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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뉴스레터 #022] 자기를 어루만지는 일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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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219회   작성일Date 21-11-08 03:37

    본문

    지혜를 갖고 싶으면, 그 지식이 쓸 곳을 만들어 줘야 됩니다. 그것이 야망이죠.

    나와 세상을 바꾸는 만남  
    (사)새말새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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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뉴스레터 #022
    202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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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2기 학생 모집마감이 2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랍니다. 
    * 이번주 생존철학은 15편입니다. 12분 남짓한 분량인데요, 자기를 어루만지는 일이 결국, 야망을 갖는 것이고, 이것이 결국 지식을 지혜로 거듭나게 하는 원초라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 이번 한 주도 한 걸음 더 나은 삶으로 건너가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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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월요일(25일)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께서 함평 호접몽가에 방문해주셨습니다. 저희 최진석 이사장님께서는 안 대표님과 함께 호접몽가 일대를  둘러보시고, 여러가지 주제로 대담을 나누셨습니다. 관련기사가 있어 아래에 링크를 걸어놓습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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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15편의 내용을 발췌합니다. )
     
    지혜로운 삶을 살고 싶으면, 우선 야망이 있어야

     인간은 문화적 존재이다.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이다. 그 변화를 야기하는 활동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인간은 도구를 만드는데, 그 도구 중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가 지식이다. 지식은 인간이 이 세계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만든 가장 고효율의 추상 장치이다. 우리가 여기까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지식이 나오는 과정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어루만지기입니다.“‘인간은 이 세계를 소유하는 존재가 아니라 어루만지는 존재이다.’ ‘사랑하는 존재다.’ ‘관심을 갖는 존재다.’ ‘설명하는 존재다.’”하는 말들은 다 같은 범위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고학적 유물을 소유하는 것보다 고고학을 가진 것이 더 세다고 할 때, 이것을 우리는 고고학적 유물을 소유하는 것보다 고고학적 유물을 설명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 더 세다고 말했습니다. 그 설명하는 능력이 상징 기호들을 통해서 체계화 되어 남은 것, 이것을 지식이라고 했습니다.그런데 또 우리는 이 지식을 소유하는 것보다 지식을 어루만지는 것이 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식을 소유하는 일은 지식에 갇히는 일이고, 지식을 어루만지는 일은 지식을 활용하고, 사용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지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왕왕 지혜를 추구하면서 지식을 소홀히 하기도 하는데, 그러할 때에 큰 실수를 할 수가 있습니다.지식과 지혜는 매우 깊은 연관관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에 겸손한 축적!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고, 그 축적의 양에 따라서 지혜의 높이가 달라진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 세계를 어루만지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어루만지기는 자기 자신을 어루만지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 자기 자신을 궁금해 하는 일, 자기 자신을 설명해 보이는 일.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모든 위대함은 여기서 나온다 하는 것까지 또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지혜를 발휘하는 일과 자신을 어루만지는 일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 어떤 사람들은 약 100kg 만큼의 지식을 가지고 깨달음 즉, 지혜에 이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50kg의 지식을 가지고도 깨달음에 이릅니다. 왜 사람들마다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또 평생 지식을 쌓기만 하다가 세월을 다 보낸 경우도 있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저는 한 가지 비밀을 발견했습니다.자신을 어루만지는 일을 한 사람들은 그 어루만지는 강도에 따라서 지식을 지혜로 승화시키는 일을 훨씬 더 잘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기를 어루만지는 일, 자기를 궁금해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가끔 다른 사람들의 표현을 함께 사용하면서, , 비전 혹은 야망 뭐 이렇게도 말합니다. 저는 야망이라는 단어를 쓰기 좋아합니다. 좀 더 야성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지식을 쌓는 일만 하게 되느냐? 그것은 지식을 활용할 내면의 동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지식을 활용할 내면의 동작이 왜 일어나지 않는가? 그것은 활용해서 쓸데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활용해서 쓸데가 마땅치 않은 것은 뭐냐? 그것은 꿈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야망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분들은 꿈을 강요하지 마라, 꿈을 강요하는 것에 피곤을 느낀다고 말하는데. 저는 이 말을, 제가 좀 더 극단적으로 반응하면, ‘나는 인간적으로 살고 싶지 않다, 왜 나한테 자꾸 인간적으로 살라고 그러냐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야망이 있는 사람들은 항상 그 야망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의식을 하기 때문에, 그 야망이 바라보는 그 힘으로 자기 내면이 항상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야망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내면이 부글부글 끓고 있기 때문에, 지식이 차곡 차곡 차분하게 쌓이지 못하고, 그 안에서 동요를 일으키고, 소용돌이를 일으킵니다. 이 동요와 소용돌이가 자기 자신만의 필요에 의해서 그 지식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지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식을 자기 필요에 맞게 재생산하고, 재배치하는 일입니다. 지식을 자기 필요에 맞게 재배치, 재생산하는 능력을 우리는 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재배치하고 재생산하고 이 강도나, 시기는 그 사람이 어떤 야망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가가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식을 부단히 축적하면서 그 지식을 지혜로 전환시키고자 합니다. 이건 누구나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식보다 지혜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혜를 갖고 싶으면, 그 지식이 쓸 곳을 만들어 줘야 됩니다. 그것이 야망이죠.
     
    그래서 지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혜를 발휘해서 자기 삶을 더 질적으로 고양시키고 싶은 사람은 가장 먼저 자신을 궁금해 해야 합니다. 자신을 어루만져야 돼요. 그러면 거기서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지는 지가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발견됩니다.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가 발견됩니다. 그러면 야망이 만들어집니다. 그 야망의 인도에 지식을 맡기면 그 지식은 적절한 필요에 맞추어서 효율적으로 적용이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지혜로운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삶을 살고 싶으면 우선 야망이 있어야 됩니다. 야망이 있으려면 우선 자기가 자기한테 분명해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한테 분명하려면, 우선 자기를 궁금해 하고, 자기를 어루만지고, 자기를 설명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최진석, <생존철학>ep_1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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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고독을 자초하다
     
      철학의 시작으로 인간은 신으로부터 독립하였다.독립(獨立)’이 핵심이다. ‘독립은 기본적으로 혼자 서는 일이다.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만 책임성 있고 도도하게 우뚝 선다. 독립할 때 인간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세는 바로 고독(孤獨)’이다. 보통은 고독을 부정적인 의미로 보는데 부정적 의미에서라면 그것은 아마 외로움일 것이다. 외로움은 뭔가 결핍감을 느끼는 부정적인 상태다. 고독은 그렇지 않다. 고독은 아주 고아하게 혼자 서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힘만으로 서 있는 자립적 상태다.
     
      탈레스가 철학적인 생각을 가장 먼저 할 수 있었던 것도 스스로가 독립적이었기 때문이다.고독이나 독립은 기존의 인식 질서가 주는 강압적인 힘을 벗어나서 스스로 우뚝 서는 용기를 발휘해야만 가능한데, 탈레스는 모든 사람들이 만물의 근원을 신이라고 믿을 때 모든 사람들과 결별하여 스스로 고독을 자초했다. 그렇게 하여 만물의 근원은 이라고 하는 최초의 생각을 인류에게 제공하였다.
     
      탈레스가 최초로 믿음의 시대에서 생각의 시대로 넘어가게 해주고 나서, 이런 일은 역사에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철학의 탄생이란 결국 이런 형식의 연속적이고 반복적인 과정이다. 새로운 생각이 시간을 견디며 생존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또 믿음의 대상으로 바뀌고, 그 믿음의 체계가 다시 새로운 생각에 의해서 대체되는 과정이 반복된다.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사람은 기존의 믿음 체계로부터 일탈한 독립적 주체다. 고독한 존재다. 문명의 깃발로 존재하는 철학이나 예술은 다 고독한 존재들의 용기에서 비롯된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의 출발을 말하면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하거나 또 배울 가치가 있는 덕목은 바로 독립이다.독립은 익숙한 것들이 갑자기 불편해져서 거기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다 얻어지는 선물 같은 것이다. 불편해진다는 것은 이미 있는 생각들이 더 이상 나의 삶이나 새로운 문명을 책임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신과 회의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철학적 사유를 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고독을 자초해야만 한다.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21세기북스, 2018[2017], 170~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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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말새몸짓 활동 및 모임을 소개합니다.
     
    <'노자와 베토벤' 공연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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