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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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묻는다.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때때로 어떤 이는 그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시사하는 바가 얼마나 큰지 눈에 힘을 준다. 나는 그럴 때마다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사건이 이 세상에서 등장하거나 사라지게 만드는 힘은 본질에 있으니까.
본질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모호하다. 누구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하이데거의 존재를, 후설의 직관을, 사르트르의 실존, 최진석의 기본을 떠올릴 것이다.
예를 들어, 건설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해 누군가가 목숨을 잃었다면, 그 본질은 위험한 현장에서의 노동이다. 이 사회가 노동자들을 위험한 현장에 방치시켜 놓은 상태로 죽을 때까지 기다린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러니 건설사를 향해 분노의 돌팔매질을 해도 건설 현장에서의 사고는 다시 나타날 것이다.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의 본질은 부패와 교육의 부족, 농업 의존 경제이다. 그러니 눈물을 흘리며 아프리카 구호활동만 해서는 빈곤문제는 아프리카의 곁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것이다.
물론 본질을 짚어내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사건과 사고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본질을 파악하려면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떄로는 본질이 얼룩말로 보이다 때로는 얼룩소로 보인다. 그렇게 본질이 얼룩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며, 때로는 본질이 얼룩이 아닌 곰팡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건과 사고를 이루는 각 요소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다 보면, 낯설게 다가왔던 본질은 어느새 익숙한 존재가 되어 내 곁에 머물게 된다.
본질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어쩌면 본질은 마치 침대 위에서 잃어버린 스마트폰처럼, 지극히 보편적이고 타당해서 외면하고 있던 것일 지도 모른다. 외면하고 있던 것을 다시 들여다보고 기원을 찾아가는 것이야 말로 본질에 닿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물론 그 과정에서 잘못된 길로도 갈 수 있고 막다른 길에 다다를 수 있겠지만.
본질을 찾아 떠나는 과정은 생각보다 흥미롭다. 마치 인류학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비생산적이고 쓸데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마주하는 본질이야 말로 그 어떤 사건들보다 역사적이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잘한 사건을 가슴에 품을 것인가
커다란 역사를 관통하는 본질을 품을 것인가.
사건을 가슴에 품으면 설움과 한을 품고 살아가고
본질을 가슴에 품으면 설움과 한을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아 자고 싶은데 이삭 토스트가 차갑게 식어 있네?
이걸 먹고 자야하나?
그런데 자고 일어났을 때
이삭토스트 상해잇으명 어떡하지?
냉장고에 넣었다가 전자렌지에 돌려먹기는 싫은데?
이삭토스트 먹고 잘까? 아니면 그냥잘까?
고민하다가 심심해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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