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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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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노경민 (123.♡.33.101)
    댓글 댓글 8건   조회Hit 1,060회   작성일Date 24-12-21 16:29

    본문

    키보드 배틀 상대는 나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부터 답하시길." 이에 나는 다소 건방지게 콧방귀를 뀌며 답했지. 그런데 당당하게 콧방귀를 뀌려면, 내가 어떤 자세로 이 질문에 대했고 어떤 방향으로 접근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나마 정당한 콧방귀가 되기 때문이다!! 풉ㅋㅋ



    기본학교 학생이라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 번 즈음은 답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당당하게 답할 수 있는 건, 난 그 누구보다 진실되게 답했다는 것. 최소 하루에 1시간은 고민했다는 것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이 질문에 정말 진실되게 답한 사람의 특징은 본인이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 조금 더 그럴싸하게, 길게, 솔직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종종 몇몇에게 어떻게 답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고 답변을 듣고 실망하기도 했다. "내가 너무 꽉 막힌 사람은 아닐까?"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재미도 깊이도 밀도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마치 "치킨을 먹었다. 맛있었다."와 다를 게 없는 초등학생 일기를 보는 기분이랄까? 사실 이들의 공통점은 질문을 길~~ 게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게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진정성이 부족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접근했는지 공유해보고자 한다. 

    (*물론 나도 드럽게 못썼다!!!!!!!!!!!!!!)


    논외로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혼자 품고 있으면 되는 건데, 왜 굳이 글로 써야 하나요?"


    참을성이 부족한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답했다. 

    "내가 누구인지 그럴싸하게 하게 설명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적어도 글로 정리해 봐야겠죠. 그럴싸하게 쓴다는 것은 마냥 멋있고 좋은 생각으로만 채우라는 게 아니에요. 내가 어떤 존재인지 설득력 있게 쓰라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나 자신에게 설득, 납득시킬 줄 알아야 타인 그리고 세상을 설득할 수 있으니까요. 우린 이런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모인 거 아닌가요?" 


    그렇게 나는 근질근질거리는 생각을 참지 못하고 그 누구도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털어놓기 시작했다. 

    일단 나는 적어도 하루에 1시간씩 고민했다. 일요일에 일단 답을 써보고, 월요일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에 매일 한 시간씩 고민하며 보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나마 그럴싸한 담이 나온다.  

    만약 컴퓨터 앞에 앉아서 1시간 내로 썼다? 그건 반성해야 한다. 중학생 수행평가도 과제도 그렇게는 안 하겠다!!!!!!




    "나는 누구인가?"에 답하려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장에 대해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이는 단순한 의문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름, 나이, 직업 등으로 접근하면 "오늘 치킨 먹었다. 맛있었다"와 같은 수준의 일기가 된다. 내 시선의 높이에서 이 질문에 대해 접근해 볼 수 있는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나라는 존재, 나에게 처한 상황과 정체성, 세상 속에서 나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낯설게 다가와 답을 내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문장을 바꿔버렸다. "나는 누구인가?"를, "나는 나를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또는 "나는 무엇인가?"로. 


    예를 들어, "돼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자면 처음에는 동물, 포유류, 맛있는 고기 정도의 답이 나온다. 그런데 초등학생 일기처럼 되지 않으려면 조금 더 길게 써야 한다. 길게 쓰려면 지금의 돼지가 어떻게 우리의 곁에 올 수 있게 되었는지 역사를 들춰봐야 한다. 돼지의 역사를 들춰보면, 잡식성, 뛰어난 적응력, 훌륭한 번식력, 인간의 문화와 종교와 잘 어우러진 동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하나의 키워드로 뽑아내면 '공존'이 나온다. 그래서 "돼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돼지는 공존을 잘하는 동물이다.'처럼 그럴싸한 답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내면 안 된다. 공존이란 무엇인지, 공존이라는 키워드로 a4용지 한 장 정도 분량을 쓰면서 정리를 해봐야 한다. 그리고 이 한 장 분량의 텍스트와 내가 돼지를 바라보며 생각했던 부분과 대조하며 일치하는 부분들을 솎아내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 정도 작업을 거쳐야 친구 앞에서 "돼지는 공존하는 동물이야 ㅎㅎ"라는 말을 하며 설득력 있게 떠들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때에도, "돼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동일하게 적용시키면 된다. 처음에는 내 이름, 나이, 직업 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끝맺으면 초등학생 수준의 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내 역사를 들춰봐야 한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단 하나의 키워드로 묶어낼 수 있다면, "나는 누구인가?"의 그럴싸한 답변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어렵다. 그런데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한 번 즈음 정독한 사람이라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역사를 통해 나를 정의한다.



    센델 교수는 길고 긴 철학, 사상사에서 네 가지 주제를 뽑아 분류한 다음 정의란 무엇인지 논의했다. 크게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자유지상주의, 공동체주의를 다루며, 장점과 한계를 말한다. 이 책을 보면 정의는 상황에 따라 변한다. 그래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말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나만의 답변을 내자면, "변화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나은 선택을 하려면 '미덕이 갖춰져야 한다. 고로 미덕을 갖추는 우리의 태도가 곧 정의이다." 정도다. 여기서 키워드를 하나 뽑아낸다면 '미덕'이 나온다. 여기서도 미덕이라는 키워드로 a4용지 한 장 분량의 글을 작성한 다음, 내가 생각하는 정의를 바라보며 일치하는 부분들을 솎아내는 작업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의 앞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말하는 정의는 미덕이란다 ㅎㅎ"라고 그럴싸하게 떠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접근하면 된다. 나는 누구인가에 답하기 위해 내 역사를 들춰봐야 한다. 그런데 내 모든 역사를 들춰보기 위해 부모님께 분유는 무엇을 먹었는지, 걸음마, 옹알이 등등의 시기를 묻기 시작하면 머리가 아파온다. 그러니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접근한 것처럼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큰 요소들을 적어도 3~4개 정도 분류한 다음, 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키워드로 뽑아내서 설명해나가면 된다. 이 키워드를 발견한다면, 앞서 언급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접근해 볼 수 있는 세 가지 방향인 나라는 존재, 나에게 처한 상황과 정체성, 세상 속에서 나의 위치에 대한 답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최진석 교수님 또한 종종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나는 그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한다. 지금 떠오르는 이야기는 최진석 교수님의 어린시절, 감나무 위로 올라 무협지에 나오는 인물처럼 다른 감나무로 건너가려다가 떨어져서 갈비뼈를 다쳤다는 이야기. 이 일화와 지금의 교수님을 연결할 수 있는 키워드는 무모함, 황당함, 건너감이다. 그러므로 내 역사를 들춰보며, 지금의 나와 연결지을 수 있는 키워드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내 역사를 들춰본 다음 키워드로 묶으라는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하려고 하면 어렵다. 하루에 최소 1시간씩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몇몇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멋진 말, 좋은 말, 아름다운 말만 적어내려고 한다. 그런데 이는 역사를 왜곡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수많은 국가들의 역사를 들여다봐라. 성공하고 아름다운 역사만 있나? 음침하고 더럽고 추잡한 역사도 있다. 독일처럼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제대로 된 국가 철학이 세워진다. 교수님도 흑역사를 우리 앞에서 고백하신 적이 있었다. 고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때에도 다소 부끄러울 수 있는 기억들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 섹스할 때의 좋지 않았던 기억 그리고 섹스관을 바꾸게 된 특별한 사건들도 한 번 즈음은 들춰볼 필요가 있다. 꼭 섹스만 다룰 필요는 없다. 잠이 많아 게을렀던 나의 모습, 식탐이 과했던 과거, 또는 나만의 콤플렉스 등에 대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왜곡된 내가 아닌 진짜 나를 마주하여 나만의 철학을 굳건하게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논외로 나는 이 지점에서 마돈나의 "SEX BOOK"이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섹스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돈나의 'SEX BOOK'이라는 사진집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건강한 인간은 성을 스스로 선택한다.'이다. 사회가 정해놓은 섹스를 따르는 게 아닌, 본인이 스스로 섹스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돈나의 'SEX BOOK'은 상당히 수위가 높고 몇몇 장면들은 불쾌함을 넘어 역겨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사회가 말하는 섹스를 그대로 수용하며 따라왔는가, 내가 침대에서 만큼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해서 주체적으로 움직여봤는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보다 진실된 "나는 누구인가?"에 답하려면 부끄럽고 외면하고 싶었던 침대의 역사도 들춰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왜곡된 역사를 진짜로 받아들이는 위선쟁이로 전락하게 되겠지.




    지금의 나를 넘어서기 위한 질문.




    "나는 누구인가?"에 답하기 위해 나만의 역사를 들춰보면 무엇이 나를 지금의 나로 이끌었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지금'이란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지금'이란 무엇인가? 인식하는 순간 과거로 흘러가 버리는 것이다.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붙잡으려고 해도 붙잡을 수 없는, 손으로 쥐려고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지금의 나로 이끌었나?"에 대해 답하려면, 지금 이 순간이 아닌 곧 닥쳐올 지금인 미래까지도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내가 어떤 존재인지 보다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금이란 무엇인지 인식한다면 무엇이 지금의 나로 이끌었는지, 무엇이 나를 이끌어갈 것인지, 나는 나를 어디로 끌고 가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던지면, 나는 누구인가를 시작으로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에 대해 줄줄이 사탕으로 답이 나온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렇다면 네가 제일 잘 썼겠네?"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사실 내가 접근한 방법은 상당히 복잡하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조금 더 간결하게 접근했을 것이다. 필요한 부분만 적으면 되는데, 나는 불필요한 내용들도 적어버렸다. 마치 수리논술에서 수식을 생략해서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학생처럼 말이다. 맥락에 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내용도 있었다. 더 나아가 사무국장님께서 나에게 비밀스럽게 폴 트루니에의 <비밀>이란 책을 추천해주신 이유도 비밀을 제대로 털어놓지 않고 감춰서 그런거겠지ㅋㅋㅋㅋㅋㅋㅋㅋ


    개인적으로 가장 멋진 답을 내놓은 사람이 있었다. 무례하지만 그분에게 점수를 준다면 A+에 가깝다. 그는 장르를 만들고 싶다며 덤비는 사업가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오줌을 지릴 정도로, 겉모습만 보면 양아치가 따로 없다!!! 그런데 술, 담배도 안 하는 아주 건실하고 착실한 청년ㄷㄷㄷㄷ 반전이다!!! 그만큼 자기 자신에게 진실된, 시간 약속도 항상 지키는 멋진 사람이다. 난 그분이 낸 답변이 나는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내가 앞서 말한 것처럼 본인의 역사를 들춰본 다음 하나의 키워드로 뽑아내 자신이 누구인가 어디로 향하고 싶은지 밝혔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A+를 주고 싶었던 이유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접근하는 방식이 나와 동일했기 때문이겠지.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친근할 수밖에 없으니까.


    수학문제를 풀 때도 각 사람마다 접근하는 방식과 풀이 방법이 다 다르다. 똑같은 수학 문제여도 초등학생과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같은 대학생끼리도 접근하는 방식이 다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내가 접근한 방법을 그대로 따르라는 건 절대 아닌, 본인만의 방법으로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더 진솔하게 접근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야 "오늘 치킨을 먹었다. 맛있었다." 와 같은 답변이 나오지 않을테니까. 

    그런 답변이 나오지 않아야 나 자신에게 더 그럴싸하게 설득할 수 있고, 타인, 세상에게 내 생각을 그럴싸하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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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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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너무 길어서 첫 부분만 읽었는데, 재미있네요!
    더 중요한 일 해야 해서 뒷부분은 넘깁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이고, 이런 사람입니다."
    기본학교 첫 시간에 자기 소개를 합니다.
    기본학교가 아니어도 직장 면접에서든 취미 활동에서든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개 "나는 누구인가"를 주고 받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누구인가"를 혼자만 품고 있겠다는 건
    다른 사람 앞에 꺼내 놓은 "나는 누구인가"와
    내 마음에 품은 진짜 "나는 누구인가"가 다르다는 뜻이겠네요.

    "그럴싸하게"나 "길게"보다는 "솔직하게" 설명한 "나"가
    진짜 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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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만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만이 아이피 (223.♡.176.218) 작성일 Date

    맞아요. 솔직하게 설명하는 것도 진쯔 중요해요. 그래서 제가 섹스나 콤플렉스에 대해서도 들여다 보고 이에 반영하는 게 좋다고 말했어요. 그래야 독일처럼 제대로 된 국가철학을 세우듯 나만의 철학도 제대로 된 것이니까.

    그럴싸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초반부에 말했듯이  나를 납득시켜야 상대와 세상을 납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이걸 하나의 연습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어요.

    길게 쓰는 건 그닥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이게 진실됨, 진정성이라 생각해요. 길게 쓰라는 건, 그만큼 오랫동안 앉아서 나를 들여다 봐라. 같은 의미에요.

    짧아도 좋아요. 그런데 길게 쓰고나서 짧게 줄인 거랑, 그냥 짧게 쓴 것 중  전자가 여러 질문을 받았을 때 더 제대로 답해서 나 뿐만 아니라 상대까지 설득, 납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럴싸하게,길게 써보는 연습을 해봐야 나를 납득시키고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여기에솔직함이 빠지면 위선쟁이로 전락하겠죠. 그래서 나의 단점과 추잡함, 콤플렉스까지 반영해서 나는 누구인지 들여다 보는 솔직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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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단점, 추잡함, 콤플렉스는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는
    해석을 거친 "나"를 보여 줍니다.

    단점: 내 특성 + 부족하다는 해석
    추잡함: 내 상태 + 지저분하다는 해석
    콤플렉스: 내 소망 + 못 이룬다는 해석

    소중한 "나"를 왜 한 가지 해석에 가두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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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팔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팔이 아이피 (223.♡.176.198) 작성일 Date

    제가 “내 역사를 들여다 봐야 한다” 라고 했잖아요? 이게 역사가라는 관점으로 나를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 역사를 내가 스스로 해석하고 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죠.

    나의 생각, 신체 감각 그리고 내 활동 과정에 대해 말하고 설명하는 건 모두주관적인 해석의 결과물입니다. 완벽한 객관은 없잖아요?

    단점과 추잡함, 콤플렉스라는 세 요소를 들여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솔직하게 볼 수 있어요. 메타인지겠죠? 이걸 알면 내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더 진솔하게 답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석에 가둔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제가 글을 잘못된 방향으로 썼나봐요.
    해석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철학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제 접근법이 맞다고 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밑에서 써놨지만, ‘나는 이렇게 접근했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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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저는 경만이든 경팔이든 이창훈이든
    부족하고 지저분하고 무능력하다는 해석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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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팔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팔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ㅋㅋㅋㅋㅋㅋㅋ 정당화 하는게 아니고요..
    원글 그리고 댓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단점과 콤플렉스는 보완, 극복해야 할 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진짜 누구인지 마주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러면 독일의 홀로코스트라는 역사도 지저분하다는 해석이 정당하지 않겠네요? 그런데 독일은 이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해서 인건존중, 민주주의 강화라는 더 견고한 국가 철학을 세웠잖아요?

    추가로 부족함, 콤플렉스를 받아들이자고 말하는건, 저만의 생각이 아니고요. 칼 구스타프 융이 그림자라는 개념으로 이미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자라는 개념을 활용해서 이야기로 구현한 게, 우리가 함께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죠. 데미안을 같이 읽어놓고 이런 말씀을 하시면... ㅋㅋ

    무튼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단순합니다.
    "치킨을 먹었다. 맛있었다." 같은 방향으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접근하지 말자.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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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홀로코스트는 지저분하다"는 해석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겠지만
    "데미안은 이런 책이다", "경팔이의 특성은 보완 또는 극복돼야 한다"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마주하는 게 먼저고
    사랑하는 게 그 다음입니다.
    해석해서 보완하고 극복하는 일은 딱히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얼마나 사랑스러울 수 있는지도 모르고
    일단 보완부터 하고 극복부터 하려는 태도는
    스스로에게 가하는 홀로코스트입니다.

    저는 경민 형님의 부족함과 콤플렉스를 받아 들일 생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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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팔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팔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일단 제 글은 "이게 맞다." 또는 "이렇게 접근해야 한다." 가 아니고요. 나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접근했다. 그러니 '치킨을 먹으면 맛있다' 같은 방식으로는 접근하지 말자> 정도입니다. 저만의 접근 방향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창훈님은 납득도 이해도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창훈님은 창훈님 방식으로 접근하면 되고요. 반대로 '치킨을 먹으면 맛있다.' 같은 형식으로 접근하고 싶으시다면, 납득할 만한 이유에 대해 말씀하시면 됩니다.
    마지막에도 이렇게 써놨잖아요. "내가 접근한 방법을 그대로 따르라는 건 절대 아닌, 본인만의 방법으로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더 진솔하게 접근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면 이제 창훈님 말에 답을 할게요. 저는 단점이나 콤플렉스를 "마누라 빼고 다 바꾸자" 같은 식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 단점, 콤플렉스까지도 마주해야,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다." 였죠? 이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마주하게 되면, 단점이나 콤플렉스 중 무엇을 보완, 극복해야 하는지 눈에 보인다." 정도입니다.
    저는 모든 단점과 콤플렉스는 보완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논외로 어떤 동지가 저에게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같은 뉘앙스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있듯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을 조금 멀리서 봐야 한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서 보게 해주는 렌즈가 지식이다. 지식을 통해서 나를 바라보면 내가 조금 더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같은 형식으로 말했습니다.
    이처럼 저도 단점이나 콤플렉스는 무조건 보완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창훈님이 말씀하신 "해석해서 보완하고 극복하는 일은 급하지 않다." 라는 말에 일부분 동의합니다. 일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해석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나는 누구인지 정의해서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을 향해 그럴싸 하게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해석이 중요한 이유를 말하자면, 더 나은 내가 되려면, 나에게 드러난 단점이나 콤플렉스 중 일부는 보완, 극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보완하고 극복해야 하는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역사가처럼 내 과거를 들여다 보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역사라는 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라, 현재의 필요에 의해 발굴하고 해석한 결과물이잖아요?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같이 읽은 <메이지 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에서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죠? 그 책의 내용을 조금 옮겨보겠습니다. "어떤 시대에 어떤 인물들이 교과서나 위인전에 실리고 동상과 지폐초상으로 등장하는가는 그 사회의 사상과 지향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지점이다. 그분들이 훌륭한 건 분명 ㅎ하지만, 많고 많은 위인들 중 하필 그분인 것은 우리 사회의 열망이 그들을 불러낸 까닭이다."
    우리도 역사를 통해 과거에 어떤 게 문제였는지 바라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무엇을 보완, 극복할 것인지를 들여다 보잖아요? 그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해석이 중요하다고 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창훈님은 제 부족함과 콤플렉스를 받아 들일 생각이 없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 글에 제 부족함과 콤플렉스를 단 하나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ㅠㅠㅠㅠ 그래서 창훈님은 이를 받아들이고 싶으셔도 받아들일 수가 없을 거에요. 제가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