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의 마법: 보고 싶은 대로 보는 힘

보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모든 것이 책에서 읽은 그대로 되어 있고 또 될 것이라 믿고 있는 우리의 모험가에게는 이 객주집이 네 개의 탑과 은빛 찬란한 첨탑, 그리고 위로 여닫는 다리와 성 둘레로 깊게판 해자가 있으며 그 밖에 책에 묘사된 요소들을 모두 갖춘 성으로 보였다. (Book1-Ch2)

그 부인을 보지 않고도 그렇게 믿고 고백하고 확인하며 맹세하고 지키는게 중요한 것이오. (Book1-Ch4)

매일 사지도 않은 로또에 당첨되길 바라듯 시대와 사람은 마법을 갈망한다. 왜 사람들은 로또를 사지도 않고 되기를 바라는것일까? 아무도 기우제에 우산을 가지고 가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은 기적을 꿈꾸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리라고는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돈키호테의 마법은 다르다. 돈키호테는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건 마법을 믿는다. 돈키호테의 마법은 풍차를 괴물로 보이게 하고, 단순한 농사꾼 처자를 우아한 공주로 변신시킨다. 돈키호테는 그 마법을 정말로 믿고 풍차 괴물과 싸우며 공주와 사랑에 빠진다. 돈키호테의 마법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대로 바꾸는 힘이다. 보고싶은 대로 볼 수 있는 것은 미친 것일까? 아니면 가장 위대한 인간의 능력일까? 세상이 아무리 그 마법이 거짓이라 말해도, 그는 스스로 걸어 들어간 마법의 세계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역시, 돈키호테를 따라가보면 바보같기만 하던 그의 마법에 조금씩 걸려든다.

내가 보기에 분별력을 잃고 마법에 걸린 사람은 바로 당신인 것 같소... 태양은 비추지 않고 얼음은 차게 하지 않으며 땅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고 설득하는것과 같기 때문이오. 만일 이것이 거짓이라면, 헥토로나 아킬레스나 트로이 전쟁이나 프랑스의 열두 기사나 영국의 아서 왕도 없다는 이야기요. 아서 왕은 지금까지도 까마귀가 되어 돌아다니고 있어서 종종 사람들은 그가 왕위에 오르기를 기다린단 말이요. (Book1-Ch49)

세상이 돈키호테의 마법에 비웃음을 보낼 때, 그는 오히려 세상이 환상과 마법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만일 자신이 믿는 세계가 거짓이라면, 아서 왕도, 트로이 전쟁도, 위대한 아서왕의 까미귀 전설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까마귀가 사라지면 영국이 망할 거라는 마법이 마치 사실이라고 증명하듯 런던탑에 가면 우리는 여전히 까마귀를 볼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의 공습 속에서도, 런던 사람들은 까마귀를 지켰다. 이쯤 되면 마법이 없다는 돈키호테의 말을 부정하기 힘들다. 현실이 힘들면 더욱 강력한 마법을 원한다. 나니아 연대기는 2차 세계대전의 폭격을 피해 시골로 피난 간 아이들이 마법의 세계에서 왕과 여왕이 되는 이야기다. 판의 미로는 스페인 내전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한 소녀의 판타지 이야기다. 전쟁 속에서 마법은 더욱 강력해진다. 현실이 잔인할수록, 우리는 더 강력한 마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마법에 걸려 있다는 걸 알고 확신하네. 그리고 이렇게 해야 내 양심이 편안하다네. 왜냐하면 내가 마법에 걸려 있지 않은데도 나태하고 비겁하게 나 스스로를 이 우리에 갇혀 있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괴롭지 않겠는가. 지금 이 시간에 곤경에 처해 나의 도움과 보호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생활이 곤궁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내버려 두는 셈이니 말일세. (Book1-Ch49)

돈키호테는 왜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었을까? 그는 마법에도 걸리지 않았는데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자신이 직접 마법을 걸지 않으면, 결국 누군가가 만든 마법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특히 시대가 거는 마법은 강력해서 마법에 걸리지 않을 수 없다. 중세의 마법은 종교였다. 사람들은 신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믿었고, 교회의 마법이 모든 것을 지배했다. 근대의 마법은 과학이었다. 모든 것이 과학으로 설명될 수 있고, 인간의 이성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마법은 '돈'이다.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마법. 돈이 많으면 행복할 거라고 믿는 마법. 돈이 곧 성공이라는 마법. 우리는 이 마법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마치 마법에 걸린걸 모르는 마법에 걸린것같다. 이 마법에 걸리면, 돈이 나를 소유하고 지배한다. 돈이 정말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우리를 가장 깊은 우리 속에 가두는가? 돈키호테처럼 스스로 마법을 걸면, 내가 나를 소유하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 마법을 거는가, 아니면 시대가 만든 마법에 걸려버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