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노자 사상에서 물은 어떤 특성을 갖습니까? A.여기에서 ‘선(善)’은 착하다는 뜻보다는 탁월하다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가장 탁월한 것이 물과 같다”라고 한다면, 물은 도대체 어떤 특성이 있어서 그럴까요? 우선 만물을 이롭게 해주는 특성이 있습니다. 물이 없으면 살 수도 없고 성장할 수도 없겠죠. 지구상의 생명은 물을 토대로 합니다. 철학을 연 탈레스도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지요. 만물을 이롭게 해주는 기본적인 태도는 다투지 않는 것입니다. 물은 이미 허락된 길만 찾아서 흐립니다. 만물을 이롭게 하는 일도 허락된 길을 그저 흐르면서 수행할 뿐이죠. 무엇과도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자기 앞길을 막아도 다투지 않고 그저 묵묵히 돌아서 갈 뿐이에요. 물은 이런 특성이 있어서 모두가 좋다고 하는 곳에는 처하기가 어렵습니다. 좋다고 하는 곳에는 이미 다른 것들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 뻔하죠. 그래서 물은 사람들이 모두 안 가려 하고 싫다고 하는 곳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處衆人之所惡]. 이런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여 물은 결국 가장 탁월해지는 것입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해주는 특성이 있다. 물은 모두가 좋다고 하는 곳에는 처하기 어렵다. 그래서 모두 안 가려 하고 싫다고 하는 곳에 처한다.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여 결국 가장 탁월해지는 것이 물이다. ‘싫어한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이상하다, 잘 해석되지 않는다는 등의 속뜻을 품고 있죠. 익숙하지 않고 이상한 것은 대개 새로운 것들입니다.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것은 기존의 익숙한 문법으로는 쉽게 해석되지 않죠. ‘바로크 시대’의 ‘바로크’라는 말은 원래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바로코baroco에서 왔다고 합니다. 일그러진 진주라고 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 어딘가 이상한 것이라는 뜻이겠죠. 새롭게 전개되는 시대가 그 이전의 시각으로 볼 때는 매우 이상했기 때문입니다. 바로크는 사실 르네상스가 퇴조하면서 새롭게 나타난 사조였는데, 르네상스의 분위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새로 등장한 사조가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죠. 제대로 된 진주가 아닌, 일그러진 진주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이상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가 감춰져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존의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하는 습관에 젖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혁신을 이상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탁월함은 물과 같다고 하는 말의 핵심은 물의 외적 특성에서 볼 수 있는 겸손과 부드러움보다는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특성에 있어요. 즉 보통 사람들이 이상하고 어색하게 보는 그곳에 처하면서 혁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선약수’가 거의 도의 경지인 이유입니다. 가장 탁월함으로서의 물은 겸손과 부드러움이 아닌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기존의 문법으로 이상하고 어색하게 보이는 곳에 기꺼이 처하는 물의 자세처럼... 개인이나 나라나 모두 혁신의 흐름을 따르면 발전하고, 따르지 않으면 정체하거나 낙후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이치입니다. 따라서 과거의 문법으로 현재를 해석하는 우를 범해서는 절대 안 되죠. 영국은 증기 자동차가 발명된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따르지 못했습니다. 영국은 새로 발명된 자동차에 맞춰 적응한 것이 아니라, 구시대의 운송수단인 ‘마차’의 논리에 익숙해 있다가 ‘마차’의 기득권을 해치지 않으려고 새로운 흐름인 ‘자동차’를 규제해버립니다. 과거로 현재의 발목을 잡은 전형적인 예이죠. 바로 1865년에 발동한 적기 조례Red Flag Act가 그것입니다. 증기 자동차가 실용화되자 기존의 산업을 이끌던 마차업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될 것을 걱정해 자동차의 적극적인 실용화를 반대합니다. 기존 산업의 보호를 위해서 새로운 산업을 규제한 것이 바로 이 조례입니다. 당시 자동차들은 이미 시속 30마일 이상을 달릴 수 있었는데, 마차업자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 교외에서는 시속 4마일, 시내에서는 2마일로 속도를 제한하죠. 게다가 붉은 기(밤에는 붉은 등)를 든 사람이 자동차에 앞서 달리면서 속도를 조절해야 했습니다. 이 조례는 영국 자동차의 발목을 30년이나 붙잡았습니다. 영국이 그러고 있는 동안 가솔린 자동차의 시대가 열렸고,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이 후발주자였던 독일이나 미국 등으로 넘어가버렸죠. 이처럼 과거로 미래의 발목을 잡는 예는 허다합니다. 과거는 익숙하고 새로운 것들은 낯설고 이상한데, 이상하면 잘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경향 때문입니다. 노자는 물의 특성을 많은 사람들이 다 이상하고 안 좋다고 하는 곳에 처하는 것에서 포착합니다. 이상한 것은 새로운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모든 새로움은 이상한 얼굴로 등장하거든요. 세계의 변화에 영항을 줄 정도의 혁신은 처음에는 다 어색하고 이상한 것으로 출발합니다. 그런데 어색하고 이상한 것으로 출발하는 이 혁신의 물길은 어떻게 틀 수 있는가? 노자는 이것을 ‘경쟁하지 않음不爭’으로 풀어나갑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스스로는 경쟁에 빠지지 않습니다. 경쟁한다는 것은 경쟁 시스템에 참여한다는 뜻이죠. 경쟁 시스템은 대개 이미 자리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한 사회는 정체된 사회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있는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서 그 시스템의 한 자락을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덤비는 일이 경쟁이기 때문에, 이미 있는 시스템이 점점 견고해질 뿐이죠. 노자의 눈에 비친 물은 경쟁하지 않습니다. 다투지 않는 물의 특성이 바로 이것이에요. 경쟁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 있는 시스템 안에 끼어들기보다는 아무도 가지 않는 전혀 다른 길을 자신의 선택지로 삼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이미 차지한 곳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직 이상하고 어색하게 보이는 바로 그곳에 처하게 되는 것이죠. 그곳은 누구도 먼저 차지하려고 덤비는 곳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차지하려고 덤비지 않는 이상한 곳, 거기에서 혁신의 씨앗이 남몰래 자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여는 혁신은 어색하고 이상한 것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혁신의 장(場)은 경쟁이 주가 아니다. 노자의 눈에 비친 물은 경쟁하지 않는다. ... 그래서 노자에게 가장 탁월함은 물과 같다.
창조의 기운은 누구나 다 아는 곳이 아니라, 아직은 비밀스럽게 숨어 있는 곳에서 시작되지요. 그 이상한 곳에 도달하는 힘을 물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탁월함은 물과 같다는 말이 결국 옳은 말이 되는 것이죠. 노자의 이 구절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탁월함은 물과 같다. (上善若水)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水善利萬物而不爭)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處衆人之所惡) 그래서 도에 가깝다. (故畿於道)”
최진석, 『나 홀로 읽는 도덕경』, 시공사, 2021, 83~8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