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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뉴스레터 #030]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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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989회   작성일Date 21-12-27 14:26

    본문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만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보다 자기가 궁금해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나와 세상을 바꾸는 만남  
    (사)새말새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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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뉴스레터 #030
    202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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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2기 세번째 수업은 최진석 교장선생님의 <사유의 위계와 지적인 삶>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50여분이 넘게 초과되어 끝이 날 정도로 열띤 수업이었습니다.

    •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최진석의 생존철학은 20편입니다.  중심내용은 교육은 무엇을 알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하는  원초적인 욕망, 동물적인 율동을 키워주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아래 영상과 글을 소개합니다.   

    • 이 번 한 주도 한 걸음 더 나은 삶으로 건너가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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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20편의 내용을 발췌합니다. )
     
     "교육은 무엇인가를 알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상이 있습니다."
        
     앞에서 자녀들을 교육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사랑의 대상으로 보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육의 대상으로만 보면,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고, 물론, 교육을 하는 것과 사랑을 하는 것이 양립 불가능한 것은 절대 아니죠. 그렇지만 교육에 관심을 가지면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에요. 그런데 부모들은 자주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 자녀를 더 잘 살게 하기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사랑을 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강조한다고 말씀들을 하십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지 않은 자녀들은 절대 자신을 믿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창의적이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에요. 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지식 생산국이 아니라 지식 수입국입니다. 지식 생산국이 되려면, 지식 생산자들이 많아져야 되는데, 지식 생산자들은 자신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일이거든요. 자신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지식을 생산하는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지식을 수입하는 일 외에는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사랑한다는 것이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공자는 인간의 본질,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근거는 부모와 자식 간에 흐르는 원초적인 정서에 있다고 말했어요. 인간의 본질을 공자는 ()’이라고 하는데, 그 인()의 핵심적인 내용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느냐? 부모와 자식 간에 흐르는 원초적인 감정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왜곡되지 않는다면,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사랑이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태어났어요.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부모와 자식 간의 원초적인 당연히 있어야 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 배제되고, 교육, 성적, 공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이 부모와 자식 간에 흐르는 원초적 정서가 무너진 상태에서는 어떤 인간도 건강하고, 바르고, 자유롭고, 자신감 있게 살 수가 없습니다. 소탐대실하지 마십시오. 눈앞에 있는 성적 때문에 자식의 근본 정서, 이것을 망치면 큰 일이 납니다.
     
     우리는 보통 교육을 할 때 무엇을 알게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알게 해주려는 것을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도 무엇을 알게 해주는 것을 교육이라고 간주되는 대접을 받아 본 사람은 그렇게 관리되고 성장한 사람은 절대 자유로운 인격이 될 수가 없습니다. 창의적인 인격이 될 수 없습니다.
     
     교육은 무엇을 알게 해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 이상이 있습니다.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의 역동성, 알고 싶어 하는 원초적인 욕망, 알고 싶어 하는 오히려 동물적인 그것을 키워주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지 않는 교육은 무엇을 알게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사랑을 듬뿍 주는 교육은 무엇을 알게 해주는 것 이상으로 알고 싶어 하는 이 욕망을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무엇을 알게 해주려다가 이것이 조금 지나치면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없애버립니다.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없애 버리면, 지적인 인간, 건너가는 인간, 자유로운 인간, 독립적인 인간, 행복한 인간으로 성장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통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해서 만들어진 지식을 이해한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봅니다. 어떤 것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이해하는 것, 어떤 것에 대해서 만들어진 지식을 수용하는 것, 그것을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이라고 한다면, 인간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은 뭐냐?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 치는 일,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모르는 것으로 넘어가려고 몸부림치는 일, 이것이 입니다. 그러니까 은 어떤 지식의 형태보다는 차라리 몸부림, 발버둥. 이것이 입니다.
     
     무엇을 알게 해주려고 노력하다 보면 이 발버둥, 몸부림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자식을 사랑해야 하느냐? 그것은 자식이 스스로 믿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만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보다 자기가 궁금해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지식 보다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궁금증이 훨씬 더 자기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를 믿는 사람만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모르는 것으로 건너갈 수 있다. 아는 것으로 바탕으로 해서 모르는 것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 칠 수 있다. 아는 것으로 바탕으로 해서 모르는 것으로 넘어가려고 몸부림 칠 수 있다. 발버둥 치고 몸부림치면, 동물적 율동! 이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됩니다. 교육을 시키는 사람이든지 교육을 받는 사람이든지.
     
     그런데 교육이 사랑하는 마음에 종속되면, 사랑하는 마음이 교육보다 더 크면, 이런 일이 가능해진다.

     감사합니다


    최진석, <생존철학>ep_2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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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정해진 마음을 버리다(2)

     정해진 마음을 약화시키거나 없애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정해진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깨달음에 이르거나 진화의 동력을 갖는 일은 불가능하다. 개인의 진화(성숙), 사회의 진화, 정치의 진화에 모두 해당하는 말이다. 무위(無爲), 무념(無念), 무아(無我), 정관(靜觀) 등의 특별한 태도는 모두 정해진 마음을 약하게 하려는 것들이다. 진화를 궁극으로 밀고 나아가는 모든 가르침은 정해진 마음을 해소하는 절차를 언제나 가장 앞에 둔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자들은 그 가르침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회개다. 정해진 마음과 결별해야 예수의 가르침을 받을 바구니가 준비된다. 회개 없이 예수의 신도가 될 수 없다. 부처의 음성을 마음에 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참회다. 참회 없이 부처의 음성을 담으려 들면 안 된다. 참회의 과정을 건너뛰고 해탈을 꿈꿀 수 없다. 회개 없이 천국을 꿈꾸거나 참회 없이 해탈을 꿈꾸는 일은 진화를 포기한 채 함부로 사는 막무가내의 인생으로 이끈다. 해탈이나 참회에는 다 정해진 마음과의 결별이 포함된다.
     
     그런데 정해진 마음과의 결별은 경험한 적도 없고 이해되지 않는 곳으로 건너가는 일이다. 이것도 감각이 아니라 곰곰이 생각하는 사유의 활동이다. 감각적 활동이 아니라 지적인 활동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지적 인내이며 용기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장자는 정해진 마음과 결별 하는 용기를 자기 살해(吾喪我)’로 까지 표현하는 것이다. 장자에게서도 자기 살해 없이 소요유(逍遙遊)’의 자유는 없다. 소요유에 이르게 하는 자기 살해, 해탈에 이르게 하는 참회, 천국으로 인도하는 회개가 모두 지적인 태도이며 용기다.
     
     개인이나 사회의 진화를 꿈꾸는 자들은 먼저 정해진 마음을 기준으로 써서 감각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가벼운 태도를 줄이고 곰곰이 생각하는 지적인 태도를 함양하지 않고는 어떤 종류의 진화에도 관여할 수 없다. 한 조각의 인식도 내놓지 못하면서 그저 별 의미도 없이 강하기만 한 의견을 내뱉는 허탈한 삶을 산다. 지적인 태도는 여러 가지가 뭉쳐져 만들어지지만, 대표적인 두 가지는 바로 지식을 증가시키는 일과 용기를 발휘할 내공을 기르는 일이다. 곰곰이 생각하는 것도 내공이고 용기를 발휘하는 것도 내공이다. 겸손도 내공이고 화해도 내공이다. 지식의 생산도 내공이고 양보도 내공이다. 우리의 모든 진화에는 지식과 내공이 결부된다. 일은 간단하다. 나와 사회의 진화를 도모한다면, 이제 이 두 가지를 모두 닦는 수밖에 없다.
         


    최진석, 「다음으로 건너가기」, 『대한민국 읽기』, 북루덴스, 2021, 227~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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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말새몸짓 활동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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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학교 2기 3번째 수업이 지난 토요일, 함평 호접몽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수업주제는 <사유의 위계와 지적인 삶>이었습니다. 
    * 코로나19의 전국적인 확산세로 인하여 이번수업은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호접몽가에 참석하신분들은 방역패스확인 및 발열체크 확인후 입실되었고, 온라인으로는 줌을 통해 교감하며 진행되었습니다.   
    * 이번 수업에서 인상깊었던 최진석 교수님의 한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에게 인식되지 않은 자기는 자기가 아니다. 
    자기에게 인식된 자기만이 자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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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새말새몸짓 홈페이지에서는 새말새몸짓의 활동을 소개하고 참여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만, 늘 새말새몸짓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아울러, 저희는 비영리법인으로 후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들의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근래 새말새몸짓에 물품을 보내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 '아주경제'에서 <저녁의 참사람: 다석 류영모 평전>(이상국, 박영호 지음, 메치미디어, 2021)과 방역키트를     보내주셨습니다. 
     - 후원회원 임혜영 님께서 기본학교 구성원들을 위해 귤상자를 보내주셨습니다. 
     - 역시, 후원회원 이현석 님께서 기본학교 학생들을 위해 방석을 보내주셨습니다.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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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회원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내역은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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