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최진석입니다. 제가 1년 전인 것 같습니다. 어른 학생들 30~40명을 모시고 제주에 간 적이 있습니다. 제주에서 군산오름에 올랐어요. 제주의 오름들이 아주 참 좋지 않습니까. 근데 거기 군산 오름에 가면 그때 식민지 시절에 일본 군인들이 와서 파놓은 참호가 하나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그 역사도 기억하고 또 미래도 다시 다짐하는 의미에서 그 조그마한 참호를 보러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제 앞에 한 10여명이 먼저 올라가시고, 또 제 뒤에 한 15~20명이 따라오시고. 제가 그 중간에 가고 있었는데. 먼저 가서 보고 어떤 분들이 나오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뒤따라가던 분들이 “거기 뭐 있어?”, “볼만해”, “볼만한 것 있어?”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먼저 보고 온 사람들이 “별거 없어,” “볼 거 없어”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그러니까 그 대답을 듣고 어떤 분들은 직접 가서 확인하러 가시고, 또 어떤 분들은 별거 없다고 하니까, 그냥 안보고 지나쳐버리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는 여기서 무엇을 느꼈냐면, 우리가 ‘볼게 있어?’ ‘볼만해?’하는 이런 말들은 어떤 정해진 기준에 맞느냐, 안맞느냐를 좀 따지는 모습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볼만한 거라면, “자기 안에 어느 정도 되는 것이 볼만한 거라는 인식이 있고.” ‘볼게 있어?’라고 하면, “어느 정도가 돼야 볼 것이다”라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볼 것이 있느냐, 볼 게 있느냐’고 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볼 것 혹은 볼 만한 것’에 관한 기준에 맞느냐 안맞느냐 하는 것을 따지는 것이죠. 이것을 우리는 사실정해진 마음이라고 해왔던 것입니다.
자 여러분 그 조그마한 참호에 제가 들어가 보니까 3미터도 채 안 되는 깊이였어요. 저는 지식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냥 파다가 전쟁이 지니까 그냥 서둘러 도망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머릿속에 있는 참호하고는 그 규모나 정비된 모습이 전혀 맞지 않죠. 그런데 여기서 어떤 사람은 ‘볼 게 없어,’ ‘볼만한 것이 없어’ 하고 그냥 지나 치지지만 어떤 사람은 거기서 그 참호 안에서 전쟁 속에서 망가져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고뇌하고, 그 다음에 있는 힘을 다해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젊은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고뇌 속에서 그 젊은이는 그 참호를 파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노벨문학상에 버금가는 작품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어떤 분은 거기서 건축적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한편의 시를 쓸 수도 있겠죠. 어떤 분은 한 곡의 슬픈 노래 혹은 힘찬 노래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대상에는 즉, 이 세계에는 가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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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더 넓은 세계를 인식하고 더 높은 삶을 꿈꾼다면,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이 정해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이 정해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줄이거나 희석시키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대상에는 즉, 이 세계에는 가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볼 만한 것. 이것은 전적으로 자기가 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더 넓은 세계를 인식하고 더 높은 삶을 꿈꾼다면,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이 정해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 정해진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 정해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줄이거나 희석시키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정해진 마음이 조금이나마 희석되고 줄어들면, 나는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세계의 더 깊은 곳까지 가볼 수 있습니다. 정해진 마음이 있으면, 자기가 가진 세계가 자기가 죽기 전까지 평생 가질 수 있는 세계의 전부입니다. 정해진 마음이 있으면, 이 세계를 자기 품으로 끌어당겨 안으려 하기보다는 자기 마음을, 자기 생각을, 자기 뜻을 이 세상에 부과하려고 합니다. 자기 뜻과 자기 기준을 세계에 부과하려고 할 때, 바로 자기 자신은 세계와 어깃장이 납니다. 세계와 불화를 겪습니다. 세계와 어깃장이 나면 얻는 것이 적어집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아무리 사소하게 보였던 것일지라도 거기서 위대한 빛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인간입니다. 그것을 하게 하는 힘은 정해진 마음을 줄이려고 하는 노력이고 그것을 못하게 하는 마음은 정해진 마음에 더욱 강하게 갇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