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질문:우리 시대의 철학과 문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답변: 철학은 시대의 산물이라는 말을 앞에서 했습니다. 저는 이 점을 더 강조하여 철학은 시대의 산물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설령 그것이 철학적인 이론 구조를 가졌더라도, 시대의 구체성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면, 저는 별로 의미를 뒤 않습니다. 플라톤도 그렇고, 니체도 그렇고, 공자도 그렇고, 장자도 그렇습니다. 철학자들은 모두 그 시대를 진실하고도 치열하게 산 사람들입니다. 자산이 살던 세계의 바로 그 시점에서 자신이 발견한 구체적인 문제를 고도의 추상적인 사유의 높이에서 읽고 해결하고자 했어요. 혹자는 그런 사유의 결과를 수용하는 것을 철학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노자의 『도덕경』을 철학이라고 생각하지요. 『국가론』이나 『도덕경』은 철학 자체가 아닙니다. 철학을 한 결과물들입니다. 철학적 활동이 담겨 있는 책이죠. 철학적인 높이에서 한 사유가 생산한 산물입니다. 철학은 구체적인 문제를 추상적인 고도의 높이에서 사유하여 보편화하는 지적활동입니다. 명사적이라기보다는 동사적입니다. 철학은 시대의 산물이고, 시대의 산물이어야 하지만 저는 문학도 그래야 한다고 봐요. 어떤 철학이든 어떤 문학이든 그것이 한번 보편적으로 승화되고 나면, 보편의 바탕이 되었던 토양은 잘 포착되지 않거든요. 토양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고 위에 창백하게 남은 이론 체계만, 즉 보편으로 승화된 이론적 구조물만 남잖아요. 철학이 됐든 문학이 됐든 그것이 보여주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철학자나 작가가 그들이 살던 구체적인 시대 안에서 다은과 같은 물음에 고유하게 답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시대에 누구였는가?”
“당신은 무엇을 봤는가? 거기서 무슨 문제를 발견하고 무슨 불편함을 느꼈는가?”
“그 불편함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가?” 이런 질문들에 수준 높게 반응하는 것이 철학이고 문학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인문적 활동은 구체적인 세계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관찰하고 철학적으로 승화하여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런 활동이 자신의 삶이 되고, 또 그것을 문장으로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막연한 이상을 품고 살다가 하나 깨달은 것이 있어요. 그 정도의 문장은 쓴다고 해서 써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낸 자의 삶이 자연스럽게 글이 되어 드러나는 것이라고. 결국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최진석, 『나 홀로 읽는 도덕경』, 시공사, 2021, 180~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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