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을 헌법 전문에 즉각 수록하라!!!!
페이지 정보

본문
어그로 ㅈㅅㅈㅅㅈㅅㅈㅅ
일단 저는 교수님 주장에 동의하고요. 다들 이해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 반동.. ㅇ.. 아니..ㅎㅎ 반대 의견도 있을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내가 만약 반대편에 서 있다면 뭐라고 말할까!?!?!" 이게 꿍금해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이 글은 과거에 교양 쌓을 목적으로 구매한 김유향의 <기본 강의 헌법>(2017)을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누군가는 교양을 쌓을 목적으로 왜 수험서를 샀냐고 물을 수 있는데, 헌법 관련 서적을 뒤적인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체로 정치적인 색깔이 묻어나 있습니다. 반면 이런 무미건조한 수험서는 객관적으로 헌법을 볼 수 있는 창이라 생각하여 택한 것입니다.
저는 정해진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기란 쉽지 않기에, 이 글이 교수님의 정반대편에 섰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제가 참고한 책은 2017년에 출간되었고 얇은 버전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 다루는 지식의 깊이 또한 가볍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글은 꽤 깁니다. 그래서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 가지의 헌법관을 통하여 교수님의 글을 들여다 보고, 교수님이 주장하신 사법적 전체주의에 대한 우려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였습니다.
이 글은 재미없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1부. 교수님의 글은 결단주의적, 통합론적 헌법관에 기대고 있다.
2부 5.18 헌법 전문 수록이 국가에 의무를 부여하는 근거가 될 수 있지만, '사법적 전체주의'로 단정하는 건 헌법재판소의 엄격한 필터와 비례원칙, 규범조화적 해석 등을 간과한 것이다.
3부 5.18 전문 수록은 사법적으로 확인된 헌정질서 회복의 의미를 헌법의 근본 규범으로 공식화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1부
세 가지 헌법관으로 읽어보기 : 교수님의 글은 단순 5.18 반대론이 아니다.
<기본강의 헌법>를 보면 헌법관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법실증주의적 헌법관, 결단주의적 헌법관, 통합론적 헌법관입니다. 일단 교수님의 주장은 법실증주의적 헌법관과는 거리가 멀고, 결단주의적 통합론적 헌법관이 두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수님의 입장에 비판한다면 결단주의적, 통합론적 헌법관의 한계를 들여다 보면 좋습니다.
법실증주의적 헌법관 : 최고 규범으로서의 전제
법실증주의는 당위와 존재, 규범과 현실, 국가와 사회를 엄격하게 구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정치적 감정, 역사적 서사가 아니라 하나의 규범 체계로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 얼마나 숭고하고, 어떤 세력이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가가 아닙니다. 핵심은 헌법에 어떤 문장이 들어가 있는지, 그 문장이 어떤 효력을 갖는지, 그리고 하위 법령이나 국가 행위가 그 상위 규범과 충돌하지 않는지입니다. 법실증주의는 이 지점을 봅니다.
"헌법 전문은 단순히 서문이 아니라 법령 해석의 기준이 되는 최고 규범이다."
이는 교수님의 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도 법실증주의적인 색깔을 볼 수 있습니다. 교수님은 헌법 전문을 서문이나 상징적인 문장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만 놓고 보면 교수님의 문제의식은 헌법전문론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교수님은 헌법 전문의 위험성은 감정적으로만 본 것은 아닙니다. 전문에 들어간 문구가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으며, 미래의 법률 해석이나 재판 과정에서 실제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헌법을 정치적 구호가 아닌, 상위 규범으로 취급하고 있으므로 법실증주의적인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글 전체가 법실증주의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유는 헌법을 규범 자체로만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은 개헌 주체의 정치적 성격과 5.18의 정치적 전유물, 대한민국의 정체성, 국가의 영혼, 신화적 구조, 위험한 세력 등등을 사용하셨습니다. 법실증주의적이라면 정치, 역사적 요소를 제거하고 헌법 문구와 효력에만 집중하셨을 것입니다.
법실증주의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법실증주의는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려 하지만, 규범만 강하다보니 법의 형식만 갖추면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모두 법이라고 보는 문제에 취약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법대로 하자." 같은 말이 법실증주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국가는 지배주체가 되고, 사회는 지배객체로 보고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고로, 교수님의 글은 법실증주의를 철저하게 따르는 문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헌법 전문의 규범적 효력을 말할 때에만 법실증주의의 힘을 빌렸습니다. 미리 말하자면, 교수님의 글 정서는 결단주의와 통합론에 가깝습니다.
결단주의적 헌법관 : 개헌 주체의 정치적 의지와 결단력
슈미트의 결단주의적 헌법관의 배경은 바이마르공화국의 무질서와 혼란 그리고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회의, 강력한 힘을 가진 자의 결단(독재)를 바라던 당시 분위기와 연결됩니다.
결단주의는 헌법을 단순한 규범의 체게로만 보지 않습니다. 슈미트에 따르면 헌법은 "힘과 권위를 가진 실력자의 결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헌법이 효력을 갖는 건, 그 내용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헌법을 정립하는 실존적인 정치적 의지의 힘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를 알고 교수님의 글을 보면 어법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교수님의 글은 헌법 전문에 5.18을 단순 문구로만 보지 않고 계속 질문합니다.
"누가 이 개헌을 하는가?"
"그 세력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인정하는가?"
"그들이 자유민주라는 기본질서를 지키는가?"
"국가의 영혼을 그들에게 넘겨도 되는가?"
이것은 법실증주의적 사고에서는 나올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법실증주의라면, "개헌의 절차가 헌법에 맞냐?", "전문 문구의 규범적 효력이 무엇인데?", "기본권과 충돌하면 어떻게 해석하지?" 같은 것들을 묻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글은 이를 넘어, 개헌 주체의 정치적 의지와 정체성을 묻습니다. 이것이 결단주의적 헌법관입니다.
이 지점에서 교수님의 어법은 결단주의적 색체가 강합니다.
"위험한 사람들이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 헌법의 서문을 고치게 두는 것은, 국가의 영혼을 그들에게 양도한느 것과 다를 바 없다."
여기서 헌법은 단순한 법문이 아닙니다. 헌법은 국가의 근본 결단이자, 그 결단은 어떤 사람이 하느냐가 좌우합니다. 그러므로 교수님은 5.18 전문 수록의 문구 그 자체보다, 그 문구를 넣으려는 세력의 의지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물론 결단주의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결단주의는 힘과 권력을 가진 실력자의 결단을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독재자에 의한 결단이 국민의 의사가 되어 돟ㄱ재를 정당화시키는 도구가 될 위험이 있으며, 결단을 전면에 부각함으로써 헌법의 규범성을 과도하게 경시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통합론적 헌법관 : 보편적 가치로의 승화
교수님의 글은 결단주의에만 기대지 않습니다. 통합론적 헌법관 언어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일본,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헌법 전문을 예시로 든 것입니다. 이 국가들의 헌법 전문 또한 통합론적 헌법관에 기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강의 헌법>이 말하는 스멘트의 통합론적 헌법관은 국가는 단순한 규범체도 아니고 정치적 결단의 산물만도 아니라, 국민이 역사적, 문화적 공동체로 통합하는 과정, 헌법은 공동체에서 "정치적 통일체의 형성과 유지" 및 "법질서의 창설과 유지"라는 두 가지 과제를 수행한다고 말합니다.
이 관점은 교수님의 글과 매우 잘 맞습니다. 교수님은 5.18을 사건명으로만 헌법 전문에 넣는 게 아니라, 그 정신을 자유, 인권, 민주 같은 가치로 승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5.18을 특정 지역, 특정 세대, 특정 정치세력의 자산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통합 가치로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다시 말해, 교수님은 5.18을 사건 그 자체로 두는 게 아니라, 공동체를 통합할 수 있는 가치체계로 바꾸려 한다는 점입니다. <기본강의 헌법>가 말하는 통합론적 헌법관에서도 기본권을 국가의 통합의 계기를 마련하는 가치체계이자, 문화체계라고 보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글에서 볼 수 있는 '승화'라는 단어는 통합론적입니다. 사건의 구체성은 최소화하고 사건이 남긴 가치를 공동체 전체의 정신으로 끌엉올리는 것입니다.
물론 통합론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일단 통합론은 공동체의 통합을 강조하다 보니, 갈등 요소를 경시할 리스크가 있습니다. <기본강의 헌법>가 말하는 통합론은 국가와 헌법을 역사적, 문화적, 공동체로 통합하는 과정으로 보고 있으나, 바로 그때문에 현실의 첨예한 갈등, 권력관계, 피해와 책임의 문제를 추상적 통합 언어로 덮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수님의 글에서도 5.18을 '자유, 인권, 민주'로 승화하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바라보면 5.18은 추상 가치의 원천으로는 보기가 어렵습니다. 국가폭력, 계엄, 군부, 시민 희생, 지역적 고립 등등의 구체적 갈등과 고통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를 너무 빠르게 '영원한 자유', '보편적 민주'로 승화하면 구체적 역사 책임이 흐려질 수 있다는 비판이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통합은 필요하나, 통합이 너무 빨리 오면 기억과 책임을 지워버릴 수 있다는 것이 반대편의 논리입니다. 5.18을 자유로만 바꾸면, 누가 자유를 억압했는지, 누가 희생되었는지, 어떤 국가권력이 작동했는지, 왜 아직도 진상과 책임의 문제가 남는지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예시는 새말새몸짓 유튜브 댓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중 "5.18 희생의 이픔을 아는가?" 이러한 메시지가 결국 통합론적 헌법관이 품고 있는 한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로, 이 세 가지 헌법관을 알면 교수님의 글을 더 재미있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일단 교수님은 법실증주의적, 결단주의적, 통합론적 요소를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법실증주의는 전제로만 사용하였고, 글의 정서는 결단주의와 통합론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수님의 주장에 반대한다면 결단주의와 통합론이 갖고 있는 한계를 들여다 봐야 합니다.
다음은 교수님이 우려하시는 사법적 전체주의 주장의 반대편에 서보겠습니다.
제가 나름 그럴싸하게 생각해보려고 노력했으나, 정해진 마음 때문인지 조잡하므로 양해바랍니다.
2부
사법적 전체주의는 필연인가? : 규범조화적 해석이라는 안전장치
최진석 교수님은 5.18이 헌법 전문에 수록으로 인한 사법적 전체주의에 대한 우려를 표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들여다 보려면 '재판규범성', '규범조화적 해석'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일단 사법전체주의의 가능성은 <기본강의 헌법> 내용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헌법전문의 재판규범성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헌법전문의 추상성을 이유로 재판규범성을 부인하는 견해가 있지만, 우리 헌법재판소는 헌법전문의 재판규범성을 인정하여 법률이 헌법전문에 위반하는 경우 위헌무효임을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은 '재판규범성'입니다. 헌법전문은 추상적인 문장이기 때문에 재판에서 직접 기준으로 쓰기 어렵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전문의 재판규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로, 헌법전문은 재판에서 아무 의미 없는 선언이라 볼 수 없습니다. 법률이 헌법전문에 위반될 경우에 위헌으로 선포하여 무효로 만들 수 있습니다.
교수님이 걱정하시는 '사법 전체주의'라는 표현이 이 대목에서 튀어 나옵니다. 만약 역사적 사건이 헌법 전문에 떡하니 실린다면, 법원이 그 사건에 대해 '이것이 진짜 의미다!' 라고 해석을 독점하고 그 해석을 판결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5.18 헌법 전문에 들어갔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누군가가 5.18에 대해 논쟁적인 발언을 했는데, 국가가 이를 처벌하려 한다면? 국가는 "5.18은 헌법 전문이 계승하라는 정신이니 이를 보호하는 건 당연하지!" 라고 주장할 근거를 얻습니다. 반면에 당사자는 "내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는!?!? ㅠㅠ" 라고 억울해 할 것입니다. 교수님은 특정 사건에 대한 국가의 해석이 사법적인 힘을 빌려 강요하는 상황을 경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문에 들어가기만 하면 자유가 사라지는 걸까요? 아닙니다. '재판규범성'이 모든 기본권을 무력화하는 전능한 힘을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개념이 '규범조화적 해석'입니다. 헌법 전문과 본문의 내용이 서로 충돌할 때,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찍어누르는 게 아니라, 두 가치가 최대한 사이좋게 어우러지도록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다시 말해, 5.18이 전문에 들어가도 그것이 표현의 자유나 양심의 자유 같은 기본권들이 자동으로 제압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규범조화적 해석의 사례로는 '반론보도청구권과 언론의 자유 충돌', '유니온 숍 협정: 단결하지 않을 자유와 노동조합의 단결권 충돌'이 있습니다. 이 둘을 다루고 싶지만 글이 길어지니 생략하겠습니다.
결국 최진석 교수님이 제기하신 '사법적 전체주의'에 대한 우려는 전문에 실린 역사가 재판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일리 있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그 한 줄의 문장만으로 역사의 해석권을 독점하거나 국민의 입을 막는 형식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어렵습니다. 헌법의 대원칙인 '규범조화적 해석'이 전문의 정신과 개인의 자유 사이에서 아슬아슬하지만 중요한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시정부 판례로 본 5.18 수록의 양면성
헌법 전문은 단순 있어보이는 문장들만 모인 곳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 사례입니다. 흔히 전문을 '좋은 말 대잔치'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이 판례를 뜯어보면 전문 속의 한 문장이 어떻게 국가의 호주머니를 열게 하고 강력한 의무를 부여하는지 아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헌법은 전문(前文)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위에서 볼 수 있듯, 법원은 이를 그냥 역사적인 기록으로 넘기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뿌리가 독립운동에 있다면, 국가는 당연히 그 뿌리를 지킨 독립유공자와 가족들을 대우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즉, 전문에 적힌 짧은 문장 하나가 국가에게 "독립유공자를 예우하라"는 구체적인 과제를 내준 셈입니다. 전문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해 국가의 행동을 강제하는 '재판규범성'의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논리를 5.18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최진석 교수님이 우려하실 수 있는 문제가 드러납니다. 5.18이 전문에 들어가는 순간, 이는 단순 기념일의 의미를 넘어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헌법적 명령으로 바뀝니다.
그렇게 국가는 5.18 피해자를 예우해야 할 의무와 더불어서 관련 기념사업을 추진하거나, 5.18을 왜곡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입법을 할 수 있는 명분과 정당성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국가가 "헌법 전문에 적힌 정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니 이 법은 정당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뒷배가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읽은 최진석 교수님의 글은 이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5.18이 헌법 전문에 들어가면 국가가 5.18을 특정 방식으로 보호하고 해석하는 의무를 더 강하게 가질 수 있으며 이를 누군가가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판례는 동시에 반대편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법통계승이 독립유공자 예우의 헌법적 근거가 될 수 있다면, 5.18도 국가폭력 피해자 예우와 민주주의 회복의 헌법적 근거가 될 수 있는데, 왜 그러냐?" 같은 식으로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례는 교수님의 주장을 뒷받침하지만 동시에 반박하기도 합니다. 전문의 규범적 효력이 있기 때문에 교수님과 같은 우려를 품을 수 있지만, 이와 동시에 국가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민주주의 가치를효력이 강하기 때문에 5.18 수록 찬성론에도 힘이 실립니다.
현실에서 헌법 전문은 어떻게 작동하나?
이 두 사건은 교수님이 제기하신 사법적 전제추의에 대한 우려를 균형있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교수님은 헌법 전문에 역사적 사건이 들어가면, 그 사건이 법령해석과 재판의 기준이 되어 국가가 특정 역사해석을 강제할 위험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을 함께 보면 헌법전문은 실제 재판에서 작동할 수 있으나, 모든 역사적 표현 갈등이 곧바로 헌법재판으로 흡수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헌법전문은 강력하지만 무제한적인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위안부 사건 : 자유 억압이 아닌, 기본권 보호로 작동
먼저 위안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 문제와 외교통상부장관의 부작위 문제로 다룹니다. 쟁점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배상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소멸했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정부가 협정상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않은 것이 위헌인지였습니다.
<기본헌밥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볼 수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로서의 배상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한, 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위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아니하고 있는 외교통상부장관의 부작위가 위헌인지 여부" 를 지적하며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헌재는 여기서 헌법전문을 직접 언급합니다
“헌법 전문, 제2조 제2항, 헌법 제10조와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문언에 비추어볼 때, 피청구인이 위협정 제3조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로 나아갈 의무 (중략) 피청구인의 작위의무는 헌법에서 유래하는 작위의무로서 그것이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 것이다.”
이 문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헌재는 헌법전문, 재외국민 보호에 관한 헌법 제2조 제2항,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관한 헌법 제10조, 그리고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를 함께 보아, 정부가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갈 작위의무를 가진다고 보았습니다. 즉 헌법전문이 단독으로 모든 의무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헌법전문은 국가의 구체적 작위의무를 도출하는 근거 중 하나로 작동했습니다.
이 점에서 위안부 사건은 교수님의 문제의식을 강하게 뒷받침합니다. 교수님이 말하듯 헌법전문은 단순한 장식문이 아닙니다. 전문에 들어간 역사적 정통성, 특히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계승 같은 문구는 실제 재판에서 국가의 의무를 구성하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5.18이 헌법전문에 들어간다면, 그것 역시 훗날 국가의 작위의무나 입법의무, 보호의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안부 사건은 교수님의 사법 전체주의에 대한 우려가 단순 가설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헌법전문은 실제로 국가의 의무를 발생시키거나 강화하는 논증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안부 사건의 작동은 사법 전체주의적인 억압이 아닌, 권리 보호였습니다. 그러므로 위안부 사건은 교수님의 우려를 뒷받침하기만 하는 사례가 아닙니다. 사법 전체주의에 대한 우려를 조정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에서 헌법전문은 표현을 봉쇄하거나 역사해석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국가의 부작위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건국 60년 사건 : 모든 역사 논쟁이 재판장으로 가지 않는다.
두 번째 사례는 건국60년 기념사업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위안부 사건과 정반대 방향으로 역사적 정체성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모두 사법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사례입니다. 위안부 사건이 헌법 전문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국가의 의무를 인정한 사례였다면, 건국 60년 사건은 역사 논쟁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따진 사례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역사적 옳고 그름을 가린 판결이 아니라, 헌법소원 심판 청구 자체가 적법한 요건을 갖췄는지 검토한 기본권 침해 가능성에서 다루어집니다.
사건의 발단은 정부가 추진한 '건국 60년 기념사업'이라는 명칭입니다. '건국 60년'이라는 표현은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1948년으로 해석하게 만들 여지가 있습니다. 이는 헌법 전문에 명시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는 구절과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입니다. 이에 반발한 역사학자, 국회의원, 독립운동 단체 등은 국가가 헌법 정신을 훼손하고 자신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이 기념사업이 청구인들의 구체적인 기본권을 직접 침해했는지 여부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헌법소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일반 원칙을 내세워, 해당 기념사업 추진 행위가 역사학자나 시민 단체 구성원들의 권리를 침해했는지 면밀하게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헌재는 이 문제를 본안으로 끌고 가지 않았습니다. 헌재의 판단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건국60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는 점만으로 이를 헌법개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헌법 제130조 제2항의 국민투표권 침해가능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며, 청구인들이 건국60년 기념사업 추진행위에 의해 겪게 되는 내심의 동요와 혼란은 내적인 명예감정에 불과하여 헌법상 보호되는 명예권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이에 대한 법적관련성 또한 인정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결국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는 기본권 침해가능성 내지 법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부적법하다.”
이 사건은 교수님의 사법 전체주의 우려를 완화해줍니다. 정부가 “건국60년”이라는 역사적으로 민감한 표현을 사용했다고 하여, 헌재가 곧바로 헌법 전문의 역사해석을 둘러싼 본안 판단으로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헌재는 그 표현 사용만으로 헌법개정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국민투표권 침해 가능성도 없으며, 청구인들의 내심의 동요와 혼란은 헌법상 보호되는 명예권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즉, 헌법전문과 관련된 역사적 표현 갈등이 있다고 하여 모두 헌법재판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헌재는 기본권침해 가능성, 법적 관련성, 국민투표권 침해 여부 같은 적법요건을 엄격히 따집니다.
헌재의 방패, 엄격한 자기 절제
헌법재판소는 단순 법에 입각하여 결론 내리는 곳 같지만, 때로는 "우리가 나설 자리가 아닌데?" 라며 선도 그을 줄 압니다. 상징적인 장면이 건국 60년 사건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헌재가 "1919년 건국이냐, 1948년 건국이냐" 라는 역사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줄 거라 기대했으나, 그들은 자기 절제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헌재는 건국 시점에 대한 역사적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보다 먼저 통과해야 하는 법적 문턱을 살폈습니다. 다시 말해, '건국 60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헌법을 고친 것과 다름 없는지, 이로 인해 국민의 투표권이 침해되었는지, 또는 누군가의 명예가 깎였는지 등등의 요건을 따져본 것입니다. 결국 헌재는 이러한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하여 사건 자체를 밀어내는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반대 입장에서 헌재의 태도를 보면, 최진석 교수님이 우려하시는 '사법적 전체주의'가 지나치게 과장된 걱정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물론 헌법 전문이 실제 재판에서 힘을 발휘하는 규범적 효력을 가진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헌재가 모든 역사적 갈등이나 정체성 논쟁을 재판장 안으로 끌어들이지는 않았습니다. 헌재는 개인의 기본권이 실제로 침해될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헌법소원을 낼 자격이 있는지를 아주 까다롭게 걸래내는 필터를 갖고 있습니다.
고로, 반대 입장에서 사법 전체주의에 대한 우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헌법 전문에 실린 문구가 언젠가 법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전문에 역사적 사건이 들어가는 순간, 곧바로 국가가 해석을 독점하고 반대 의견을 억누르는 '사법적 전체주의'가 닥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헌재는 역사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심판관을 자처하는 게 아닌, 법적 요건을 방패삼아 정치적, 역사적 소용돌이로부터 거리를 두는 절제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결론
결론은 5.18 헌법 전문 수록이 위안부 사건처럼 작동할 수 있고, 건국 60년 사건처럼 자기 절제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모르겠다'입니다. 제가 그걸 알면 하이닉스에 전재산 걸었겠죠.
먼저 위안부 판례를 보면 5.18 전문 수록은 국가에게 엄청난 행동 강박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전문에 명시되는 순간 국가는 단순히 기념하는 것을 넘어, 진상규명, 피해자 예우, 역사 교육, 그리고 국가폭력 재발 방지 조치 등을 취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지게 됩니다. 이것은 5.18 전문 수록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는 효과이면서도, 최진석 교수님이 우려하시는 '사법적 전체주의'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국가가 전문의 정신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특정 역사를 강력하게 보호하고 해석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건국 60년 사건에서 보여준 헌재의 '자기 절제'가 작동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5.18 기념사업이나 특정 역사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헌재가 곧바로 "이것이 옳고, 넌 틀렸는데?" 라고 판결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헌재는 청구인이 실제로 어떤 기본권을 침해당했는지, 단순히 기분 나쁜 수준을 넘어 법적으로 다툴 가치가 있는지를 아주 깐깐하게 따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정치적인 불편함이나 개인적인 생각 차이만으로는 헌재의 문턱을 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5.18 전문 수록이 가져올 법적 효과는 자동적이지도 무한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헌법 전문은 국가의 의무를 끌어내는 강력한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라는 엄격한 필터를 통하여 모든 역사 갈등이 재판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섭니다. 그러므로 최진석 교수님이 우려하시는 사법적 전체주의는 우리가 경계해야 부분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현실이 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이유는 헌법재판소가 갖고 있는 절제와 문턱이라는 장치가 꽤나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 내용을 바탕으로 교수님이 주장하신 사법적 전체주의 주장과 반대편에 선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습니다.
"헌법 전문이 법적 효력을 갖는다고 하여, 사법적 전체주의로 인한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가 억압되는 것은 아닙니다. 헌재는 전문만 보는 게 아니라 기본권과 비례원칙, 명확성 원칙, 규범조화적 해석을 함께 따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국 60년 사건처럼 헌재는 역사 논쟁을 모두 재판으로만 끌고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전문 수록이 역사해석 독점, 사법 전체주의라는 주장은 과도한 우려입니다."
다음은 5.18 특별법 사례를 통하여 사법적 전체주의 우려에 대해 바라보겠습니다.
3부.
5.18 특별법 : 역사 독점이 아닌 헌정질서 수호
이 부분은 교수님의 글을 읽을 때 알고 있으면 좋은 배경지식이라 생각합니다. 이유는 교수님의 글은 5.18을 주로 정치적 자산화, 특정 정당의 전유물, 헌법 전문 수록의 위험성이라는 관점으로 다룹니다. 교수님은 "나는 5.18을 사랑한다.", "5.18은 민주화의 빛나는 횃불이다."라고 말하면서도 곧 바로 5.18이 특정 정치세력에게 결박되었따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기본 강의 헌법>를 통한 헌법으로 본 5.18은 교수님이 우려하시는 정치적 논쟁의 영역을 넘어, 이미 대한민국 법질서의 핵심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편에 선다면 이 논리에 입각하여 논지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판례들을 살펴보면, 5.18은 단순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역사적 비극을 넘어선 헌정질서 파괴와 그 회복의 문제로 다루어집니다.
<기본 강의 헌법>에서는 5.18특별법의 성격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인용합니다
“특별법 제2조가 이른바 12. 12사건과 5.18사건에만 적용됨을 명백히 밝히고 있으므로 다른 유사한 상황의 불특정 다수의 사건에 적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고 오로지 위 두 사건에 관련된 헌정질서파괴범만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어 특별법 제정 당시 이미 적용의 인적 범위가 확정되거나 확정될 수 있는 내용의 것이므로 개별사건법률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여기서 5.18을 단순히 “민주화운동”이라고만 부르지 않습니다. 12.12사건과 5.18사건에 관련된 자들을 “헌정질서파괴범”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5.18의 헌법적 의미를 매우 강하게 규정합니다. 5.18은 단순한 역사적 비극이나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헌정질서가 파괴되는 과정과 결부된 사건입니다. 즉 문제의 초점은 “어떤 정치세력이 5.18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파괴한 행위가 있었고, 그 행위에 대해 국가가 어떻게 법적으로 대응할 것인가”입니다.
교수님은 5.18을 정치세력의 전유물에서 구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5.18은 이미 헌법재판소 판례에서 정치적 소유의 문제를 넘어 헌정질서 수호와 정의 회복의 문제로 다루어졌습니다.
"5.18특별법은 ‘개별사건법률’이지만, 그것만으로 위헌은 아니다."
위 인용문에서 또 하나 중요한 표현은 “개별사건법률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입니다. 5.18특별법은 일반적 추상적 법률이라기보다 12.12와 5.18이라는 특정 사건을 겨냥한 법률입니다. 이는 법치국가 관점에서 민감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법률은 원칙적으로 일반성과 추상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서 중요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세무대학설치법폐지법률 사례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편 어떤 법률이 개별사건법률 또는 처분법률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헌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장을 5.18특별법 사건과 연결해서 보면, 핵심은 이렇습니다.
5.18특별법은 특정 사건을 겨냥한 개별사건법률의 성격을 갖습니다. 그러나 개별사건법률이라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위헌은 아닙니다. 헌법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법률이 왜 필요한지, 어떤 공익을 실현하는지, 기본권 제한이 과도한지, 평등원칙이나 신뢰보호원칙에 반하는지입니다.
즉 5.18특별법은 “특정 사건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위험한 법률형식이지만, 헌법재판소는 그 법률이 헌정질서파괴범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정의 회복과 헌정사 바로잡기라는 공익을 갖는다는 점을 중시해 합헌성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는 교수님의 글을 읽는 데 결정적입니다.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특정 사건이 전문에 들어가는 순간, 역사적 진실을 법원이 판결로 확정 짓는 사법적 전체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5.18특별법 판례는 반대로, 특정 역사 사건을 법적으로 다루는 것이 반드시 역사를 독점적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헌정질서파괴범죄처럼 헌법질서 자체가 무너진 사건에 대해서는, 법이 특정 사건을 겨냥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본 강의 헌법>는 5.18특별법 사건을 죄형법정주의, 특히 형벌불소급 원칙과 공소시효 문제 속에서도 다룹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공소시효제도에 형벌불소급의 원칙이 적용되는지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5.18특별법 사건’에서 공소시효의 정지규정을 (중략)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언제나 위배되는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라고 하여 부정설의 입장을 취한 바 있다(1996.2.16. 96헌가2등).”
이 문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5.18특별법은 단순히 “5.18을 기념하자”는 법이 아닙니다. 이미 시간이 흐른 과거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를 어떻게 볼 것인가, 공소시효 정지가 형벌불소급 원칙에 반하는가, 과거 행위에 대해 나중의 법률로 처벌 가능성을 되살리는 것이 헌법적으로 가능한가라는 민감한 문제를 다룹니다.
형벌불소급 원칙은 법치국가에서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국민은 행위 당시 법률에 따라 자신의 행위가 처벌되는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중에 법을 만들어 과거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위험합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5.18특별법 사건에서 공소시효 정지규정이 형벌불소급 원칙에 언제나 위배되는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5.18 관련 헌정질서파괴범죄를 일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만 볼 수 없다는 판단을 전제합니다.
즉 <기본 강의 헌법>에서 볼 수 있는 5.18특별법은 단순 정치적 기억이 아닙니다. 그것은 법치국가의 핵심 원칙인 형벌불소급과 충돌할 정도로 중대한 헌정사적 사건으로 다루어집니다. 헌법재판소는 그 충돌 속에서도 헌정질서 회복과 정의 실현이라는 공익을 인정한 것입니다.
정치적 쟁점을 넘어선 5.18의 헌법적 위상
교수님은 5.18이 특정 정치세력의 전유물로 결박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문제의식은 정치사회적 차원에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 특정 정당이나 진영의 상징자본으로 이용될 때, 그 사건의 보편성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본 강의 헌법>가 보여주는 5.18의 위상은 그보다 앞섭니다. 5.18은 이미 헌법재판소 판례에서 헌정질서파괴범죄의 사법적 처리와 관련된 사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표현을 그대로 따르면, 12.12와 5.18은 “헌정질서파괴범”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법의 핵심 사건입니다.
이는 교수님의 글을 보완하여 읽게 이끌어줍니다. 교수님은 “5.18이 정치세력에게 빼앗겼다”는 감정적, 정치적 언어로 접근합니다. 그러나 <기본 강의 헌법>에서 볼 수 있는 5.18은 “5.18은 헌정질서파괴범죄를 응징하고 헌정질서를 바로잡는 문제로 이미 헌법재판의 대상이 되었다” 같은 법적 언어로 보여줍니다.
물론 여기서 차이는 구별해야 합니다. 교수님은 5.18이 특정 정치세력의 자산이 되었다고 주장하신다면, <기본 강의 헌법>는 5.18은 헌정질서파괴범죄와 공소시효, 소급입법, 평등원칙, 신뢰보호가 문제 된 헌법재판 사건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교수님의 글을 읽고 반대편에 서서 비판하고 싶다면 일단 이 두 층위를 구별해야 합니다. 5.18이 현재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문제와 5.18이 이미 헌법재판상 헌정질서파괴범죄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같은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법적 전체주의 우려에 대한 5.18 판례의 대답
교수님은 헌법 전문에 역사적 사건을 넣으면 법원이 역사적 진실을 판결로 확정하는 “사법적 전체주의” 위험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5.18특별법 판례는 이 주장에 대해 두 가지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첫번째, 교수님의 우려를 강화하는 방향입니다. 5.18특별법 사건에서 보듯, 역사적 사건은 실제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12.12와 5.18을 헌정질서파괴범죄와 연결하여 판단했고, 공소시효 정지와 소급입법 문제를 헌법적으로 검토했습니다. 그러므로 교수님이 말하는 “역사적 사건이 법적 판단의 장으로 들어간다”는 우려는 완전히 허구는 아닙니다.
둘째, 교수님의 우려를 완화하는 방향입니다. 헌법재판소가 5.18을 다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전체주의적 역사독점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헌재는 헌정질서파괴범죄라는 법적 범주 안에서, 형벌불소급, 공소시효, 평등원칙, 신뢰보호 같은 헌법 원칙들을 심사했습니다. 이는 역사해석을 무조건 국가가 독점한 것이 아니라, 헌정질서 파괴라는 중대한 공익과 법치국가 원칙 사이의 충돌을 심사한 것입니다.
결론
5.18 특별법 사례는 교수님의 '사법적 전체주의'라는 우려를 단순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5.18이 실제로 헌법재판의 판단 대상이 되었으며, 공소시효, 형벌불소급, 평등원칙, 개별사건법률 문제가 함께 다뤄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역사적 사건이 법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교수님의 지적은 타당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국가가 역사를 독점적으로 해석하고, 사법적 전체주의까지 의미하지 않습니다. 헌재가 5.18을 다룬 이유는 특정 역사해석을 강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헌정질서를 파괴한 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쟁점은 역사 장악이 아닌 헌정질서 회복입니다.
그러므로 이에 입각한 교수님의 반대편에서는 이렇게 말해볼 수 있습니다. 5.18은 특정 정치세력의 소유물이기 전에, 이미 헌법재판상 헌정질서파괴범죄와 정의 회복의 문제로 자리 잡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5.18을 헌법 전문에 새기는 일은 과거에 갇히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권력이 다시는 헌정질서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하는 헌법적 경고문입니다.
5.18 전문 수록은 사법적 전체주의의 출발점이 아닙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 단단히 기억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마치며
위의 생각들을 종합하여 교수님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낸다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미국식 순수 가치문이 아닙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4.19 민주이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평화적 통일 등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역사적 정통성과 보편가치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5.18 수록은 갑자기 헌법을 역사책처럼 바꾸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한국 헌법 전문의 구조 안에서 민주적 정통성의 계보를 확장하자는 것입니다. 진짜 선도국가는 미국,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를 따라하는 국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처럼 바꿀 필요 없습니다. 나아가 5.18을 특정 세력의 정치적 자산으로 볼 수 없습니다. 5,18은 이미 헌법적 질서 회복의 차원에서 법적으로 자리 잡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넣는 것은 정치적 자산화가 아닌, 이미 확립된 헌법재판상의 의미를 전문의 역사적 정통성으로 반영하는 일입니다. 반대로 묻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의 정통성을 무너트리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많이 빈약하죠? 이해바랍니다.
사실 손 볼 곳이 많은데, 이러다간 저의 소중한 주말이 모두 날아갈 것 같아서요. 대충 이렇게 마무리 지어봅니다 ㅠㅠㅜㅠㅜㅜㅠ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게 하나 있습니다. 교수님과 같은 주장을 하거나 반대하려면 적어도 이정도의 배경지식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들여다 보면서 추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저처럼 주저리 주저리 떠들지 않고 교수님처럼 짧고 강렬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이전글로즈마리 줄기가 나무가 되려면 26.05.10
- 다음글나의 투쟁을 읽고 (아돌프 히틀러, 황성모(옮긴이), 동서문화동판 2014) 26.05.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