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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064] 한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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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672회   작성일Date 23-04-30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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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워져야 할 때, 새로워지지 않으면 현재 가지고 있는 새로움 정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급속하게 더 낡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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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레터 #064
    2022. 0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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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입니다. 매주 월요일 철학자 최진석의 글과 (사)새말새몸짓의 소식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헌 말 헌 몸짓에서 새 말 새 몸짓으로 나아가자는 저희들의 외침이 한 단계 더 성숙한 '나', 더 상승하는 '우리'가 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번 주 소개해 드릴 철학자 최진석의 글은 <한계를 넘어>라는 글입니다. '도약해야 할 때, 도약하지 못하면 지금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급속히 하강하게 된다'는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있는데요, 아래에서 한번 확인해 보세요. 

    • 이번 한 주도 늘 한 걸음 더 나은 삶으로 건너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한계를 넘어


       새로워져야 할 때, 새로워지지 않으면 현재 가지고 있는 새로움 정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급속하게 더 낡아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한 단계 도약해야 할 때 도약하지 못하면 지금 수준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급속한 하강을 하게 되는 것 또한 세상의 이치다. 우리는 지금 답답한 처지에 있다. 중진국 함정이라고도 한다. 말레이시아, 태국, 브라질,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나 칠레도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대표적 사례다. 우리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말들이 있어 온 지 오래다. 2013년 한국 경제를 끓는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하면서 한국의 침체와 하락 가능성에 경종을 울렸던 컨설팅 업체 맥킨지가 2018년에 한국 경제가 더 나빠졌다고 재차 경고했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물이 끓는 냄비 속 개구리 상태다. 5년 전보다 물 온도는 더 올라갔다." 나는 이 말속에서 날카로움도 읽지만 조롱도 발견한다. 


     이런 조롱을 받을 나라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세계에서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하면서 박수를 보내주던 일이 그리 오래전도 아니다. 현대사에서 '한강의 기적'을 말할 때, 독일이 이룩한 '라인강의 기적'도 함께 말하지만, '기적'이라면 '한강의 기적'만이 기적이다. 독일의 그것은 있다가 없어진 것을 회복한 것이지만, 우리는 없던 것을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적을 이룬 나라고, 기적을 이룬 국민이다. 이런 기적을 이룬 나라는 사실상 인류 현대사에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식민지 시절을 보내다 독립해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룬 나라가 대한민국 외에는 없다. 정치 발전과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다. 원조받던 국가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것도 우리가 유일하다. 자원과 기초적인 물적 토대 없이 이 정도의 발전을 이룬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식민지 착취를 통해 발전의 토대를 갖췄지만, 우리는 외부의 착취 없이 우리만의 힘으로 이룬 것이니 발전의 내용 또한 다른 나라와 비교하자면 더 도덕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높이는 딱 여기까지라는 점이다. 끓는 냄비 속에 있으면서도 뜨거워지는 줄을 모르는 형국이다. 기적을 이룰 정도로 그렇게 근골을 잘 사용하고 영특하던 우리가 끓는 냄비 속에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무지 속으로 빠져버렸다. 우리는 한계에 갇혔다.



     따라 하기의 종속성
     우리를 한계에 가둘 정도로 몸에 밴 익숙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따라 하기'라고 표현할 수 있는 '종속성'이다. 해방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룬 발전과 번영은 이 '따라하기'의 속도와 효율성이 빚어낸 결과다. 우리는 물건을 우리가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돈을 벌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기 시작한 것을 들여와 만들어 돈을 벌었다. 우리가 만든 제도로 우리 삶을 제어하고 북돋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만든 제도를 들여와 우리 삶을 거기에 맞췄다. 우리가 독립적으로 한 생각으로 우리의 세계관을 삼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만든 철학을 우리의 비전으로 하며 살았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룬 발전과 번영의 속살이다. 이 일을 세계 유례없이 잘 해냈다. 그러나 '따라하기'로 살 수 있는 높이는 여기까지다. 

     따라하기에 습관이 되면 삶의 태도와 사유 구조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종속적인 삶을 살기 쉽다. 그렇게 되면 이익보다는 명분에 집착하고, 지적이기보다는 감각적이고, 실재보다는 도덕에 빠지며, 본질보다는 기능에 집중한다. 명분과 도덕은 정해진 기준을 수행하는 일이므로 과거의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태도에서는 미래를 여는 도전보다는 과거를 헤집는 일에 빠진다. 당연히 이미 알고 있는 것이나 믿고 있는 것만을 수행하려 들지, 그것들을 바꿔 새로움을 기약하는 혁신적 도전에 나서지 못한다. 사회가 멈추고 썩기 시작하는 이유다. 새로워져야 할 때 새로워지지 못하면, 썩는다. 도약해야 할 때 도약하지 못하면, 하강한다. 

     우리는 조선 말기에 이미 경험했다. "이 나라는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게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다." 우리가 다급한 이유는 조선 말기 다산 선생의 이 절절한 경고가 지금 우리에게 어느 하나 어긋남 없이 해당되기 때문이다. 

     국가 단계의 높이에서 통치력을 행사했던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이 마지막이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의 통치력은 감성적 민족주의에 매몰되거나 권위주의적 시대가 남긴 탐욕과 특권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과거의 운동권 이념을 넘어서지 못한 상태에서 반대쪽 진영을 부정하려는 기능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정도 이상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이명박과 노무현 사이나 박근혜와 문재인 사이에 있는 수평적 차이를 수직적 차이로 착각하지 말자. 높이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다. 같은 높이에서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을 뿐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로 시작한 진영이 이젠 "이건 나라냐"라는 말을 듣는다. "이게 나라냐"라고 주장한 쪽과 "이건 나라냐"라고 주장한 쪽 사이가 얼마나 멀까? 4대강 보를 만든 쪽과 허무는 쪽 사이는 또 얼마나 멀까? 같은 높이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방송 장악은 어느 정권에서나 똑같다. 안하무인의 인사, 어용 기자들의 득세, 표현의 자유 억압, 불통, 협치 실종, 권력의 청와대 집중, 낙하산 인사, 블랙리스트 등은 어느 정권에서나 모두 나타났다. 다름이 없다. 같은 높이에 있으면서는 사실 다르기가 더 어렵다. 다름이 없는 이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아무리 다르다고 각자 주장해도 모든 진영이 실제로는 같은 높이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도전
     이제 한계를 뚫고 올라서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 점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자. 즉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법으로는 이미 할 일을 다 해버린 민족이라는 사실이다.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도달할 그 높이에 이르는 도전 이외에는 가져야 할 사명도 달리 없다. 중진국의 한계에 이른 우리는 이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도전에 나서야 한다. 전술적 차원에서의 사고를 전략적 차원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대답에 익숙한 지적 활동성을 질문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건국 세력이 산업화 세력에 의해 도태되고, 산업화 세력이 민주화 세력에 밀려나는 과격한 운동을 통해서 우리의 역사가 진보했듯이 이제는 민주화 세력도 도태되어야 한다. 민주화 세력도 이미 구세력이다. 민주화 세력을 도태시킬 새로운 세력의 형성을 도모해야 한다. 당연히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삶의 태도가 필요해진 이유다. '따라하기'로 갈 수 있는 최고점까지 왔으니 '따라하기'가 아닌 방법으로만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 다른 결과는 다른 방법으로만 얻을 수 있다. 다른 결과를 기대하며 방법과 태도를 바꾸는 것을 혁신이라고 하지 않은가.

     그런데 전략적이고 선진국적인 높이로 상승하는 일이 가능하기는 한가?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문명의 패러다임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에서라면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1820년 대분기(Great Divergence) 이후에 후진국과 선진국 사이의 교체는 없었다. 이 말은 한 번 후진국은 계속 후진국에 머물기 쉽고, 한 번 선진국은 계속 선진국이기 쉽다는 말이다. 각 단계를 결정하는 높이의 시선에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축복이 왔다. 바로 몇백 년 계속되던 패러다임이 깨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기존의 패러다임에 균열이 생기고 틈이 생긴 것이다. 후발 주자들이 자신의 단계를 뛰어넘어 한 단계 더 상승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기존의 패러다임이 깨져야 하는데 우리의 국력이 가장 강해진 지금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문제는 우리가 그 축복을 직시하고 있는가의 여부와 그 축복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가의 여부다. 애석하게도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본질보다는 기능, 실재보다는 도덕, 이익보다는 명분, 질문보다는 대답에 더 비중을 두는 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시선이 항상 미래보다는 과거를 향해 있다. 미래를 여는 도전보다는 먼저 과거를 한 점 오차 없이 헤집는 일을 해야 더 진실하게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도록 훈련되었다. '따라하기'에 익숙해지면 결국 미래보다 과거를 더 중시하게 되는 심리를 갖게 된다. 입으로는 미래를 말하지만 사실은 과거를 산다. 그래서 과거의 규정으로 미래의 전개를 제어한다. 과거에 정해진 규제로 있어 본 적이 없던 미래의 변화를 제어하는 일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빅데이터 시대에 데이터를 모으지 못한다. 초융합 연결의 시대에 원격 의료를 막는다. 4차 산업혁명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인 공유경제를 경험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이것은 과거로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해야 진실한 삶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우리가 훈련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을 달고 일어나는 문명적인 혁명의 시기에도 과거로 과거로만 계속 회귀하려 한다.
     


     낡은 문법을 버리자
     이 절박한 시점에 삶의 방식이나 태도가 전면적이고도 근본적인 각성을 통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각성이 없으면 여기까지만 살다 가지 이 이상의 삶을 누리지는 못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후손들에게 영광이 아니라 치욕을 물려줄 수도 있다. 진영 지키기에 빠진 우물 안 개구리들은 역사의 열차에서 내려야 한다. 낡은 문법을 지키는 투사들은 이제 필요 없다. 차라리 경쾌한 도전에 나서는 젊은 무모함이 더 의미 있다.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 온 민족인데, 우리가 어떻게 되찾아 어떻게 발전시킨 나라인데, 여기까지만 살다 가도 괜찮겠는가? 낡은 문법과 결별해 새로운 문법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태도를 가져야만 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노래할 수밖에 없다.


     "부질없다, 부질없다. 정해진 모든 것.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모든 언어들, 모든 생각들. 백설의 새 바탕에 새 이야기 새로 쓰세. 새 세상 여는 일 말고 그 무엇 무거우랴. 새 말 새 몸짓으로 새 세상 열어보세."



    최진석,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북루덴스, 2021), 239~246쪽.


    ** 새말새몸짓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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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14일 ~ 15일 함평 호접몽가에서 기본학교 1기와 2기가 함께하는 기본학교 한마당 모임을 가졌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병행하여 진행하였습니다.

    •  15일 새벽, 광복절을 맞이하며 고산봉 일출산행을 가졌습니다. 정상에서 다 함께 태극기를 들고 만세 삼창을 외쳤습니다.
    ** 지난주 소개해드렸던 광복에 관한 기본학교 학생분들의 글을 공유합니다. 

    광복(光復), 빛의 회복

     

    기본학교 2기 정재윤

     

     

    일제의 의한 한일병합은 한반도와 그 주변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팽창이 세계를 휩쓸고 있었지만, 인구 2천만의 나라가 이렇게 급속히 무너져 타국과 합병된 것은 전무했다. 우리는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일제에 나라를 순순히 넘겨준 것이다. 왜란 후 300년 동안 각성하지 못한 조선은 1910년 일제의 국권 피탈로 무력하게 몰락했다.

     

    (光 빛 광, 復 회복할 복) 빛을 회복한다. 광복은 일제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음을 뜻한다. 하지만 1945년 8월 15일 과연 우리는 빛을 온전히 회복한 것이었을까? 광복을 가져온 주체는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 힘으로 이루지 못한 광복은 미군과 소련군의 신탁통치로 이어졌고, 결국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았다. 나라는 쪼개지고 남은 건 잿더미뿐. 광복은 완전히 소멸했다. 그러나 소멸은 또 다른 시작의 씨앗이다. 우리는 분연히 일어섰다. 이는 세계사에 전례 없는 기적이며, 수많은 땀과 눈물, 희생으로 일궈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무엇도 훼손치 못한 우리의 빛을 내는 것일까? 피 땀으로 세운 우리는 주권을 당당하게 펼치고 있는 것일까?

     

    작금의 현실에서 진정한 광복은 아직 요원하다. 우리는 한반도 유사시 군의 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현재 대한민국 전시작전권은 주한미군사령관이 행사한다. 전시 상황에서 우리의 운명을 미군이 쥐는 것이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열강들의 각축장 한가운데 위치한다. 정치와 외교는 언제나 그들의 힘에 굴복하거나, 이용당한다. 국론은 분열되고, 국민은 반목과 갈등으로 신음한다.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명분과 이념에 갇혀 국익은 등한시된다. 국력의 상승은 한계에 봉착했다. 이는 미국 또는 중국의 사대(事大)로 나라를 이끌려는 종속적 주체의 한계다. 우리는 배짱을 가진 능동적 주체로 상승해야 한다. 그렇다면 충만한 자신감이 분출하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가? 근원은 실력이다. 국가의 실력은 타국을 압도하는 국방, 경제, 정치에서 발휘되며, 개인의 실력은 자신을 극복하는 체덕지(體德智)에서 발휘된다. 실력이 곧 힘이며, 힘은 두둑한 배짱으로 자신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들에 맞선다. 우리는 실력을 함양해야 한다. 실력의 함양은 그저 자기 삶을 좀 더 개선하려는 소박한 구호가 아니다. 그 분야에 최고가 되기 위한 야망이 깃든 자신과의 첨예한 투쟁이다. 이러한 개개인이 전면에 등장하여 자신의 존엄, 사회의 정의, 국익을 위한 원칙을 지켜 나아갈 때, 명분과 이념을 뛰어넘어 강건한 빛을 발하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빛은 에너지의 파장이다. 에너지는 운동에서 발생한다. 하여, 운동이 멈추면 빛은 소멸한다. 오직 대의명분에 집착하는 성리학이 조선을 지배할 때, 동시대 세계는 프랑스혁명이 발발하고, 산업혁명으로 문명의 대전환이 일어났다. 폭발적인 생산력을 바탕으로 제국주의가 확장한다. 권력투쟁과 당파싸움에 빠져 힘을 기르지 않은 조선은 뒤늦게 천지개벽을 목도하고 나라의 문을 걸어 잠갔다. 반면 메이지 유신으로 일찍이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어느덧 중국, 러시아를 압도하는 열강으로 거듭났다. 조선의 정체는 굴종과 굴복을 향했고, 열강으로의 운동은 드넓은 세계를 향했다. 우리가 안주하거나, 머물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끊임없는 운동만이 길을 밝혀 뻗어나갈 빛을 생성한다. 이제 새말새몸짓의 부단히 건너가는 운동으로 약육강식의 희생양이 아닌,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광복을 이루자!!

    광복(光復)의 소리 - 광복(光復)의 소리
                 
            기본학교 1기 유경철

    쭈그러진 심장을 펼쳐
    명심(銘心)의 칼끝을 대어라
    진정한 나로 다시 태어나
    소명의 이름을 세기고
    매순간 가슴에 손을 올려
    소명의 박동을 노래하리라
    가슴속 등불이여
    이 길을 비추어
    현현(玄玄)이 태어날 나비들
    광복의 길로 안내하거라
    과거 설움과 아픔의 소리들이여
    천도(薦度)의 바람타고 흩어지고
    내 안에 미세히 흘러나오는
    광복의 소리에 전율하거라
    이제
    새 시대 광복의 소릴 듣거라
    헌말 헌몸짓 벗어던져
    다음으로 건너가자
    새말 새몸짓 받아들어
    광복으로 건너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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