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로그인
  • 참여
  • 자유게시판
  • 참여

    자유게시판

    예술가와 지성인은 무엇인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벽돌맨 (49.♡.190.134)
    댓글 댓글 1건   조회Hit 65회   작성일Date 25-01-11 01:58

    본문

    ac3717cad73f685ca49816a7bf1e3cdf_1736528382_4642.png
     

     예술가가 무엇인지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술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술은 현실을 투영하지만, 결코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예술을 관찰자로서 대하며,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가상이기 때문에 가치를 갖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반 고흐의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과 비극을, 뭉크의 작품을 통해 불안과 고통을 느낀다. 이는 두 작가의 작품이 가상이기에 관찰자로서 몰입하고 감동할 수 있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파벨만스에도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가 있다. “열차 사고 장면을 영화로 만들면, 열차를 두 번 충돌 시킬 필요는 없겠구나. 필름을 다시 돌려 보면 될 테니까.” 이처럼 예술은 가상이기에 자유롭게 관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실을 투영하고 동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술가란 무엇인가? 예술가란 현실을 가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가상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과 세상을 관조하며 관찰자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들은 부모가 죽는 순간에도 슬픔에 빠지기보다는, 맥박이 멈추는 목덜미를 관찰한다. 윤리와 도덕 등 인간성을 넘어서, 세상의 사건들을 관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예술가들이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분명 감정을 느낀다. ,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관찰자의 태도로 순간을 포착하여 표현함으로써 예술 작품을 탄생시킨다. 요컨대 예술가는 현실을 예술(가상)로 살고, 이를 통해 예술(가상)을 만들어내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예술가를 과연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예술(가상)을 위해 부모가 죽는 순간이나 범죄가 일어나는 순간까지도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을 관조하는 행위를 과연 인간적인 행위라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예술가를 인간이 아닌 존재라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나아가, 나는 지성인 역시 예술가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지성인이란 새로운 지식을 섭취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때는 자기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기존 지식과 충돌하게 된다. 이때 자신을 관조하지 않는다면, 기존 지식에 사로잡혀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 맹목적인 믿음과 주장에 빠지는 것이다. 따라서 지성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예술가와 같이 관조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관조는 세상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사소한 불편함 정도는 감수하자는 식의 태도가 아니다. “별것도 아닌데 왜 싸워?”라고 말하며 문제를 사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지성인으로 살고자 한다면, 작은 불편함도 목숨을 걸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태도로는 좋은 인간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새로운 세상을 열 수는 없을 것이다.  

     

     새 말 새 몸짓 게시판에서 일어나는 논쟁은 작은 불편함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불편하게도 산다” “예민하다 예민해~”라고 비웃듯 바라본다면, 예술가와 지성인의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가 배워왔고 살아가려는 삶이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함인지, 아니면 그저 범인(凡人)으로 남기 위함인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추천2 비추천0

    댓글목록

    profile_image

    경팔이님의 댓글

    경팔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오~~ 역시 멋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장르를 만들겠다고 덤비는 사업가, 벽돌맨님 그리고 상도님을 보면 제가 반성할 때도 많고, 배우는 것도 많고, 자극 받을 때도 많습니다.

    사실 저도 "불편하게도 산다" 라는 주장에 일부 동의하고 뜨끔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유나 근거가 빈약한 텅 빈 주장에 모두 대응하고 있으니까요. ㅠㅠ
    동네 강아지가 저를 향해 짖는다는 이유로 똑같이 짖는 꼴이 아닐까 합니다.
    제 생각을 추가로 펼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끔 대응을 하다 보면, "내 머리에서 이런 생각이 나오다니 ㄷㄷ" 같은 생각과 함께 저 자신에게 감동하기도 하거든요.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상대를 보고 배우는 것이겠지만요.

    무엇보다 벽돌맨님께서 하신 "지성인으로 살고자 한다면, 작은 불편함도 목숨을 걸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란 말에는 적극 동의합니다. 사소해보이는 일이 점점 쌓이고 쌓여 사회를 무너트린 역사적 사례를 자주 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왜곡과 날조 그리고 채팅방 유출에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라는 시가 이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보셨을 수도 있겠지만 말을 한 김에 공유하겠습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