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로그인
  • 참여
  • 자유게시판
  • 참여

    자유게시판

    뭉이가 오천원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한상도 (39.♡.231.6)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2회   작성일Date 25-03-15 12:25

    본문


     영희는 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장을 다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 박스에 담긴 귀여운 강아지들을 보였다. 한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강아지들을 팔고 있었다. 박스에는 ‘한마리 오천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얼룩덜룩 단단하고 순둥순둥해 보이는 시고르자브종 다섯 마리가 서로 몸을 부비며 놀고 있었다. 언젠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는데, 잘 됐다 싶었던 영희는 생닭 한마리 값도 안하는 강아지를 한 마리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희는 강아지를 씻기고, 오는 길에 함께 산 사료 한 봉지를 뜯어 먹이를 주었다. 그리고 나직히 말했다. ‘너는 뭉이야’

     

     영희는 꽤나 책임감이 강하고 영리했기에, 강아지를 키우는 것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보기 시작했다. 유아기의 강아지, 성년기의 강아지, 노년기의 강아지의 생리와 활동 패턴을 파악하고 뭉이를 위한 식단과 루틴을 짰다. 그렇게 영희와 뭉이의 동행은 시작되었고, 주인을 잘 만난 뭉이는 별탈없이 생기 넘치는 삶을 살아갔다. 그렇게 15년이 흐르고, 뭉이는 대장암으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영희는 오랜시간 함께한 뭉이에게 감사해하며 조촐하게 장례를 지냈다.

     

     뭉이를 떠나보낸 영희는, 뭉이의 죽음을 더 잘 다루고 싶었다. 영희에게 뭉이는 그저 ’강아지 키우고 싶어서 데리고 와서 키우다가 나이들어 죽은‘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희는 뭉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전에 찍어두었던 뭉이의 사진을 보고, 이와 똑같이 그려내며 뭉이의 모습을 자신의 마음에 새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희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느꼈다. 그림으로는 뭉이의 묵직한 다리와 통통한 배의 질감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희는 3d 프린터로 뭉이를 인쇄해보기도 하고, 점토를 이용하여 뭉이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달리고 난 뭉이의 헐떡임과 심장소리, 그리고 뜨끈뜨끈한 몸을 재현하기는 어려웠다.

     

     답답함을 느낀 영희는 뭉이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짧은 다리, 왼쪽 뒷다리에 있는 까만 점 등의 외적 특성 뿐 아니라 고구마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산책을 할 때는 어디를 꼭 들렀는지 등의 생활 패턴도 상세히 적어보았다. 영희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영희는 뭉이가 분명히 실존했었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뭉이의 흔적을 더욱 또렷하게 남기기로 마음먹은 영희는 한 편의 시를 썼다.

     


    뭉이가 오천원

     

    쌉니다 싸요

    뭉이가 오천원

     

    노릇하게 구운 식빵 빛깔

    벌어진 어깨 튼실한 근육

    그립감 좋은 뒷다리

     

    산책할 때 동행가능

    남은 잔반 처리 가능

    겨울철 온수팩 대용 가능

     

    기상시간 산책시간

    루틴도 잡아드립니다

    먹이고 씻기고 치우며

    보시바라밀도 가능해요

     

    눈치 빨라요

    말 잘들어요

    사람을 좋아하고

    고구마도 좋아해요

     

    쌉니다 싸요

    뭉이가 오천원

     

     

     영희는 자신이 쓴 시를 주변의 지인들에게 보여주었다. 뭉이를 남기는 마지막 작업이었다. 시를 읽은 지인들은 뭉이를 회상하며 좋아했다. 온 몸의 감각을 이끌어내 몽이와의 추억을 곱십(*ㅆ)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영희는 이제서야 뭉이와 마주했음을 실감했다.


    0065c515228cf692eb3d34489ae852e1_1742009084_4141.jpeg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