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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불알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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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경민이 (123.♡.33.101)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37회   작성일Date 24-12-17 18:13

    본문

    누군가는 이 글의 제목만 보고, "하.. 이 새키 또 사직했네." 라며 불알을 노골적으로 말하는 나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노려볼 것이다!! 


    그러니!!! 나는!!! 제목을 왜 이렇게 쓰게 되었는지 재빨리 설명해야겠다!! 


    찰스 부코스키의 <고양이 불알을 보며>란 글을 공유하려고 제목을 이렇게 쓴 것이다!!!! 


    그렇다면 제목을 왜 그따위로 지었냐고? 


    그건 내 마음이지~!!!!!!!! 


    며칠 전 최진석 교수님꼐서 올리신 "죽은 시인의 사회"란 글을 보고 <고양이 불알을 보며>란 글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교수님은 보들레르를 언급하셨으니 보들레르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지, 왜 찰스 부코스키야??? " 


    그건!!! 내 마음이지~~!!!!!!! 


    난 과거 찰스 부코스키의 <고양이 불알을 보며>라는 글을 처음 보았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난 왜 고양이 불알을 볼 생각을 못했을까?" 


    내가 이런 생각에 빠진 이유는 나는 그 글을 읽을 때까지 고양이의 불알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렸을 때 만화에서 만났던 고양이들의 영향을 받아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어렸을 때 만난 만화 속 고양이들은 매혹적인 눈빛과 살랑거리는 꼬리로 모든 시선을 빼앗아 버렸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만난 고양이를 볼 때도 우주처럼 광활하지만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시선, 봄바람 보다 우아하게 움직이는 꼬리만 보느라 통통한 불알.. 아니!!! 고환을 보지 못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포유류 동물들이 고환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몇몇 포유류 동물은 고환이 체내에 위치해 있다. 고양이가 고환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포유류 동물임에도 나는 고양이를 똑바로 보지 않고 판단하는 바람에, 고양이 불알,. 아니! 고환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난 강아지 고환도 본 적이 없었다. (* 하지만 그때는 과거일 뿐! 지금은 둘 다 봤다 Vㅎ_ㅎV )


    어쩌면 내가 고양이와 강아지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난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다. 그리고 고양이와 강아지 중 누가 더 좋냐 묻는다면 당연 강아지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강아지를 얼마나 좋아하냐면! 난 종종 강아지와 발을 맞춰 걸어보고 싶다는 꿈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당근마켓에 무료로 강아지 산책을 시켜주겠다는 글을 올려도 반응이 없다. 강아지를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다는 글을 써서 그런가? 어쩌면 우리 동네 사람들은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 똥 봉투를 들고 다닐 정도로 책임감이 강해서 나에게 맡기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길거리 강아지를 향해 따뜻한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길거리 고양이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나에게 길거리 노숙자와 크게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길거리 노숙자들이 내민 바구니를 향해 돈을 건네줄 수는 있어도 따뜻한 악수를 건넬 생각을 하지 않듯, 길거리 강아지에게 소세지, 고양이에게 츄르를 던져줄 수 있어도 굳이 손을 내밀지 않는다. 


    무튼! 며칠 전 최진석 교수님의 <죽은 시인의 사회> 글을 보고 나는 다시 생각했다. 


    "교수님의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그저 오래오래 들여다보는 그사람'이 바로 찰스 부코스키 같은 존재구나!! 저 사람은 고양이 불알을 오래오래 들여다보았구나!!" 


    최진석 교수님은 <죽은 시인의 사회>란 글에서 보들레르라는 시인이 고독 속에서 오래 들여다보며, 감정에 동화되지 않으며, 자신의 고유한 피를 흘려 세상을 재구성한 존재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셨다. 사실 찰스 부코스키가 최진석 교수님이 말씀하신 시인과 100%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고양이 불알을 보며> 란 글을 보면 그가 감상적으로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냉정한 관찰자로서 유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 물론 이렇게 말하면, 시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교수님처럼 시를 즐기는 정도는 되지 못하고, 그냥 내 생각을 환기시킬 목적으로 찾아서 본다. 시를 보면 내가 평소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발견할 수도 있고, 때로는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단어 간의 캐미를 구경하는 재미로 본다. 특히 평소 자주 사용했던 단어가 낯선 단어와 만나 아름다운 문장이 이루어질 때가 있다. 이는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두 배우의 캐미가 잘 맞아떨어져 재미있는 그림을 자주 연출하는 것과 유사하다. 축구 경기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가 큰 경기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봤을 때의 희열이랄까?




    아~~ 이렇게 설명했으니!! 이제 !! <고양이 불알을 보며> 란 제목에 대해 따뜻하게 이해해주겠지? 나를 향해 불알이던 아니.. 부라리던 눈빛은 이제 따뜼하게 바뀌어있겠지? 




    아래는 찰스 부코스키, <고양이에 대하여>, 시공사 중, <고양이 불알을 보며>란 글이다.

    (* 생색내는 건 아니지만, <고양이에 대하여> 란 책은 절판됨!!!!! 보고 싶다면 도서관으로 가야한다!!)





    고양이 불알을 보며


    창가 옆에 앉아

    맥주 땀을 흘리며 

    여름에 상처 입은 채

    나는 고양이 불알을 보네.


    내 선택은 아니야

    고양이가 포치 위

    낡은 흔들의자 위에서 자고 있거든

    그러다가 나를 보는 거야

    고양이 불알에 매달린 

    엉덩이 사이로.


    꼬리가 있어. 그 망할 것.

    쭉 뻗어 있지

    제멋대로

    털이 복슬한 저장고가 보여

    고양이 불알을 보면서 

    뭇느 생각을 할 수 있겠어?


    위대한 해전에서 패배하고

    바다에 가라 앉은 해병을 생각할 리 없잖아.

    불우이웃을 

    원조하는 프로그램을 생각할 리도 없겠지.

    꽃 시장이나

    달걀 한 판을 생각할 리도 없어.

    망가진 전등 스위치일 리도 없고.


    불알은 불알이야. 그것뿐

    그리고 확실히 고양이 불알이지

    내 건 약간 물러 보이지만,

    우리 세대 사람들이 나한테 그러던데

    무진장 크다고.

    "저네 정말 대단해. 부코스키"


    하지만 고양이 불알은 말이야.

    고양이가 불알에 매달린 건지

    불알이 고양이에 매달린 건지 알 수가 없어.

    알잖아. 밤이면 밤마다 암컷을 차지하려

    전투가 벌어진다는 걸

    우리 누구든 쉽지가 않아.


    잘 보면 알아

    고양이 왼쪽 귀가 찢어져 없어진 걸

    한번은 고양이 한쪽 눈이 

    뽑혀 나가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했어

    하지만 일주일 후

    피딱지가 떨어져 나가니까

    이 순수한 금녹색 눈이

    나를 보고 있는 거야


    온몸이 여기저기 물려서 쓰리겠지

    요전 날,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는데

    가르랑거리면서 나를 물려 하는 거야

    두개골에 붙은 털가죽은 핏기 하나도 없이

    반으로 갈려저서 뼈가 드러나 보이더군.

    우리 누구에게도 쉽지가 않아.

    고양이 불알, 불쌍한 녀석


    고양이는 이제 자면서 꿈을 꾸고 있어

    무슨 꿈? 통통한 흉내지빠귀를 입에 무는 꿈?

    아니면 더위 속 암고양이들에게 둘러싸인 꿈?

    고양이는 백일몽을 꾸고

    오늘 저녁에 

    찾아 나서겠지


    행운을 빈다 늙다리 녀석.

    쉽지는 않지.

    우리는 우리 불알에 매달려 사는 거야. 그뿐이지.

    우리는 우리 불알에 매달려 살아.

    나도 조금은 직접 써먹을 수 있었어.

    한편으로는

    그 눈을 보면서 왼 주먹으로 선제공격을 하고 

    미친 듯 도망가지.

    그렇게 해도 더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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