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와 전쟁 — 전쟁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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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와 전쟁 — 전쟁은 진실이다
수많은 중대사에 있어 일을 맡은 사람이 부지런을 떨면 아무리 어려운 송사라 해도 좋은 결과가 생기니, 경험이 그러한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진실이 가장 잘 보이는 경우는 바로 전쟁에서입니다. (Book1-Ch46)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잔혹한 현실이지만, 동시에 가장 정직한 순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전쟁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사람들은 법과 도덕, 사회 규범이라는 가면을 쓰고 서로를 억제한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면, 인간은 본능대로 움직인다. 두려움, 탐욕, 분노, 생존, 희생, 용기 이 모든 감정이 가식 없이 드러난다. 전쟁은 인간을 가장 솔직하게 만든다. 역설적이게도 역사적으로 종교, 자유, 신념 또한 전쟁을 통해서 쟁취되었다. 전쟁 없이 인간은 이상을 실현할 수 없는 것일까? 돈키호테는 이 모순을 꿰뚫어 보았다. 화승총의 발명은 더 이상 명예로운 싸움을 허락하지 않았다. 전쟁은 이제 중재의 도구가 아니라 대량 학살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어떤 전쟁을 해야 하는가? 돈키호테를 읽다보면 세르반테스의 전쟁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인간은 왜 끊임없이 싸우는가? 전쟁이란 무엇인가? 전쟁은 피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야 하는 것인가? 전쟁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어느 시대든 전쟁은 많은 질문을 남긴다.
그로부터 많은 날이 지나 로타리오가 전쟁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까지 말이다. 그 전쟁은 당시 나폴리 왕국에서 뮤수 로트렉이 대장군 곤살로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에게 걸어 온 것으로, 뒤늦게 후회한 로타리오는 그 전쟁에 참전했던 것이다. (Book1-Ch35)
[270] Gonzalo Hernández de Córdoba(1453~1515). 스페인의 장군으로 〈대장군〉이라 불렸다. 국토 회복 전쟁을 지휘하였으며그라나다의 포위 작전에 참가하여 항복 교섭을 했다. 이탈리아에 출정하여 프랑스군을 무찌르고 나폴리 왕국을 정복했다. 공적에 비해 노후는 불행했다.
[292] Lautrec(1488~1528). 1507년 스페인이 나폴리를 점령했던 세리뇰라 전쟁에 프랑수아 1세를 따라 지휘관으로 참전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돈키호테』보다 약 1백 년 전쯤을 무대로 삼고 있다.
곤살로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 - 기사도의 종말
16세기 초, 스페인의 장군 곤살로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는 전쟁의 양식을 바꾸어 놓았다. 화승총과 참호, 그리고 전술적 기동력—그의 전략은 기사 계급을 몰락시켰다. 1503년 체리뇰라 전투에서 그의 군대는 프랑스군을 압도했다. 갑옷을 입고 창을 든 용감한 기사들은, 비겁하게 숨어서 총을 쏘는 병사들 앞에서 무너졌다. 더 이상 기사들이 전장을 지배하지 않았다. 곤살로의 전략이 최고로 빛나는 전투는 1525년 파비아 전투이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가 맞붙었다. 프랑수아 1세는 전통적인 기사 전술을 사용했다. 카를 5세는 화승총병과 참호 그리고 창병을 앞세웠다. 결과는 프랑수아 1세의 완벽한 패배였고 프랑스와 1세는 포로로 잡힌게된다. 파비야 전투는 기사도의 죽음을 알린 전투였다. 전쟁은 더 이상 명예로운 결투가 아니었다. 이제 대량 학살과 무차별적인 파괴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그렇게, 중세를 떠받치던 기사 계급은 몰락했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말을 타고 기사가 되어 모험을 시작한다. 왜 돈키호테는 기사가 되었을까?
그놈의 악마 같은 무기인 대포의 경악할 만한 분노가 없었던 시대는 축복받을 지어다. 대포를 발명한 자는 그 악마 같은 발명으로 지옥에 떨어져 응분의 대가를 받고 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하오 그 발명으로 비천하고 겁 많은 팔이 용감무쌍한 한 기사의 목숨을 끊을 수 있게 되었소. (Book1-Ch38)
그저 편력기사도가 길에서 행해지던 그 행복했던 시대를 부활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수를 세상이 깨닫도록 애쓰고 있을 뿐이지. 타락한 우리 시대는 그 시대가 누렸던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없네. 그때는 편력 기사들이 나라를 지키고 처녀들을 보호하며, 고아와 후견인들에게 맡겨진 미성년자들을 구제하고, 오만한 자에게는 벌을 주고, 겸허한 자에게는 상을 주는 일을 도맡아 했었지. (Book2-Ch1)
하지만 군사가 기반을 두고 있는 목적이 받을 찬양에 비하면 그리 대단하지 않소. 군사의 종국적인 목적은 평화요. 평화야말로 이 세상에서 인간이 원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라오. 나의 평화를 그대들에게 주노라, 나의 평화를 그대들에게 보내노라, 평화가 그대들과 더불어 있으라 하셨소. 이 평화가 바로 전쟁의 참된 목적이라오. (Book1-Ch37)
전쟁의 목적은 평화다
전쟁의 방식이 변하고, 세상이 기사도를 버린 시대에, 한 남자가 말을 타고 기사의 길을 나섰다. 왜 돈키호테는 기사가 되었을까? 그는 세상이 바뀌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 변화가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돈키호테는 편력기사가 길에서 행해지던 행복했던 시대를 부활시키려 했다. 돈키호테의 편력기사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합리와 맞서며, 아름다운 공주를 위해 싸우는 낭만이 있었다. 돈키호테는 전쟁을 미화하지 않았다. 그는 전쟁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다. 돈키호테의 시대가 지난지 5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전쟁을 한다. 무기는 더욱더 강해졌고 이제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지구가 자멸할 수도 있다. 돈키호테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쟁은 정말 평화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더 큰 파괴를 위한 것인가? 어떤 전쟁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 인간은 정말로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일까?
학문에 비해 군사가 우월하다는 문제로 돌아가기로 합시다. 이것은 각자 주장하는 바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연구할 여지가 있는 문제라오. (Book1-Ch38)
학문이 군사보다 월등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 앞에서 꺼지시오. 그들이 누구든지 간에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자라고 말해 주겠소. 그들이 그 근거로 삼는 이유를 들어 보면 정신노동이 육체노동을 앞서기 때문이라고 하더이다. 인부들이 자기의 힘을 사용하여 일하듯 군대는 단지 육체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오. 또한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강한 체력뿐이라는 것이지. 우리가 군사라고 부르는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힘을 써야 하는 일을 위해 머리를 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요. 이렇게 군사 또한 학문처럼 머리를 요구하고 있으니 이번에는 두 머리 중, 다시 말해 문인의 머리와 무인의 머리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많은 일을 하는지 알아보기로 합시다. (Book1-Ch37)
그 하나는 학문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군사의 길이지. 나는 학문보다는 군사에 가깝단다. 군사에 마음이 가는 것을 보면 화성의 영향 아래 태어난 게 틀림없어. (Book2-Ch6)
전쟁과 학문: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 레판토 해전
전쟁과 학문, 어느 것이 더 위대한가? 어느 것이 더 인간을 움직이는가? 세르반테스는 단순한 문인이 아니었다. 그는 먼저 전쟁을 경험한 행동가였다. 그는 1571년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다. 이 전투에서, 기독교 연합군은 이슬람 오스만 제국의 해군을 격퇴했다. 역사가들은 레판토해전이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서구 문명을 지켜낸 전쟁이라고 이야기한다. 세르반테스는 그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한쪽 손을 잃었다. 세르반테스는 학문의 길 보다 군사의 길이 더 위대하다고 믿었다. 세르반테스가 더 이상 전쟁에 참여 할 수 없게되자 돈키호테가 되어 자신만의 전투를 계속한다. 돈키호테가 떠난 모험은 결국 그 질문을 던지는 여정이 아니었을까? 전쟁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어떤 전쟁이 정당한가? 우리는 어떤 전쟁을 해야 하는가? 그리나 여전히 우리는 전쟁의 의미를 잊었고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채 살육전 같은 전쟁을 하고 있다.


찬/반
학문이 군사보다 월등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 앞에서 꺼지시오 (Book1-Ch37)
학문과 군사중 무엇이 월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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