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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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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볕 (211.♡.47.80)
    댓글 댓글 1건   조회Hit 10,606회   작성일Date 20-07-28 23:08

    본문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이볕

    사회구조에서 보편적 행위에 속하는 복종과 굴욕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일상적 관례일 것이다. 이는 조선왕조 500년과 일제 강점기를 통하여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공존, 그리고 거기에 준하는 복종은 상 하 사이에 예의라고 배웠으며, 그 뿌리는 민족성 깊숙이 존재한다. 어른에게는 무조건 공손해야 하고, 어른에게 대들면 안되는 사회적 구조에서 보수와 진보적 가치관을 지닌 세력들은 늘 부딪히며 때로는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더욱이 안타까운 현상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 권력자에 대한 높임말, “님”자에 대한 추임새는 그 현상의 절정을 의미한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 신사참배 영향이 자신도 모르게 학습되어 자동적으로 권력자에게 자신의 복종과 굴욕이 당연시하는 사회를 만든 것인지 모른다. 제 5.6공화국의 국기에 대한 맹세도 위와 일맥상통하는 굴종의 대표적 예이다. 우리는 질서를 유지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돌발행동, 또는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빨갱이”라고 집단으로 매도, 폭력과 차별과 혐오는 민족의 이데올르기 전선에서 늘, 인민을 지배하는 선동으로 삼았다. 그것은 권력이 자신들의 힘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적 행위로 통치수단의 절대적 방법이었다. 하지만, 불편함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세력들은 늘 세상을 진일보 발전시켰으며, 그로 통한 인권신장과 평등은 김구 선생이 원했던, 높은 민족문화 창달의 매개체로 위상을 발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게 돌발행동과 옳은 소리를 하는 이들을 우리는 “돈키호테”라고 불리었으며, 그들을 통하여 마음속의 울분과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내가 행하지 못하는 자유, 행동, 결사의 자유를 대리 만족하고 있다. 1985년 이두용 감독과 만능재주꾼 전영록 선생의“돌아이 시리즈”영화에 환호한 것은 다른 매개체를 통하여 자신의 내면에 갇혀있던 속박의 해방을 갈망했기 때문이고, 그 주인공 “석이”가 바로 돈키호테식 정의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변형되고 동화되어 사회구조의 모순을 해결하는 진보적 사상의 독보적 존재이기도 하다. 또한, 젊은이들에게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화두를 주는 불꽃이 된다. 각자의 꿈과 각자의 신념이 존재하겠지만, 어떻게 하면 자유와 진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냐의 물음도 함께 제시한다. 작가인 세르반테스의 삶이 일반적인 사람과 다르듯이, 자신이 겪은 질풍노도 철학이 고스란히 돈키호테라는 작품 속에 내재 되어 독자들에게 희노애락을 선사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세르반테스의 삶이 처절하고 아픈 것을 모르고, 나는 어릴 적 그의 작품 돈키호테는 몽상가와 정신질환자의 행태로 본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 철학이 있고, 권력자와 시대에 화두를 던지는 내용이라고는 아무도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 가까이 광주의 5.18을 대입시켜보면 우리는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명백백히 알 수 있다. 돈키호테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고 그저 우리네들의 삶 속에 사는 조금 다른 취향의 그 사람일 뿐, 광주의 5.18도 국가권력에 항거한 조금 다른 돈키호테 들이다. 그들의 삶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국가폭력이라는 명제 아래 각자의 의기와 진실을 이야기하려는 소시민들의 투쟁, 권력과 사회에 대항한 전라도의 돈키호테는 무서운 사람, 두려운 사람이 아니다. 국가폭력이 지역을 점령하고 사람을 학살하는 상황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파쇼의 행위이며, 평화와 인권을 사랑하는 민족성에 근거하여 모순적 (말살에 쇠살) 임을 직시하여 투쟁한 것이다. 국가는 사라져도 지역의 의기와 문화, 언어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1980년 5.18의 돈키호테는 혁명적 투쟁을 벌인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소설 속에 있지만, 우리의 4.19, 5.18, 제주 4.3에 항거한 돈키호테는 우리의 마음속과 역사 속에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젊은 청춘들이 느끼는 이 시대의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을 돈키호테를 일독하면서 사고의 고찰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어떻게 살 것 인가에 대한 발걸음, 동동거림은 로시난테의 발걸음과 돈키호테식 유머와 행동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양심에 따라 행동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양심적이지 않는 행동으로 쓰라린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세르반테스가 나에게 준 동질성은 독서, 책을 통해서 얻어지는 가치와 신세계, 그곳에서 또 다른 나만의 돈키호테를 만나게 되었다. 반갑다, 돈키호테. 그 혁명의 도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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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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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석님의 댓글

    최진석 아이피 (223.♡.155.77) 작성일 Date

    돈키호테를 혁명의 도전으로 읽고 보내신 독후감을 잘 읽었습니다. 편력기사 돈키호테도 자기가 정한 곳에 머무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모험을 했듯이  혁명도 머무르지 않고 편력하여 "지속 혁명"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책 읽고 건너가기"에 적극적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