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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뉴스레터 #009] 교육, 변화의 경험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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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470회   작성일Date 21-07-29 12:13

    본문

    교육, 변화의 경험
    나와 세상을 바꾸는 만남  
    (사)새말새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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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뉴스레터 #009
    202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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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조선 8월호에 실린 최진석 이사장님의 인터뷰 기사 중 일부를 발췌 소개합니다. 인터뷰어로 배진영 기자님이 질문하고, 이에 최진석 이사장님이 대답하는 형식입니다. 

    배진영 기자(이하 배진영):조슈의 메이린칸에서는 유신의 인재들이, 조선의 명륜당에서는 망국의 선비들이 배출 됐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왔을까요.

    최진석 이사장: 일본은 전국(戰國)시대 이래 전쟁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이 항상 긴장하고 예민함을 유지하다 보니 어떤 정해진 이념()을 수행하기보다는 현실을 직시(直視)하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반면에 도덕국가를 지향조선은 실질을 숭상하는 나라가 아니었어요.실질을 숭상하려면 현실을 관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조선의 선비들은 그런 능력이 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차이가 메이지유신과 망국이라는 차이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배진영: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질을 숭상하기보다는 관념에, 명분에 빠져 사는 성향이 강한 것은 일종의 민족성으로 보아야 할까요.
    최진석: 실력이죠.
    배진영: 실력이요?
    최진석:우리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을 구축해본 기억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진영:무슨 의미입니까.
    최진석:조선이라는 나라는, 나라 자체를 우리 힘으로 만들고 우리 힘으로 운영한 게 아니었습니다. 중국의 이데올로기와 중국의 국가 시스템 안에 편입되어 살았죠. 가장 구체적인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아닌 남의 뜻에 맞추어서 운영했기 때문에, 자신이 서 있는 구체적인 문제, 실질을 붙잡지 못한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착각하기도 하고 애써 보려고 하지 않는데, 해방도 우리 힘으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건국도 우리가 우리 피를 흘려서 하지 못했습니다. 6·25전쟁도 우리가 우리 힘으로 독립적으로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구체적인 터전인 나라를 독립적으로 세우고 독립적으로 운영하지 못했습니다.

    배진영: 그렇지요.
    최진석: 우리 삶의 전략이 추상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을 지식(智識)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식 생산국이 아니라 수입국이었어요. 지식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세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을 수입해왔기 때문에 구체적인 세계에서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 참여해본 적이 없어요. 구체적인 세계를 우리 뜻과 의지와 욕망으로 관찰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남이 만든 처방전, 이념을 가져다 쓰기만 했습니다.
    (중략) 
    우리나라는 지식의 대부분을 나라가 독점(獨占)하고 있어서 지식이 활발하게 생산되는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자유롭게 세계와 관계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얘기죠. 어느 정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네가 세계를 자유롭게 만들어 살아라하는 것과 이렇게 만들어놓았으니 너희는 여기에서 그냥 살아라하는 것은 창의성(創意性)이나 자율성(自律性)을 작동시키는 데 있어서 큰 차이가 있어요. 지금도 국가가 너무 많은 것을 통제하려는 것 같아요.

    배진영: 그렇죠.
    최진석: 국가 입장에서는 그것이 효율적인 것, 일사불란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죠. 하지만 지식의 생산이나 자율적·창의적 활동들을 못 일어나게 하는 부작용이 무척 큽니다. 조선은 생각하는 방식까지 모두 국가가 정하는 나라였는데, 이는 나라를 풍성하게 하는 데 굉장한 장애였다고 생각합니다
    요시다 쇼인은 쇼카손주쿠를 본격적으로 운영한 2년 반 동안 92명의 제자를 배출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절반은 혁명 과정에서 죽었고, 나머지 절반은 살아남아서 메이지유신을 완성했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400여 개의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이 있었습니다. 지금 노량진 학원가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처럼 거기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공부했어요. 그런데 400여 개에 달하는 조선의 고등교육기관이 요시다 쇼인이 만든 손바닥만 한 쇼카손주쿠를 이기지 못했습니다.손바닥만 한 쇼카손주쿠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배진영:어째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요.
    최진석:조선의 젊은이들은 배우라고 정해진 것만 배웠습니다. 쇼카손주쿠의 젊은이들은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궁리한 다음에 그것을 공부했습니다.쇼카손주쿠는 시대의 급소(急所)’를 잡았지만, 조선은 시대의 급소를 잡지 못했습니다.
    (중략) 지식의 생산은 지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은 구체적인 세계에서 피어나는 꽃입니다. 구체적인 세계를 관찰하고, 그러면서 발견된 문제들을 해결해보려는 야망이 없으면 지식은 생산되지 않습니다. 이런 야망이 없는 지식인들, 혹은 세계를 자기 눈으로 관찰하려는 포부가 없는 지식인들은 이미 만들어진 지식만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배진영:조선 500년 동안의 국시(國是)였던 주자성리학은 결국 구체적 세계와 괴리되어 있던 것이 문제라는 말씀이군요.
    최진석: 조선이 1392년 건국한 지 꼭 200년이 지난 1592년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났습니다. 기업도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잘하다가 갑자기 망하는 법은 없어요.자기가 먼저 망해서 힘이 빠지면 그 틈을 외적(外敵)이 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배진영: 맞습니다.
    최진석: 조선의 건국과 함께 주자학이 통치 이데올로기가 된 이후, 200년 동안 조선은 누가 이것을 더 잘 지키느냐하는 데만 매달렸습니다. 200년 동안 사회・경제적 조건이 얼마나 달라졌겠습니까. 그러면 거기에 맞는 이론이나 지식을 생산해야 합니다. 조선은 지식이나 이론은 그대로 정해놓고, 밑에서 변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은 관찰하고 들여다보지 않았어요. 이론과 실제 사회・경제 조건 사이에 격차가 생기면서 비효율(非效率)이 발생했고, 그것이 200년간 쌓인 것이죠.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스스로 망했다는 얘기입니다.
    (중략)

    진영: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부국강병(富國强兵), 특히 강병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식인 중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데, 부국강병, 특히 강병에 눈길을 주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최진석: 국가는 최종적으로 전쟁을 하는 집단입니다. 국가 간의 승부는 전쟁으로 이루어집니다. 깨어 있는 국가는 항상 전쟁을 준비합니다. 이것은 저만의 독특한 관점이 아니라, 국가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주장입니다. 국가의 목표는 단 하나, 부국강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부국이 강병을 위한 것인 만큼, 국가에는 강병이 최종 목적지입니다. 그래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병이 빠진 부국은 체력은 없이 체격만 커진 꼴과 같이 허망합니다. 이 허망함을 감추려다 보면, 정신승리법으로 겨우 버티는 아큐가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아큐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전쟁을 기획하고 실천해본 적이 없어요. 아직도 전쟁을 도덕적으로만 이해하려고 합니다. 
    (중략) 저는 지식을 생산하는 것,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지려는 것, 야망을 갖는 것, 이런 것들이 전부 지적 호전성(好戰性)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진영: ‘지적 호전성’이라니. 흥미로운 표현입니다.
    최진석: 지적 호전성이 없으면 생산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지적 호전성이 없으면 쉽게 문약(文弱)해집니다.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지혜라는 것은 전쟁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혜의 여신(女神)인 미네르바(아테나)는 완전무장한 모습입니다. 일본에서 학문의 신(神)으로 추앙받고 있는 요시다 쇼인의 초상을 보면 책을 읽고 있지만 그 옆에는 칼이 놓여 있습니다. 반면에 세종대왕 동상을 보면 책만 보고 있어요. 세종대왕은 일국의 통치자인데도 그 옆에 칼이 없어요. 문기(文氣)가 승하고 무기(武氣)가 약해지면 나라는 허약해집니다. 무기가 승하고 문기가 그 뒤를 따라가면 그 나라는 흥합니다. 한 나라가 가져야 할 가장 높은 어젠다는 부국강병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진영, 〈'배진영의 어제오늘내일'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월간조선》 2021년, 8월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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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변화의 경험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힘은 본능적인 동작이 아니라 인위적인 활동이다. 사람은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활동을 해서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점점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한다. 본능적인 동작의 테두리에 갇힌 것이 동물이고 인위적인 활동으로 본능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학습이 필요하고 동물에게는 학습이 거의 필요 없다. 누가 더 사람이 되느냐 하는 점은 누가 더 학습하느냐로 결정된다. 학습의 전 과정에 철학을 담아 체계화한 것을 교육이라고 한다. 동물이라면 학습이 필요 없으니 교육도 필요 없다. 사람이 사람으로 완성되는 여정에는 반드시 교육이 필요하다. 종교 수련의 전 과정도 다 교육이다. 군대 훈련의 전 과정도 다 교육이다. 교육의 정도가 종교인의 수준을 결정한다. 교육의 강도가 군인의 용맹성을 결정한다

      사회가 작동되는 중심 톱니바퀴가 두 개 있으니 바로 정치와 교육이다.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사회의 정치가 어떠한가라는 질문의 답과 일치한다. 그 사회의 정치가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사회의 교육이 어떠한가라는 질문의 답과 아주 잘 맞는다.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도 교육의 결과다. 이런 교육에서는 이런 정치가, 저런 교육에서는 저런 정치가 태어난다.이렇게 본다면, 사회의 뿌리 동력은 교육이다. 그래서 교육이 한 나라 백 년 후의 전망을 결정한다고 하는 것이다. 교육 무용론은 시대에 맞지 않는 교육 방법에 대한 회의에서 빚어진 착각이다. 교육 무용론은 있을 수 없고, 특정한 교육 방법 무용론은 있을 수 있다. 인간은 다 교육생으로 살다 간다.  
    (중략)
      교육의 관건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다.변화를 야기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 변화를 경험해야 한다. 지식에 매몰되거나 이념에 빠져 있으면 변화하기 힘들다. 아는 것을 수호하거나 아는 것에만 근거를 두어 세상을 보며, 굳은 신념이 된 이념을 매개로 해서만 세상과 관계한다면 변화를 경험할 수 없다. 자신도 변화를 경험할 수 없고, 세상에 변화를 야기할 수도 없다. 자전거에 대하여 아무리 많이 알아도, 그 앎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전거를 타지 못하던 자신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변화하는 일이다. 우리는 자전거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추는 데 시간을 쓰다가 자전거를 타는 도전에 나서는 일을 소홀히 하기도 한다. 자전거에 대한 지식이 자전거를 타보려는 용기로 바뀌는 일은 매우 특별한 어떤 것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매우 특별한 어떤 것이 필요하다.

    최진석,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루덴스, 2021), 257~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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