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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뉴스레터 #032] 이 짧은 인생에 한 순간 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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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356회   작성일Date 22-03-06 21:46

    본문

    “이 짧은 인생에 한 순간이라도 별처럼 살다 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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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뉴스레터 #032
    2022.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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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토요일 기본학교 수업이 있었습니다.  최진석 교장선생님의 <철학의 탄생>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수업은  오후 1시반에서 6시까지 두 타임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요.  교수님의 강의는 내리 3시간을 진행하고서야 쉬는 시간을 가질 정도로 열띤강의였습니다. 

    •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최진석의 생존철학은 24편입니다. "우리 모두는 별처럼 반짝일 가치 있는 존재"라는 제목인데요.  짧은 인생에서 별처럼 반짝일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래 영상과 글을 소개합니다.   

    • 이 번 한 주도 한 걸음 더 나은 삶으로 건너가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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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24편의 내용을 발췌합니다. )
     
    이 짧은 인생에 한 순간이라도 별처럼 살다 갈 수가 있다
       
     저는 당나라 초엽의 장자소를 연구했습니다. 그런 연유도 있지만, 또 장자라는 작품 전체에서 보여주는 장자의 스케일과 그 다음에 미학적 승화, 이런 것들이 상당히 저를 깊게 감동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저한테는 장자라는 철학자가 내 마음속에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장자가 쓴 장자라는 책은 이렇게 두껍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두꺼운 책을 쓰게 된 장자의 동기가 무엇일까? 라는 것을 가지고 장자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거기서 혹시 이것 때문에 장자가 이렇게 두꺼운 책을 쓰지 않았을까 그렇게 넓고 두터운 사상 체계를 건립하지 않았을까 하는 문장을 하나 발견했어요.
     
     『장자』 「지북유」편에 나오는 한 문장입니다. “인생천지지간(人生天地之間),한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한평생을 산다는 것은, 약백구지과극(若白駒之過隙)백구(白駒)라고 하는 것은 천리마의 별칭입니다. 백구라고 하는 천리마가 있어요. 한번 발돋움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멀리 가는 말입니다. 백구지(白駒之)의 지()는 무엇이 무엇무엇 한다고 할 때 붙이는 말이죠. ()는 지나간다는 말입니다. ()은 아주아주 좁은 틈새를 극이라고 합니다. 그 책받침 두께도 안 될 정도의 얇은 틈새를 극이라고 그럽니다. 이게 어떻게 되냐?
     
    인생천지지간 약백구지과극(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隙)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한평생을 산다는 것은 
    천리마가 책받침 두께도 안 되는 그 얇은 틈새를 휙 지나가는 것과 같다.
     
     그 뒤에 이런 말이 따릅니다. “홀연이이(忽然而已), 홀연할 따름이다.” 매우 짧다는 말이죠. 짧다는 말로도 그 짧음을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짧음입니다. 책받침 두께 정도도 안 되는 그 얇은 틈새를 천리마가 휙 지나가는 것처럼, 인생은 그렇게 홀연하다. 생명, 삶에 대한 장자의 이런 인식이 장자로 하여금 그렇게 두껍게 써질 수밖에 없는 그런 사상을 구축하게 한 힘이라고 저는 생각하게 된 것이죠.
     
     이것 때문에 혹은 이것으로부터 촉발 되어서 장자는 생각을 시작했을 것 같다고 저는 생각을 하게 됐죠. 물론 이것은 맞지 않을 수도 있죠. 그리고 맞고 안 맞고는 저한테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내가 원하는 장자를 구축하는 한 과정일 수도 있죠. 어쨌든 저는 장자 철학 혹은 장자 사상이 건립되는 가장 기초가 되는 주춧돌 한 장을 발견 한 것이에요.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어느 TV방송인데, 남자들 몇이서 밥 해 먹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런 프로그램이죠. 근데 그 남자들 몇이서 밥을 해 먹는데 그날 어떤 여성이 게스트로 초대되어 왔어요. 저녁밥을 다 먹고 그 여성이 평상에 드러누웠어요. 그 촬영 장소는 섬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상에 드러누워서 이렇게 하늘을 보니까 별이 얼마나 밝게 반짝반짝하겠어요. 그러니까 그 여성이 야 그 별이 너무나 밝다그러면서 그것을 보고 감탄하고 그리고 남성들도 와서 그 별이 빛나는 것을 감상하겠죠. 근데 남성들이 여성에게 그 반짝이는 별을 더 잘 감상하게 해주고 싶어서 방송용 조명도 다 꺼주고 방 안에 있는 형광등 불빛도 다 꺼줍니다. 얼마나 수선스러운 일입니까. 그 수선스러운 일들을 다 해 가면서 불을 다 꺼줍니다. 그래서 그 섬에 불빛 하나도 없이 아주 칠흑 같은 밤이 되죠. 그 칠흑 같은 밤에 하늘에 걸려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보면서 네 명의 사람들이 감탄을 하고 탄성을 지릅니다. 그래도 그 풍경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밖에 걸려 있는 별을 보기 위해서는 방안에 있는 형광등 불도 끄고 방송국 조명도 다 꺼 가면서 저렇게 수선스러운 절차들을 다 밟고 수고를 아끼지 않고 해서 그 별을 보고 감탄하는데 밖에 있는 별, 밖에 걸려 있는 별을 보기 위해서는 그 수고를 다 하면서도 아무 수고도 들어가지 않을 자기 안에 무슨이 있는지, 자기는 무슨 을 품고 있는지, 또 자기는 어떤 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구나, 눈길 한 번 주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겠는가...밖에 있는 별 반짝이는 것 감탄하고, 자기한테 있는 별 그리고 자기가 무슨 별 인지 눈길 한번 주지 않다가는 책받침 두께도 안 되는 그 얇은 틈새를 천리마가 휙 지나가는 것 같은, 짧고도 짧은 인생에서 자기는 한 번도 한 순간도 별처럼 살지 못하고 간다. 이래도 되겠는가하는 것입니다.자기가 별이 아닌데 밖에 있는 별이 아무리 반짝인들 그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밖에 있는 별 감탄하다가 자기는 한 번도 별처럼 살지 못하는 이 형편없는 길을 우리가 왜 가야만 하는가라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질문하라, 생각하라, 불편함을 느껴라, 문제를 발견하라, 자신을 궁금해 하라, 자신을 향해 걸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래야 주인으로 산다.’ ‘그래야 노예가 되지 않는다하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래야 이 짧은 인생에 한 순간이라도 별처럼 살다 갈 수 있다.’ '별처럼 사는 것이 무슨 일인지 한 번이라도 경험할 수 있다'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밖에 걸려 있는 별을 감탄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아직 내가 별처럼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인생 짧습니다. 과거에 갇혀서 진영에 갇혀서 자기가 노예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단 한 순간이라도 별처럼 사는 일을 경험해 볼 가치 정도는 있는 존재입니다.
     
    감사합니다.  


    최진석, <생존철학>ep_2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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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지적 호전성
     
     물건-제도-사상 등 문명의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들었다. 이것들은 다 질문의 결과이지 대답의 결과가 아니다. 그래서 질문하는 자가 세상의 주인 자리를 차지한다. 대답은 이미 있는 이론과 지식을 그대로 먹었다가 누가 요구할 때 그대로 뱉어내는 일이다. 대답할 때는 ‘원래 모습’을 손상하면 안 되기 때문에 공손하고 조심히 다뤄야 한다. 대답하는 자는 당연히 무엇인가를 떠받들면서 어질고 착하게 성장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도덕 지향적인 사람이 된다.

     질문은 자기 자신에게만 있는 고유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안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일이다. 질문하는 자는 호기심이라는 화살을 무엇인가를 향해 거침없이 쏘는 자다. 이 ‘거침없음’이 없으면 질문도 없다. 거침없는 호기심은 대상을 파고드는 일이므로 속성상 공격적이거나 호전적인 특성을 띤다. 호기심이 튀어 나가는 일은 도덕으로 물드는 것 이전의 사건이므로 도덕적인 제어와 큰 관계가 없다.

     사람은 개념을 세워서 세상을 자기 뜻에 따라 정리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다. 자기 뜻에 따라 정리하는 것을 전략이라고 한다. 세상을 자기 맘대로 디자인해서 살려는 자세다. 누군가 전략적으로 디자인해놓은 틀을 공손하게 지키며 사는 것은 전술이다. 전략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경지를 보장하고, 전술은 종속적 상황을 강요한다. 세상을 자기 뜻대로 디자인해서 사는 전략적 높이의 사람들은 공격적이거나 호전적이다. 좀 공손하게 표현하면 적극적이다.
     
     ‘오타쿠’라는 개념이 있다. 한 분야에 병적일 정도로 깊이 빠진 사람을 말한다. 병적으로 한 분야에 빠진 사람은 한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개념으로 정리하였고, 한국에서는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나중에 ‘오타쿠’와 비슷한 발음을 찾아 ‘덕후’라고 따라 한다. 개념화는 문명의 기초이다. 개념화는 문명을 끌고 나가는 힘이다.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을 자기의 뜻에 따라 개념으로 포착하는 일은 호전적인 태도가 없는 사람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호전적이지 않은 점잖은 사람은 그냥 바라만 보다가 빌려 쓴다. 빌려 쓰고 빌려 쓰다가 종국에는 종속적 상황에 빠진다.
     
     자신의 욕망에 따라 세상을 자기 뜻대로 디자인하려는 태도를 나는 ‘지적 호전성’이라고 부른다. 지적 호전성이 없이 빌려 쓰거나, 따라서 하거나, 무엇인가를 떠받들며 사는 사람들은 ‘착함’ ‘어짊’ ‘공손함’ 등등을 추구하는 ‘도덕 지향적’ 삶에 빠진다. 자신이 도덕적인가 아닌가는 별 상관없다. 그냥 도덕 지향적이기만 한다. 세계의 모든 일을 도덕을 중심으로 하여 해석하는 습관에 빠진다. 

     공자의 ‘인’(仁)도 지적 호전성을 발휘하여 공자가 자기 맘대로 ‘정한 것’이다. 공자의 ‘인’을 도덕적 자각 능력이라고 해보자. 통치자나 나라에 도덕적 자각 능력을 키워놓으면 그 나라는 부강해진다는 것이 공자의 원뜻이다. 공자의 시선은 국가의 부강에 있다. 그러나 빌려 쓰는 사람들은 태도가 도덕 지향적이기 때문에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는 목적은 세속적이거나 천한 것으로 도외시해버리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어질게만 살아야 한다는 당위에 빠진다. 도덕과 이익을 갈라치기 한 다음에 이익을 취하는 것을 수준 낮은 것으로, 도덕을 취하는 것을 높은 것으로 정해놓고 산다. 이익과 도덕을 단절시키는 이 촌스러움이 극에 이르면 종국에는 종속적 상황에 빠진다.

     우리는 지식 수입국이다. 지식 수입국은 삶의 전략을 빌려다 쓴다. 반면, 지혜는 지식 생산에 관여하는 지적 능력이다. 삶의 전략에 관여한다는 의미에서 지혜는 속성상 호전적이다. 지적 호전성은 현실적 호전성에 관여한다. 지적 호전성이 없어서 개념을 못 만드는 사람이라면, 총도 만들지 못한다. 총 자체가 개념의 체계인 지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지혜의 여신은 미네르바(아테나)이다. 미네르바의 상을 보셨는지 모르겠다. 완전 무장 상태이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방패와 칼을 들었다. 지혜의 여신이 완전 무장 상태인 것이 도덕적인 우리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다. 서양에서 지혜는 크게 두 가지에 관여한다. 전쟁과 목공(산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혜로운 성군으로 세종대왕을 꼽는다. 그래서 광화문에 동상도 세우지 않았겠는가. 세종대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다. 현대에 와서도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다. 군 통수권자란 전쟁을 선포하고 강화를 맺는 일을 최종적으로 하는 지도자란 뜻이다. 광화문에 동상으로 세워진 세종대왕은 책만 보고 있다. 옆에 칼이 없다. 후손들이 세종을 대왕으로 해석하여 동상을 세우면서 원래 세종이 들고 있었을 칼을 치워버린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머릿속이 도덕으로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칼을 놓은 왕은 왕이 아니다. 군대가 없으면 국가가 아닌 것과 같다. 우리는 어쩌다 칼을 차지 않은 왕을 성군으로 인식하게 되었는가. 쟈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발을 뗄 때 앞으로 기우는 몸. 살아 있는 사람이 갖는 지적 호전성이 읽히지 않는가.
         
        
    최진석, <지적호전성>, 《중앙일보》, 21년 01월 0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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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말새몸짓 활동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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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학교 2기 4번째 수업이 지난 토요일, 함평 호접몽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수업주제는 <철학의 탄생>이었습니다. 

    * 수업에 참여한 모든 분들은 방역패스를 확인 후 발열체크 이상여부를 확인을 통해 입실하였습니다. 

    * 이번 수업에서 인상깊었던 최진석 교수님의 한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각의 크기가 나의 크기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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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새말새몸짓 홈페이지에서는 새말새몸짓의 활동을 소개하고 참여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만, 늘 새말새몸짓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아울러, 저희는 비영리법인으로 후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들의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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