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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 90년대생들의 비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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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변지선 (218.♡.110.45)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3회   작성일Date 24-02-05 05:54

    본문

    강의실의 공기는 어느 정치학자의 질문 하나로 짙은 기대감에 휩싸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인물은 누구인가요?" 정치학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뒤, 사람들은 차례대로 답했다. 영택이의 차례가 다가왔고 그의 대답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과거에 만난 전 여자친구들입니다. 그들은 제 삶의 참스승에 가깝습니다. 혈육보다 더 큰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었거든요. 이 경험은 혈연의 결속을 초월하는 인간관계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영택에게 전 여자친구들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준 선생님에 가까웠다. 그리고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인지 일깨워준 존재다.

    영택이가 핵티비스트로서의 길을 걷는 동안, 그는 불안과 의구심의 어둠 속에서 헤매었다. 하지만 과거에 만난 전 여자친구들은 영택이의 내면에 확신과 용기의 불길을 지펴주었다. 그의 활동은 끊임없는 외줄타기와 같았으며, 매 순간 그를 짓누르는 불확실성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전 여자친구들은 어두운 밤마다 길을 비쳐주는 등대와 같았다. 항상 영택에게 따스한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으며, 때로는 사이비 광신도를 연상케 할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주기도 하였다. 물론 영택이는 전 여자친구들에게 자신의 활동을 밝힌 적이 없지만...그의 전 여자친구들은 영택이에게 사랑이란 감정의 교환을 넘어서는, 삶의 근본적인 가치와 교훈을 전달해준 중요한 메신저에 가까웠다.

    영택이는 유년기 시절부터 청소년기 시절 동안 이성의 눈길이 닿지 않는 그늘의 연속이었다. 그의 마음속엔 연애라는 새싹조차 피어날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모태솔로라는 어둡고 축축한 이끼 같은 것들이 영원히 자리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세상은 항상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사라질 일이 없을 것 같았던 모태솔로라는 음습한 이끼는 SNS의 따가운 햇살을 받아 사라지고, 그 자리엔 연애의 새싹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영택이는 SNS에서 친구들의 게시물에 장난스러운 댓글을 달았는데, 이러한 댓글들이 예상치 못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영택이의 B급 유머 감각에 매료된 몇몇 여성은 그의 개인적인 생각과 세상에 대한 독특한 관점이 담긴 SNS 프로필로 이끌렸다.
    영택이의 SNS에 담겨져 있는 진솔한 글귀들은 여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들 중 몇몇은 영택이에게 쪽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인기에 휩싸인 영택은 자신도 모르게 낯선 이성과 소통의 바다에 풍덩 빠져들었다. 한때 그는 동시에 12명의 여성과 대화를 이어가며, 그 열기에 압도당했다. 각기 다른 이야기의 물결 속에서, 영택은 때때로 대화의 주인공을 혼동하여 잘못된 답장을 보내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에만 동일한 메시지를 보내기로 결정한 것. "저녁 먹었어요? 저는 오늘 제육볶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책을 보려고요." 그의 메시지는 단순했지만,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관심을 보이려는 그의 노력이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택은 모두를 만족시킬 시간과 돈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역시 카사노바를 하려면 돈이 많아야 하는구나.
    결국, 그는 인내심을 갖고 영택이와 대화를 끝까지 이어나가려는 한 사람을 찾게 되었다. 그녀는 영택이의 답장을 기다리며, 그와의 소통을 소중히 여겼다. 그녀와의 만남은 영택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렸고, 그의 첫 연애가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영택에게 소통의 진정한 가치와 인간관계에서의 진실한 연결을 깨닫게 해주었다.

    영택이의 전 여자친구A는 홍익대학교 미대생이었다. 영택이는 그녀가 홍대 미대생이라는 대중적 이미지를 그리며, 길거리에 있는 나무 조차도 세련된 느낌으로 그려줄 것 같은 환상을 안겨주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그림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도예유리과 학생이었다. 영택이의 환상과 거리가 있었으나, 미학과 예술에 대한 그녀의 이해는 깊었다. 그녀는 영택이의 예술에 대한 호기심을 친절하고 깊이 있는 대답으로 풀어주었다. 그녀의 이해와 애정은 단순히 예술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영택이의 존재 자체를 그녀는 특별한 예술작품처럼 다뤄주었기 때문이다.
    영택이가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메모지에 대충 슥슥 그린 그림도 그녀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건물의 외벽, 사람의 신체 부위를 단 하나의 선으로 이어놓은 성의 없는 낙서는 그녀에게는 예술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졌다. 그녀는 영택이의 선에서 힘이 느껴진다며, 자코메티의 작품을 연상시킨다고 칭찬했다. 그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영택이의 낙서를 버리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 자신의 방 벽에 붙여 놓을 정도로 그녀는 영택이에게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영택이의 어머니는 예술계 사람들 사이에 독특한 성향이 많다고 언급하며 말을 아꼈다. 어쩌면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영택이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가 가진 잠재력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택이의 어머니보다도 영택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 것은 아닐까. 그녀는 영택이의 존재 자체를 예술로 여기며, 그의 모든 행위에서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아냈다. 이러한 교류는 영택이에게도 새로운 자아 인식과 예술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선사했을지도 모른다.
    영택이의 삶은 핵티비스트로서의 열정적인 활동으로 가득 찼으며, 이는 그의 일상에서 많은 것을 희생하게 만들었다. 시간과 돈의 부족은 그로 하여금 인간관계, 특히 연애에 대해 망설이게 했다. 그러나 그의 여정에서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존재가 있었다. 영택이가 그녀에게 자신의 불안과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그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며 귀 기울여주며 용기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성격은 온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화장실을 새치기 한 사람으로 인해 분노하여, 카페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칠 정도로 일상의 작은 불공평에도 강렬하게 반응하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영택이의 내면의 불안과 직면한 불확실한 상황들 앞에서는 다정하고 포용력 있는 태도로 일관했다. 도자기 클래스를 진행하며 청소년들과의 마찰을 겪었던 그녀의 이야기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만큼은 까칠지만 영택이게 만큼은 자신의 자식처럼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영택의 또 다른 전 여자친구 B는 한의대를 다니며 폭넓은 지식을 자랑했다. 그녀의 지식은 영택이의 핵티비스트 활동에 대한 깊은 성찰과 토론의 장을 마련해 주었다. 그들의 대화는 IT 기업의 과도한 개인정보 요구, 사이비 종교의 자유, 미성년자 성관계의 법적 규제 같은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었다. 이러한 토론은 두 사람의 의견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더욱 열띤 분위기를 형성했다.
    영택이와 그녀 사이의 토론은 때때로 그녀의 분노가 느껴질 정도로 격렬했지만, 영택이는 이러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즐겼다. 그녀 또한 영택이의 필터 없는 표현에 불쾌해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내면에서는 그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는 그녀가 영택이의 의견에 반대하더라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영택이의 생각과 비슷한 맥락의 책을 읽었다고 말하며, 그의 생각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려는 모습에서 드러났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사랑의 섬세함과 이해심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계기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영택이는 당시 그녀의 섬세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그녀의 배려와 세심함이 마치 환자를 대하는 연습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이 조금 느린편이었다. 그래서 당시 그녀의 지도 교수님에게 말의 속도가 느리면 환자에게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다. 그녀는 속도 있는 대화법을 영택이와 대화하면서 연습했던 적이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영택이는 그녀가 보여주었던 애정을 환자 대하는 연습으로 잘못 받아들인 것이다. 
    그녀는 영택이가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 힘들다는 표현을 자주 했다. 그녀는 자신의 일상과 생각, 감정을 영택이와 공유하고자 노력했지만, 영택이가 연락을 자주 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녀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메시지를 남기며 자신의 하루와 감정을 전달하려 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다양하고 개인적인 경험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이는 그녀가 영택이와의 관계에서 소통과 이해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아저씨'의 아역배우와 같은 동네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키우는 고양이를 씻기려고 하는데, 알몸을 보여주기 부끄러워 팬티와 브라만 입고 한다는 이야기, 자신의 과에 자기보다 잘생긴 남자애가 없다는 이야기, 스피닝 선생님이 내 곁에 항상 다가와 땀을 닦아줄 정도로 자신을 특별히 애정해주시는 것 같다는 이야기, 한의대에 다니고 있음에도 여자 아이라는 이유로 자기를 무시한다는 어머니의 이야기, 개인 병원을 차려서 아버지보다 더 부자가 될 거라는 이야기 등 그녀의 일상과 평소 생각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영택이를 따뜻하게 보듬아준 것처럼 부드러운 반응과 공감을 기대했을 지도 모른다. 

    영택이는 전 여자친구들에게 자신의 활동을 밝힌 적은 없었다. 밝힐 이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사회적 이슈에 대한 그들의 대화는 마치 깊은 철학적 담론을 펼치는 것처럼, 영택이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영택이가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종종 그녀들에게 사회 문제를 다루는 척 털어놓았고, 그녀들은 재미없는 영택이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공감해주었다. 그녀들의 이해와 지지는 영택이에게 불안을 넘어서는 힘을 주었다. 그녀 덕분에, 영택이는 자신의 활동에 대한 확신을 갖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교류는 영택이에게 단순한 연애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불확실함을 지우고 신념과 행동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믿음을 쌓아나갔다. 그녀들은 영택이의 삶에 있어서 단순한 파트너가 아니었다. 미래에도 영택이가 자기 자신을 지지하고 지킬 수 있는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영택인느 내성적인 성격이다. 하지만 사이버 세계에서는 핵티비스트로 활동하며 자신감과 대담함이 넘치는 선전포고와 성명문을 자유롭게 내보였다. 어쩌면 전 여자친구들은 내성적이고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영택이에게 확신과 용기를 키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전 여자친구들이 영택이와 헤어지기 전에 공통적으로 남긴 "내 주위에 너처럼 말하는 사람이 없어."라는 말은 부모님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는 가벼운 칭찬을 넘어서, 그의 독특한 관점과 표현 방식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도록 이끌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지지와 격려는 영택이가 핵티비스트 집단에서 더 큰 자신감을 가지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의 전 여자친구들이 지나가는 영택이의  말을 소중히 여기며 메모지에 기록하며 보여주었던 모습은 영택이는 자신의 신념을 공식적으로 성명문에 담아 낼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택이의 확신과 용기는 높아졌으나, 그로 인해 때때로 인간관계에서 소홀해지는 모순된 결과를 초래했다.
    영택이의 핵티비스트 활동에 대한 열정은 그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었다.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소스코드의 취약점을 찾아내는 것은 그의 습관이 되었고, 이 빈틈을 바탕으로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자유롭게 훔치며 정보를 습득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습관은 그의 대인 관계와 사회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러한 습관 덕분에 전 여자친구들에게 영택이는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특별한 사람으로 비쳐졌을 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전 여자친구들에게 인간 관계와 사회적 상황에서도 마치 소스코드의 취약점을 살피듯 모순을 지적하며 주의를 기울이라고 당부했다. 이는 영택이가 사랑하는 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의 방식은 어떤 이들에게는 과도하게 보호적이거나 제한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전 여자친구들에게 영택이는 의지할 수 있는, 조언과 보호를 제공하는 중요한 존재처럼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처럼 말하는 사람은 내 주위에 없어." 라고 공통적으로 말하며 헤어지고 싶지 않음을 표현한 게 아니었을까. 그의 전 여자친구들은 영택이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가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표현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영택이는 핵티비스트 활동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쏟느라, 인간 관계, 특히 연애 관계에서의 균형이 무너졌다. 영택이의 전 여자친구들은 그의 삶에 있어서 물질적, 정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의 이야기와 꿈에 귀를 기울여주는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들이었다. 이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영택이는 당시 자신에게 베푼 이들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 핵티비스트 활동이 모든 것을 앞섰고, 이는 그의 전 여자친구들을 단지 자신의 활동에 용기와 확신을 불어넣어주는 뗄감으로만 여길 뿐이었다. 이들의 지원은 영택이가 자신의 신념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정당성과 용기를 제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영택이는 이 관계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다.
    영택이가 만난 전 여자친구는 열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간 관계의 소중함과 균형의 중요성을 되새겨 보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진정한 열정은 단지 개인적인 성취를 넘어서, 내 삶에 참여하고 지지해주는 이들에 대한 감사와 인정에서도 발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영택이가 뒤늦게나마 그의 전 여자친구들이 자신의 삶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을 깨닫고, 그들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영택이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 존재는 전 여자친구 외에 한 명이 더 있다. 현 포커 플레이어이자,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임요환이다. 임요환은 테란의 황제라 불리며, 그의 게임 플레이는 고도의 전략과 뛰어난 변칙적인 실행력의 결합이었다. 축구에서 리오넬 메시, 네이마르, 호나우지뉴가 위험을 무릅쓰고 보여준 아크로바틱한 플레이처럼 임요환 역시 게임 내에서 변칙적이면서도 스타일리쉬한 플레이로 많은 팬들을 매혹시켰다.
    그의 플레이는 도박처럼 보일 정도로 틀을 깨는 과감함을 선보였지만, 그 배후에는 엄청난 양의 연습과 준비가 있었다는 점에서 영택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임요환의 경기 접근 방식은 영택이에게 정당성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는 임요환의 경기처럼, 자신의 활동에 대한 정당성을 확립하고, 필요한 준비와 연습을 거치면 도박적인 무모한 일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영택이가 존경하는 노엄 촘스키의 말과 임요환의 플레이에서 얻은 교훈은 그의 핵티비스트 활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촘스키의 인용, "모든 선택은 도박이다...하지만 무분별한 폭력, 행동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 도박에도 깊은 사유와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는 영택이가 자신의 활동을 신중하게 접근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철학적 사유는 임요환의 게임 전략과 플레이에서도 반영된다. 임요환은 도박에 가까운 변칙적인 플레이를 통해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의 모든 선택은 무지와 만용이 아닌, 이성을 날카롭게 세공하여 세워놓은 전략과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연습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임요환의 명경기를 꼽자면, 2004 EVER 스타리그 결승전 4경기 그리고 2005 So1 스타리그 4강전이다.특히 EVER 스타리그 결승전 4경기는 약 10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지지만 그 감동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2005 So1 스타리그 4강전은 5판 3선 승제로 3번을 먼저 승리하는 사람이 결승에 진출한다. 임요환은 패패, 승승승을 기록하며 극적으로 결승에 진출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임요환 다운 경기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영택이가 임요환을 가장 아름다게 기억하는 두 대회에서는 모두 준우승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승자만 기억한다고 하지만, 우승하지 못했더라도, 임요환의 아름다운 경기 과정과 그가 보여준 끈기와 용기는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라고 영택이는 생각했다. 이는 영택이가 핵티비스트 활동을 할 때, 결과에만 집착하기보다는 정당하고 의미 있는 과정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만든 이유이다.


    일단 영택이는 여자친구와 만나며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영택이가 보여주었던 그동안의 행보도 큰 관심을 받았으나, 특히 중동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공격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영택이는 새로운 전략을 세울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저널리스트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택이는 여자친구와의 관계보다는 자신의 활동과 관련된 정보와 지식을 습득을 우선시해야만 했다. 그의 삶에서 여자친구들과의 교류는 뒷전이 되었으며, 그는 더 많은 시간을 사설, 칼럼, 책 읽기에 투자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야만 했다. 답변이 우스꽝스러워지는 순간 모든 활동이 우스워질 것이란 불안함이 컸기 때문이다. 사실 영택이는 글을 읽은 게 아니다. 수 많은 글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 표현, 문장, 등을 찾으려고 애쓴 것이다. 영택이는 여자친구보다 또 다른 핵티비스트 비밀채팅방을 통한 국제적 협력은 그의 답변을 준비하는 데 우선시하였으며,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멤버들과의 협업은 언론에 대한 응답을 다국어로 번역하고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줬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영택이와 그의 팀은 저널리스트들로부터 우호적인 반응과 관심을 받았다. 영택이의 말은 독점기사로서의 가치를 지녔으며, 이는 언론사와 저널리스트들로부터의 열렬한 환호와 따뜻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영택이의 이야기는 그가 언론의 관심 속에서 활동하는 것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론의 주목은 그의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동시에 더 큰 책임과 공공의 비판에 노출되는 위험도 수반한다. 영택이는 자신의 행동과 발언이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해석될지에 대한 무게를 짊어지며, 그의 활동이 가지는 복잡한 의미와 영향력을 심사숙고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영택이는 자신의 활동을 더 멋지게, 그럴듯하게 포장하려고 했으며, 자신의 활동이 단순한 행동주의를 넘어서 깊은 사유와 성찰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려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영택이의 핵티비스트 집단은 사이버 공간의 자유로움과 익명성이라는 양날의 검 아래에서 성장했다. 그의 집단은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들였으며, 각자의 독특한 이유로 활동에 참여했다. 몇몇은 공통된 철학으로 인한 동지애를 느꼈고, 다른 이들은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참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은 조직의 일체감과 방향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 큰 도전이 되었다.
    영택이는 집단을 아름답게 가꾸고자 했으나,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 아래에서는 그의 노력이 쉽게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익명성은 자유로운 행동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무책임한 행동을 조장하는 경향도 있었다. 이로 인해 영택이의 집단은 초기의 이상과 다르게, 현실 세계에서 외면받는 사람들에게 임시적인 위안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영택이가 깨달은 것은 소셜 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핵티비스트 집단 또한 문화와 흐름을 영택이 혼자 통제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그는 특정 리더 없이도 공통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활동하는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인식했다. 영택이가 조용히 떠난 이유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단 행동의 본질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집단은 사회적 현상처럼 나타나 사라질 수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코갤, 일베, 워마드, 보배드림과 같은 현상을 연상시킨다.




    아래는 영택이와  영국의 중대조직범죄청(Serious Organised Crime Agency) 소속의 화이트 해커 출신이자, 현 칼럼니스트 겸 작가라고 소개한 자와 과거에 했던 인터뷰 중 생략한 내용의 일부다.

    Q. 당신은 어쩌다 노엄 촘스키를 사랑하게 된 것인가?
    A. 주입식 교육 덕분이다. 난 어렸을 때, 책은 모두 좋은 것이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나는 책 중에서도 가장 좋아보이는 책들만 골라서 읽으려고 했는데, 그러다 노엄 촘스키까지 닿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단순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책을 읽은 건 아니다. 사실 책을 왜 읽는지에 대한 뚜렷한 동기가 없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동기가 없는 사람들은 베스트 셀러에 이리저리 휘둘리다, 머릿 속에 남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이처럼 동기가 없는 상태에서 책을 읽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 동기는 단순했다. 더 좋은 사람,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한 동기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노엄 촘스키의 말이 나를 더 좋은 사람, 멋진 사람으로 이끌어줄 것이란 묘한 확신이 들었다. 노엄 촘스키의 말 중에 나를 더 멋지고 좋은 사람으로 이끌어 줄 문장들을 가슴 속에 새겨놓다보니 사랑하게 되었다.

    Q. 많은 해커들은 무분별한 행동으로 이어졌지만 비밀 채팅방에서의 당신은 달랐다. 그 원천은 무엇인가?
    A. 산책이다. 나는 산책을 하면서 주위 풍경을 들여다 보는 게 아닌, 나 자신을 들여다 보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산책은 사유하는 인내심을 키워주는 운동에 가까웠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위에는 사유하는 인내심을 잃게 만드는 것들이 참 많다. 누군가는 만화, 영화, SNS 등을 꼽을 수 있지만 독서 또한 다르지 않다. 독서 후에 사유한다면 좋은 방향이겠지만, 누군가는 그 어떠한 사유도 없이 독서만 하기 바쁘다. 이건 오히려 앵무새의 길을 가는 꼴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사유가 무분별한 행동이 아닌,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과도한 사유가 나를 명분에만 집착하게 만드는 소인배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Q. 매우 사적인 질문이다. 내가 당신과 함께 활동했으면 어땠을 것 같나?
    A. 활동에는 큰 영향을 끼치진 못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더 긴 관계를 이어나갔을 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핵티비스트 집단을 끝낸 뒤에 국제 문제를 다루는 유튜버로 함께 활동했을 것 같다. 사실 핵티비스트 집단 자체의 수명은 길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는 휘발성이 높은 사회적 현상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요즘 과학자를 꿈꾸는 사람들 중에 아리스토텔레스나 라부아지에의 책을 읽으며 꿈꾸는 사람이 있나? 50년 전의 과학 이론 중에 지금까지 유지되는 게 얼마나 있나? 인터넷 세계는 과학 세계보다 휘발성이 더 높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리는 서로 잘 맞는 것 같지만 핵티비스트 활동이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Q. 나와 더 긴 관계를 이어나갈 것이라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A.  끈기다. 나와 함께 했었던 몇몇 멤버들은 공격할 대상을 찾는 데에만 급급했을 뿐 끈기, 인내심이 부족했다. 일단 공격하기 위해서는 공격하기 위한 당위가 선명해야 한다. 그 당위를 선명하게 밝히려면 이를 합리화 할 수 있는 지식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자료들을 모으기 위한 과정도 밟아야 한다. 사실과 관련된 자료를 추적해야 하고,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패턴 또는 규칙성을  발견해야 한다. 그래야 공격한 것을 그나마 합리화 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인내심과 끈기가 갖춰져야 할 수 있다. 하지만 몇몇 멤버들은 사사로운 욕심이나 명예욕이 개입되는 바람에 인내심과 끈기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론 실수하기도 했으며, 나 혼자 고생한 게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당신은 인내심과 끈기가 상당히 강한 것 같다. 난 이 인내심과 끈기를 지닌 사람을 진실된 사람이라 생각한다. 다른 면으로는 당신을 존경한다.

     Q. 끈기와 인내심을 갖고 있어도 사실에 닿지 못할 수도 있지 않나?
    A. 맞다. 사실을 이루고 있는 요소는 셀 수 없이 많지 않나? 이 요소들을 모두 수집하여 패턴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마치 사막을 말하기 위해 사막에 있는 모래 알 하나 하나의  무게와 화학적 성분, 온도의 변화 폭을 검사하는 것과 같다. 이 모든 것을 모두 아우르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과거에 '도덕적 감각'이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다.

    Q. 결국 사실에 닿지 못하는 것 아닌가?
    A. 맞다. 그런데 사회에 A라는 현상과 함께 B가 나타나고 있고, B가 없을 때 A라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B가 A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물론 이게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부분은 충분히 논쟁을 야기할 수 있는 사안이다. 나는 논쟁의 시작이 사회 진보의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논쟁이 심화되어 사회가 문제가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에야 진정한 탐구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실에 닿지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논쟁을 촉발시킬 수 있다면, 사실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한 게 아닌가? 난 그것 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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