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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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서는 이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렴풋이 알아들었다.
정원을 만들 때 누군가는 정원을 의뢰해야 하듯이, 어떤 정원사에게 맡길지를 정해야 하듯이, 그 정원사는 해당 의뢰를 할지 말지 결정하듯이 어느 시점에는 결정의 순간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결정은 철저히 인간이 해 왔던 것이었는데, 인공지능을 활용한 순간 누군가가 결정을 대신 해주어야 했던 것이다.
미서는 어렴풋이 그 ‘종자값’이라는 것이 미서 자신의 내면에 깊이 새겨져 있는 욕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미서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무언가, 살아오면서 다듬어진 무언가, 혹은 만들어온 무언가.
결국 미서는 ‘미사2’가 자신의 비린내를 매 순간 주사위로 대신 결정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새로운 깨달음을 바탕으로, 미서는 다시 한번 고민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미서의 사명은 '온 세상에 생명을 가득히'였다.
그리고 미서에게 정원은 곧 생명이었기 때문에 행복하게 일을 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비린내가 제거된 정원은 정원이 아니었다.
자신을 도왔다고 생각했던 ‘미사'와 ‘미사2’의 작업은 되려 자신을 방해해왔던 것이다.
미서는 이제까지 벌어진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미서는 새로운 사업계획을 세웠다. 이미 만들어진 정원들과 새로 만들 정원들을 위한 계획이었다.
우선 미서는 기존의 ‘미사' 및 ‘미사2’가 만든 정원을 업그레이드하는 서비스를 준비했다.
헐값에 기존의 정원들을 자신이 직접 보수해주는 상품이었다.
미서에게는 마진이 거의 없는 상품이었지만, 자신의 사명을 위해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생명이 빠진 정원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다음으로는, '미사3’ 서비스를 준비했다.
대외적으로는 새로운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표방한 ‘미사3’는 사실 미서와 '미사2’의 협력으로 정원을 만드는 일이었다.
의뢰인이 '미사2’에 과업을 의뢰하면, 미서가 ‘미사2’의 안을 직접 보완하여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미서는 이제 최소한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신의 비린내를 ‘미사2’에 아주 경제적으로 녹여낼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 것이다.
'미사3’ 서비스 출시를 앞둔 어느 날, 미서는 자신이 심하게 떨리는 것을 경험했다.
“아, 이게 별이 된다는 것이구나.” 미서는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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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경팔이님의 댓글
경팔이 아이피 (218.♡.110.45) 작성일 Date
제 취향의 결말이라서 좋습니다.
인공지능이 예술가의 경지에 도달하여 인간을 위협하는 식상한 디스토피아가 아닌, 인간과 협력하여 더 나은 결과를 창출하는 방향!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고유한 감정과 욕망을 대체하는 게 아닌, 이를 보완하고 증강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