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현답(愚问贤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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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최진석 교수님께 질문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교수님, 소명은 나를 완성시키기 위한 도구입니까? 아니면 그 자체가 나의 존재목적입니까?”
최진석 교수님이 답해주셨습니다.
“소명이 곧 너여!”
이 답변을 듣고, 충격에 빠졌었습니다. ‘소명이 곧 나라고?’
‘우리 어머니가 소명을 잉태하고 낳았다는 말인가? 소명이 밥먹고 걸어다닌다는 말인가? 소명은 몸이 없지 않나? 나는 뭐지?’ 등등의 질문을 혼자 해보고, 긴 시간 동안 곱십(*ㅆ)어보았습니다.
이제 교수님 말씀을 조금은 이해했다고 생각이 되고, 내면에서 나름 정리가 된 것 같아 교수님의 답변을 제 나름대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인간이 소명을 가지면, 살아가는 동안의 수많은 선택들도 그 소명에 맞추어 결정됩니다. 고로 삶의 경험들이 소명과 관련된 일들로 채워집니다. 세계관이 자신의 소명으로 전부 설명 가능한 형태로 구성되게 되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소명을 기준으로 질서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보통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곧 소명이 내가 되는 것이죠.
여기서 거친 질문을 하나 던져봅니다.
‘소명이 없는 사람은 없는 존재인가?’
위의 논리에 따르면, 소명이 없는 사람은 없는 존재입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소명이 없는 사람은 실존하지 않습니다. 위의 논리에 입각하여 설명해보겠습니다. 소명이 없는 사람은 세계관이 소명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질서를 가지지 못합니다. 세계관에 질서가 없으면 말과 행동에도 질서가 없어집니다. 말과 행동에 질서가 없으면, 그때 그때 상황에 감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반응하는 행태는 지적이지 않고, 지적이지 않으면 인간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적이지 않은 인간’을 우리는 ‘실존하지 않는다’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까지의 논리를 따라 처음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우선 제가 던진 첫 질문에서 제가 아직 인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소명 자체가 나임을 알지 못하고, 소명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전혀 알지 못한 상태입니다. 소명이 없으니 소명이 가지는 의미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짧은 답변을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셨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우문현답(愚问贤答)이라 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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