 과감한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그럴 만한 역량이 우리에게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노장(老莊) 철학자 최진석 교수의 말처럼 '생각을 생산하는 사회'가 되어 우리의 시선을 전략적 사고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선진화의 강(江)을 건너갈 수가 없다. 그런데 이를 주도할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그 리더십은 지금 어디 있는가? 과연 있기는 한가?

    [조태열 전 외교부 차관·주유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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