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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의 모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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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노시균 (119.♡.167.198)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회   작성일Date 26-07-11 14:02

    본문

    - 모정 -  




    이때다.  


    "컹컹컹"   

      

    둑 아래쪽에서 개가 우렁차게 짖는 소리. 고개 돌려 보니 온몸이 희고 다리가 긴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우리 둘을 향해 힘차게 달려온다. 얼핏 진돗개 같지만 놓아기르니 똥개다. 흰둥이가 둑을 타고 겅중겅중 순식간에 코 앞에 닥친다. 너무 갑작스러워 이 개가 미쳤나 당황하는 사이.

     

    "깨갱"    


    갑자기 베스가 비명을 지른다. 깜짝 놀라 놈을 발로 걷어차니 도망은커녕 내게 덤빌 듯 말 듯 눈을 부라린다. 계속 헛발질 해대니 몇 걸음 물러서더니 왔던 쪽으로 달아난다. 베스를 어루만져 달래며 살핀다. 상처 한 군데 없이 멀쩡하다. 그래도 너무 놀라서 가게 가던 길을 멈추고 서둘러 집으로 되돌아온다. 걱정되어 다시 살펴봐도 역시 상처가 없고 아픈 기색도 없다. 안심이다. 음, 다음에는 놈이 못 덤비게 둑방길 갈 때 긴 작대기를 가져가야겠다.    


    며칠 후 아부지는 베스가 갑자기 새끼를 낳는다며 놀라신다. 언제 새끼를 가졌지? 이제서야 베스가 왜 산책을 반기지 않았는지, 걸음이 소처럼 늦었는지, 금방 지쳤는지 알 거 같다.  


    "이상하군. 아직 새끼 낳을 때가 안 됐는데."    


    아부지는 벌써 아셨던 거다. 베스가 임신했다는 걸. 나 학교 간 사이 새끼 받으려고 어디엔가 다녀오셨던 거다.    

    베스가 새끼를 낳으면 한 마리씩 시간이 꽤 걸린다. 헌데 이번엔 금방이다. 전부 네 마리란다. 다 죽었단다. 숨 못 쉬어서 아니고 뱃속에서 이미 죽어서 나왔단다. 베스가 새끼를 여러 번 낳았지만 이런 적은 없다. 아무래도 그놈 흰둥이 때문 같다. 아부지에게 며칠 전 일을 말한다. 베스가 깨갱 했고 상처는 없었다고.     


    "그놈이 배를 문 거야. 그래서 새끼가 죽은 거지."    


    아, 그 개ㅅㄲ. 입에서 욕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배를 물다니. 근데 뱃속에 새끼가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나도 몰랐는데. 기독병원 앞 청년관 마당에서 투견하는 거 보면 개들끼리는 목이나 귀를 무는데? 배는 안 무는데? 가서 콱 죽여버리고 싶다. 근데 놈이 앞발 들고 대들면 내 키만큼이나 큰 데 어쩌지. 묵직한 몽둥이를 가져가서 흠씬 두들겨 패야겠다.  


    베스에게 미안했다. 밥을 듬뿍 준다. 안 먹는다. 학교 갔다 와 보니 개 밥그릇에 밥이 그대로. 다음날 헌 밥 버리고 새 밥을 다시 준다. 안 먹는다. 삼 일째. 다시 바꿔 줘도 역시 안 먹는다. 안 되겠다. 베스가 제일 좋아하는 거 만들어 줘야지. 식구들은 비싼 쌀을 아끼려고 옥수수 반을 섞어 지은 옥수수밥을 늘상 먹는다. 명절과 생일 그리고 소풍 때만 순전히 하얀 쌀로 밥을 짓는다. 그 귀한 쌀밥을 새로 해서 물에 말고, 그 위에 참기름 동동 띄우고 손가락으로 휘휘 젓는다. 밥그릇을 베스 코 앞에 바싹 들이댄다. 이마저 고개를 돌린다.  

      

    "베스야, 미안해. 잘못했어. 제발 먹어. 니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아부지가 안 먹으면 죽는대."   


    그렇게 일주일. 베스가 진짜 죽었다. 굶어 죽었다. 그 좋아하는 걸 쳐다보지도 않고, 혀에 물 한 방울 안 적시고 죽은 거다. 개가 굶어 죽어 가는 걸 보는 건 처음이다.   




    ㅡㅡㅡ




    언제부터인가 죽음은 늘 내 곁에 있었다. 죽은 사람에게 하는 말은 많이 들었다. 집 앞 신작로에 상여가 지나가면 언제나 이 소리가 방에서도 들린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나가서 보면 꼭 다리를 건너기 전에 가던 길을 멈추어 선다. 한 남자가 꽃상여 위에 우뚝 서 있다. 말 탄 장군 같다. 오른손에 놋쇠로 만든 누런 종을 높이 들고 딸랑딸랑 흔들어 댄다. 노래인지 타령인지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무어라 무어라. 상여 안에 죽은 사람이 있다는 정도는 알지만 베스처럼 굶어 죽어가는 걸 본 거는 아니다.


    죽은 쥐도 수없이 봤다. 쥐약 묻힌 음식을 여기저기 놓아두면 쥐들이 밤새 먹고 죽는다. 보통은 마루 밑이나 광의 구석에 찾아가 몰래 죽어서 눈에 잘 안 뜨인다. 독약 묻은 걸 너무 많이 먹고 배가 너무 아파서 그런가 어떤 때는 뻔히 보이는 곳에서 죽는다. 쥐덫, 쥐틀도 있다. 덫은 미끼를 물려다 덜컥 걸리면 몸이 조여서 죽는다. 쥐틀 안쪽에 걸어둔 미끼를 먹으려다 갇힌 건 팔팔하게 살아 있다. 쥐틀을 통째로 들고 가서 개울물에 푹 담그면 물을 먹고 죽는다. 다 먹고 죽은 거지 베스처럼 굶어 죽은 건 아니다.

       

    베스는 일주일을 참기름을, 물을, 쌀밥을 코 앞에 두고도 한 방울, 한 톨도 안 먹고 굶어서 죽다니. 얼마나 슬프길래 죽은 새끼 네 마리를 따라서 죽다니.  


    펑펑 울었다.    

     

    내 곁을 영원히 떠난 걸 알기에 울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울고.     

    새끼가 죽은 게 나 때문이라서 울고, 베스가 밥도 물도 안 먹고 굶어 죽은 게 나 때문이라서 밥 먹다가 울고, 물 마시다 울고. 데리고 나가지 않았으면, 놈을 막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울고.    

    함께 했던 순간들이 떠올라서 울고. 문 옆에 베스가 살던 자리를 지날 때마다 울고. 변소 갈 때 그 자리를 지나가니까 변소에 쭈그리고 앉아서 울고.     

    그리워서 울었다. 낮에 베스처럼 작고 예쁜 개 보면 베스가 보고 싶어서 울고. 밤에 누우면 베스가 보고 싶어서 이불 뒤집어쓰고 울고.     

    눈퉁이가 붓고 목은 쉬어버렸다.


    '엄마, 아부지 죽으면 이보다 더 슬플까? 얼마나 더 우는 거지?'  

      

    얼마나 슬픈지 이런 생각마저 든다. 일주일 지나도 영영 떠난 건 마찬가지고, 나 때문이기에, 생각나고, 그립다. 한 달이 지나도 여전하다. 몇 달 지나니 눈물이 멎는다. 해가 바뀌니 먹먹해진다. 동생들은 나보다 더 어려서 죽음을 몰라서 그런지, 정이 덜 들어서 그런지 찔끔 울다가 만다. 누나들은 여자라 그런지 꽤 운다. 엄마, 아부지는 어른이라 그런지 울지 않는다. 식구 중에 내가 가장 슬펐고 제일 오래도록 그리워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베스가 죽은 날 아부지는 새끼들과 함께 앞산에 묻어 주었다. 우리 집이 내려다 보인단다. 나뭇가지를 십자가 모양으로 꽂아서 표시해 두었단다. 며칠 뒤 혼자 그 자리에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는 안 갔다. 귀신 나올까 무서워서.


    베스가 죽고 나서 얼마 후 몽둥이 들고 흰둥이를 찾아갔지만 멀리서 멀뚱멀뚱 바라볼 뿐 다시 달려들지는 않았다. 쫒아갈 낌새면 나를 알아보고 얼른 도망갔다. 한동안 그러다가 흰둥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풀어놓고 키우는 똥개라 한여름 복날에 주인에게 잡아먹힌 거다.


    가매기 삼거리 우리 집에서 키운 두 번째 개는 똘똘이다.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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