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제가 건너가기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할 때, 헤르만 헤세의 말을 인용하곤 합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 이상이다.” ‘자기 자신 이상으로 넘어가기를 꿈꾸는 존재로 태어났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적지 않은 분들이 ‘당신은 도가철학을 전공했는데, 너무 도가적이지 않다. 유가적이다.’ 이런 말씀들을 합니다.
‘유가는 분투노력하고 발전을 꿈꾸는 것이고, 도가는 그냥 자연이 흘러가는 대로 물 흐르듯이 유유자적하게 지내면 된다. 이것을 도가철학이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노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유유자적하고 분투노력하지 않으면서 사는 방식을 노자가 말했다고 말하면서, 가장 많이 드는 예가 무위(無爲)라는 개념입니다. 무위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이 말은 어떤 산속이나 들판에 서서 팔짱을 끼고 그냥 아무것도 안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문용어로서의 무위(無爲)는 어떤 의미이냐? 무위는 ‘봐야 하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대로’ 보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보여지는 대로’ 보는 사람은 넓게 보고, ‘봐야 하는 대로’ 보는 사람은 좁게 봅니다.
노자는 분명히 말합니다. ‘봐야 하는 대로’ 보는 사람은 ‘보여지는 대로’ 볼 수 있는 사람한테 항상 패배한다.왜 그러냐? ‘봐야 하는 대로’ 보는 사람은 자기 진실을 세계의 진실이라고 우기는 사람입니다. ‘보여지는 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정해진 자기의 진실을 차라리 포기하고 세계의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도덕경(道德經)』 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무위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되지 않는 일이 없다.’
노자의 시선은 ‘무위’에 있지 않고, ‘무불위’에 있습니다. 큰 성취를 이루는 것! 여기에 노자의 뜻이 있습니다.그런데 도덕경을 읽는 사람들 중 몇 분들은 앞부분만 읽습니다. 도덕경을 읽으면 뒤로 물러나라고 했다. 그래서 계속 뒤로 물러나는 것이 노자의 뜻인 것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 다음에 바로 이어져 쓰여 있어요. 뒤로 물러나라, 그래야 네가 앞에 설 수 있다. 노자는 앞에 서는 것이 목적이지, 뒤 따라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에요.
‘무불위(無不爲), 되지 않는 일이 없다, 큰 성취를 이룬다.’
이 ‘되지 않는 일이 없고, 이루는 큰 성취 가운데 가장 큰 것’ 이 무엇이냐? 취천하(取天下)! 즉, 천하는 갖는 것이에요. 『도덕경』 안에 이렇게 다 쓰여 있습니다.
서양 중세에 스콜라 철학이 있었어요. 그 스콜라 철학자들은 Vita Contemplativa, 관조적 삶을 주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콜라 철학들이 삶을 유유자적하고, 속세의 일에 관심이 없고, 그런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관조적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관조해야, 세계의 진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계를 보여지는 대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다가오는 대로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삶의 승리자. 즉 큰 성취를 이루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건너가는 것을 시도해야 합니다.
멈추면 썩고, 건너가면 생기 충만해집니다.
이 건너가기가 인간적인 삶에 유일한 태도라는 것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