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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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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한상도 (218.♡.116.5)
    댓글 댓글 1건   조회Hit 4,301회   작성일Date 24-07-11 08:22

    본문

    조선시대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그곳에는 선비 인수와 소작농 호영이가 살고 있었다.


    인수는 글을 많이 읽은 선비로, 유교 경전들을 평균 만번을 읽은 다독가로 소문이 자자했다.

    인수는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전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난을 치는 일에도 빼어난, 희대의 선비였다.

    인수는 동네에서 단연 가장 똑똑한 인물이었고, 인수의 장원급제를 의심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호영이는 땅을 오랫동안 부쳐먹어왔던 소작농으로, 남들이 인정할만한 별다른 재주는 없었다.

    농사를 짓고 난 곡식으로 생계를 주로 유지해왔고, 가끔 짚신을 만들어 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가끔 ‘호영이의 짚신은 품질이 좋다' 거나 ‘호영이는 수완이 좋다'는 이야기가 간간히 들려오기는 했으나, 그 외 특별한 인망을 얻는 편은 아니었다.


    이토록 다른 둘이지만, 그들은 끈끈한 사이였다.

    어릴적부터 같이 뛰어놀며 자랐기에 둘 사이에는 신분을 넘지 않는 막역함이 존재했다.

    서로 말을 섞을 땐 하대와 존대 및 호칭은 철저히 지켰으나,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기묘한 관계였다.

    어느 날, 길에서 마주친 둘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호영, 잘 지냈는가? 농사는 잘 되고?”

    “아 그러믄요. 이번에도 곡식이 남아 곳간에서 썩을까봐 걱정입니다. 어르신도 잘 지내셨는지요?”

    “나도 잘 지냈네. 곡식이 남아 썩을 것 같아 걱정이면 우리 집 창고에 좀 쌓아주게.”

    “어르신, 그건 안될 말씀입니다요. 썩을 곡식을 쌓아드릴 수는 없구만유.”


    인사가 끝난 뒤, 인수가 화제를 전환했다.


    "요즘 산에 호랑이가 나타난다는데, 사실인가?”

    “예 사실입니다. 나무를 하러 갈 때마다 호랭이에게 잡혀먹힌 자들의 사체도 보고, 호랭이의 울음소리도 간간히 듣습니다요.”

    “관군은 무얼 하고있나?”

    “관군은 호랭이를 잡는 척만 하지, 잡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요. 누구나 자기 목숨이 젤루 소중한것이니 말이지유.”


    인수는 가슴이 답답했다. 이어서 말했다.


    “이러다 전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겠군. 나는 서둘러 과거를 보고, 급제하여 식솔들을 데리고 한양으로 떠나야겠네. 자네는 계획이 있는가?”

    “그것 참으로 좋은 계획이네요. 어르신은 한 방에 급제하실 분이니 잘 될겁니다. 전 호랭이를 잡을 계획이어요.”

    “호랑이를 잡는다고? 자네가? 할 수 있는가? 해봤는가? 아니, 도대체 그런 짓을 왜 하는겐가?”

    “호랑이를 잡아본 적은 없지만, 해보면 알겄지유. 고라니는 숱허게 잡아봤응게 사냥이 뭔지는 알고 있거든요. 아니 어르신, 제가 하는 일 중에 먹고사는 것 외에 뭐가 있간디요?”


    인수는 어리벙벙해서 다시 물었다.


    “아니 먹고사는 법은 참으로 많을 것이네. 자네도 식솔들 이끌고 호랑이가 없는 곳으로 떠나면 되지 않는가."

    “이 호랭이가 새끼를 쳐불면 그곳도 안전한 곳이 못되어라. 글고 그렇게 살아서는 평생 쫓기기 밖에 더할라고요. 저는 이 호랭이가 하늘에서 주신 기회로 보여요.”

    “아니, 목숨이 왔다갔다하는데 이게 어떻게 기회가 된단 말인가.”

    “지는 좀만 더 버텨서, 동네 사람들 절반이 이곳을 떠날 때를 기다리고 있어유. 토지문서가 문풍지값이 될 때가 되면, 그걸 전부 사들인 후 호랭이를 잡으러 갈거여유.”


    인수는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이내 물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이용하겠다는 말인가? 자네는 따뜻하고 바른 사람이 아니었나? 내가 사람을 잘 못 본겐가?”

    “아마 저라는 사람을 잘못보셨을지도 모르쥬. 하지만 저는 살고자 할 뿐이어라. 어차피 호랭이를 잡는 일이 하루만에 되는 일도 아니지 않겠어요? 저는 어르신처럼 배움이 깊지를 못해서 따뜻하고 바른 것이 뭔지는 전혀 모르구유. 전 그냥 땅 몇마지기와 호랑이 거죽이 필요한거쥬.”


    인수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를 떴다.


    호영이야 어찌되었든, 인수도 살아야했다. 그는 지체없이 과거시험을 보러 떠났다.

    워낙 내공이 두터운 선비였던 인수는, 단박에 장원급제를 했고 계획대로 식솔들을 한양으로 불러들였다.

    금세 능력을 인정받고 국가에서도 중히 쓰이던 인수였지만, 형용할 수 없는 열등감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죽을때까지 호영이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던 것이다.


    호영이와의 대화 이후, 인수의 마음에는 하나의 질문이 들어왔다.

    “호영이에게 있고 나에게 없는 그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인수는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나 공자도, 맹자도, 노자도, 장자도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인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활자 너머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신은 탁상공론가일 뿐이었다.

    세상을 이론에 비추어 분석할 줄만 알았고, 이론에 기반해서 해결할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는 평생 문자 속에 갇혀 죽고 싶지 않았다. 호영이가 가지고 있던 짐승의 내면을 갖고 싶었다.


    인수는 자신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겐 이론체계를 일거에 무너뜨리고,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야 하는 동물적인 활동이 필요했다.

    그는 자신이 뛰어들 전쟁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날부터 시대의 급소를 찾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인수는 매일 아침 물었다. “내 호랑이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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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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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만이님의 댓글

    경만이 아이피 (218.♡.110.45) 작성일 Date

    패권의 비밀 서평을 쓰고 이 이야기를 읽어서 그런지 더 재미있게 읽혀지네요.

    인간적으로 보면 호영이는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가로 대입하면 호영이는 패권국가의 특징을 갖고 있네요. 현실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접근방식으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니까요. 호랑이 문제를 이용해 땅투기하는 모습이  급변하는 국제 환경에서 기회를 포착하여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패권 국가에 가깝네요.

    인수는 이론과 학문 그리고 예술적인 면모를 보이는 반면에, 전통적 가치와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느라 변화와 혁신에 보수적인 국가처럼 다가오네요.
    다만 자기만의 호랑이를 찾고 있으니, 어떤 혁신을  하게 될지 궁금하네요. 크게 네 가지가 떠오르는데.
    1. 인수는 호영이처럼 땅투기와 함께 호랑이를 잡으러 떠난다.
    2. 관직 수행을 통해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이론과 실제를 접목해보면서 자기만의 지식을 구축한다.
    3. 자신의 지식을 사회적 가치 창출로 연결시키고자 서당을 따로 차린다.
    4. 산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는 시간을 갖는다.

    개인적으로 2,3번 엔딩이 가장 제 취향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