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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뉴스레터 #027] 세계를 여는 위대한 활동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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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569회   작성일Date 21-12-21 11:51

    본문

    창의성 이것은 생각하는 자들이 행사할 수 있는 세계를 여는 위대한 활동입니다.

    나와 세상을 바꾸는 만남  
    (사)새말새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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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뉴스레터 #027
    202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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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2기 입학식이 지난 12월 4일 함평 호접몽가에서 있었습니다.  기본학교 구성원모두가 함께 한 뜻깊은 입학식이었습니다.   

    •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최진석의 생존철학은 10편의 전반부입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길, 새로운 세계를 여는 힘이 바로 창의성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아래에 강연의 일부 내용을 발췌 소개합니다.

    • 이 번 한 주도 한 걸음 더 나은 삶으로 건너가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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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10편 전반부 내용을 발췌합니다. )
     
     "창의성, 세계를 여는 위대한 활동.

     
     이 학()은 지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식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왜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느냐? 지식이 만들어질 때, 구체적인 것들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것들을 떠나 있습니다. 모든 지식은 이 세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또 이렇게 연역할 수 있어요. 구체적인 어떤 것을 가진 것보다 그것을 설명하는 능력을 가진 것이 더 세.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세고, 안 세고의 문제는 통제력과 영향력. , 힘을 중점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유물을 가진 것보다 학을 가진 것이 더 세고,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보다 눈에 안 보이고 안 만져지지는 것을 가진 것이 더 세고,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을 설명해 놓은 것이 더 세다고 말할 수 있죠.
     
    (중략) 우리의 논의를 전개 시키는데, 편이하게 세계를 둘로 나눠서 봐보죠. 하나는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현상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추상세계. 그렇다면 우리는 현상계에 접촉하거나 현상계를 만지는 것보다 추상세계를 접촉하는 것이 더 힘이 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 두 세계를 모두 다루면서 삽니다. 어떤 사람은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세계에 더 밀착해 있고, 어떤 사람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이 세계에 더 밀착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은 이 두 세계를 동시에 접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요.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들을 접촉하는 능력을 우리는 감각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인 세계와 직접 접촉하는 능력입니다. 감각, 촉각, 후각, 만지는 것, 보는 것, ‘감각입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이 추상 영역, 추상 세계는 감각으로는 접촉할 수 없어요.이 추상세계를 접촉하는 능력을 우리는 사유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유 즉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고는 이 추상세계를 접촉하고, 그 다음에 감각으로는 이 현상세계,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계와 접촉합니다.
     
    물건을 만들 때도 감각에 집중에서 감각을 사용해서 물건을 만드는 것을 우리는 기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감각도 어느 정도 사용하면서 추상적인 방식,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 이론을 가지고 물건을 만드는 것, 이것을 우리는 기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세계를 완전히 벗어나서 추상적인 영역에서 이 세계를 통제하는 방식을 우리는 과학이라고 합니다.
     
    기술과학, 과학기술은 붙여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능과학, 과학기능 이렇게 붙여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과학에 붙여주기에 이 기능은 너무 구체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너무 현상적이기에 그렇습니다.
     
    기능을 가진 사람이 더 센 사람이에요? 기술을 가진 사람이 더 센 사람이에요? 기술을 가진 사람이 더 센 사람입니다. 기술을 가진 사람이 더 센 사람이에요? 과학을 가진 사람이 더 센사람이에요? 과학을 가진 사람이 더 센 사람입니다.
     
    기술적 세계관에 갇힌 문명과 과학적 세계관을 시도한 문명 사이에 큰 격차가 나타난 사건, 이것이 사실은 아편전쟁입니다. 학적 세계관으로 만들어진 생산력을 기술적 세계관으로 만든 생산력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진 사건, 이것이 아편전쟁입니다.
     
    우리가 쾌락을 생산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감각적 방식으로 감각의 채널을 통해서, 쾌락을 생산하는, 쾌락을 느끼는 방식. 이것을 우리는 예능이라고 합니다사유의 방식, 생각의 개입을 통해서 쾌락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쾌락을 예능에서도 누리고, 예술로도 누립니다. 그런데 예능과 예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생각이 어떻게 개입하느냐? 사유가 어떻게 개입하느냐? 예능은 생각을 골똘히 하면서 보면, 재미없습니다. 생각을 하지 않고, 감각에만 맡길 때, 예능적 쾌락은 증가합니다.
     
    그런데 예술은 생각을 끊고 감각에만 맡기면, 예술로부터 쾌락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느낄 수 없어요. 예술은 골똘히 생각하고, 사유를 집중했을 때에만 거기에서 쾌락이 생산 됩니다. 그래서 생각을 하면서 봐야 재미를 느끼면 예술이고, 생각을 하면서 보면 재미가 없어진다면 그것은 예능입니다. 감각이 주도적으로 개입하느냐, 사유가 주도적으로 개입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지금 우리 논의를 위해서 세계를 둘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는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세계.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세계. 현상 세계, 추상 세계. 현상세계에 접촉하는 인간의 능력을 감각이라고 하고, 추상 세계와 접촉하는 인간의 능력을 우리는 사유라고 합니다.
     
    창의성, 자유, 독립, 이런 것들은 감각적인 것이겠습니까? 사유의 영역에 있는 것이겠습니까? 사유의 영역에 있는 것입니다. 용기? 사유의 영역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용기는 감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용기를 지적 인내라고 합니다. 여기서 지적이라는 말은 사유의 영역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용기, 창의, 독립, 자유, 민주 이런 것들 전부 사유의 영역입니다. 생각하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이 끊기고 감각적인 레벨에 있는 사람들은 독립, 자유, 창의, 용기와 같은 것들을 중요하게 보지를 못합니다. 그것들 보다는 오히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세계에서 존재하는 현상적인 사건들을 더 중요하게 봅니다.
     
    창의성 이것은 생각하는 자들이 행사할 수 있는 세계를 여는 위대한 활동입니다


    최진석, <생존철학>ep_1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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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소개합니다. 
     
    탁월한 인간, 바로 예술가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을 피아노 연주자(피아니스트)라고 한다. 피아노 연주자는 피아노가 가진 기능을 잘 다루고 표현한다. 그런데 피아노 연주자가 피아노의 기능을 잘 구현하다가 더 이상 구현할 것이 없는 단계에 이르면, 피아노를 포함한 더 넓고 높은세계로 상승한다. ‘더 넓고 높은세계에 바로 음악의 이론과 체계가 있다.
     
     이제 이 피아노 연주자를 음악가(뮤지션)라고 불러야 한다. 피아노 연주자가 피아노가 가진 기능을 완벽하게 구현한 다음 음악가의 단계로 상승했다.
     
     이 음악가가 음악의 이론, 음악의 체계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구현하다가, 더 이상 구현할 것이 없게 되면 음악 전반을 포함하는 더욱 더 넓고 높은단계로 훌쩍 상승한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음악 활동을 통해서 음악 이론이나 체계를 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유, 죽음, 슬픔, 영웅, 웅명 등과 같은 주제를 말하기에 이른다. 이제 인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문명의 방향을 제시하고, 인류의 본질을 새로 규정하고자 덤비는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른 사람을 우리는 예술가(아티스트)라고 부른다.
     
     식사하거 어느 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를 주문했다고 하자. 김치찌개가 나와 그 국물을 한 모금 떠먹어보고 더 이상의 맛은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감탄하면서 한마디 한다.
    , 이 김치찌개 예술이다.”
    이 김치찌개 아트다.”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김치찌개가 예술적이다’ ‘아트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려면 그것은 유일하고 고유하며 가장 탁월한 단계, 가장 높은 단계로 상승해 있어야 한다.
     
     예술가가 인간에 대해 한 이야기가 그 예술 작품에 들어 있는 메시지다. 이렇게 해서 예술가는 단순히 형상화의 능력을 가지 기능인이 아니라 문명의 깃발로 우리 앞에 우뚝 선다. 이제 보통 사람들은 예술가가 표현한 문명의 지표에 동의하고 감탄하면서, 예술가가 열어주는 새로운 길을 바라본다.
     
     피아노 연주자, 음악가, 예술가,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눠놓고 보면 피아노 연주자에서 음악가까지의 간격과 음악가에서 예술가까지의 간격이 거의 비슷하거나 동일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만약 피아노 연주자에서 음악가까지 올라가는 난이도가 ‘5’정도 된다고 한다면, 음악가에서 예술가로 올라가는 난이도는 대략 ‘5정도 될 것이다. 예술가로 올라서는 일은 그 만큼 어렵다.
     
     왜 그런가? 피아노 연주자에서 음악가 수준까지는 사실상 이미 있는 피아노의 기능, 이미 있는 음악 이론, 이미 있는 음악 체계를 구현하는 단계다. 이미 있는 길을 갈 뿐이다. 그런데 예술가는 아직 없는 길을 열어야 한다.
     
     이미 있는 것을 따라하거나 재생하는 일은 탁월한 활동일 수 없다. 문명의 지표가 될 수 없다. 선도력을 가질 수 없다. 탁월함의 표현인 예술은 아직 오지 않은 빛을 먼저 끌어당기는 일일 수밖에 없다. 예술이란 이미 있는 길을 익숙하게 걷는 현재의 장소에 없는 길을 새로 열면서 가는 단계다. 없는 길을 여는 단계와 이미 있는 길을 가는 단계는 차원이 다르다.
     
     없는 길을 여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이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된 능력이 있다. 바로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아직 열리지 않은 길을 열 수 있도록 인간에게 구비된 힘이다. 상상력이나 창의력도 아무 곳에서나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음악가 상위 수준에서 예술가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칠 때 비로소 발휘된다.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2018[2017], 129~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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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학교 최진석 교장 선생님과 기본학교 2기 구성원들
    ** 새말새몸짓 활동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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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주 토요일(12/4) 기본학교 2기 입학식이 있었습니다. 기본학교 2기의 입학을 축하하기 위해 1기 6분도 참석하여 환영의 자리를 더욱 빛내 주었습니다.  

    * 코로나19로 기본학교 구성원들만 참석한 조촐한 입학식이었지만, 그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기본학교 교장 최진석 이사장님께서 환영사를 시작으로 신입생 한분한분 자기소개와 인사를 하였고, 이에 1기 선배들의 환영사가 있었습니다. 

    * 이번에는 선언문 낭독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래 선언문 전문을 소개해 봅니다. 
    [선언문 전문]
    나는 건너가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나는 탁월함을 추구하며, 나보다 더 나은 나를 꿈꿉니다. 
    나는 가장 먼저 나를 궁금해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나는 기본학교 2기 ○입니다. 

    * 최진석 이사장님은 환영사에서 시장으로 내려온 교회 이자 사찰처럼, 이 기본학교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다는 말씀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번 입학식에는 코로나로 인하여 취식이 불가하기에, 대전 떡의 명인 선명숙 님께서는 포장된 떡을 보내주시고, 광주 오명은·전화윤 대표님께서는 도시락을 직접 개별 포장하여 보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이와 더불어 새말새몸짓의 뜻에 공감해주시고 늘 후원해주시는 많은 회원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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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말새몸짓 대구경북 모임 소개. 

    * 새말새몸짓 대구경북모임(회장 이면우님)에서는 11월 책읽고건너가기 북토크를 지난 토요일에 거제도 김종대 박사님댁(새말새몸짓 거제모임)에서 진행했다고 합니다. 11월의 책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고 하는데요, 책읽기를 통해 건너가기 위한 모임을 지속하고 있는 대구모임에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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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새말새몸짓 홈페이지에서는 새말새몸짓의 활동을 소개하고 참여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만, 늘 새말새몸짓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아울러, 저희는 비영리법인으로 후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들의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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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말새몸짓 회원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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