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로그인
  • 참여
  • 자유게시판
  • 참여

    자유게시판

    한반도의 눈물, 이제는 건너가자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재익 (59.♡.147.76)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182회   작성일Date 22-01-07 17:30

    본문

    한반도의 눈물
    -이제는 건너가자-
    김재익
     
    오늘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두 편의 칼럼이 있어 소개합니다. 하나는 최진석 교수님의 <지적호전성>(《중앙일보》, 2022.01.07)이라는 글이고, 다른 하나는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의 <‘청일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동아일보》, 2022.01.07.)는 칼럼입니다.
     
    일찍이 최진석 교수님은 개인의 주체적이고 독립적 사고를 통해서 사회와 국가 공동체가 주체적이고 독립적 지위를 가져야 한다고 피력해 왔습니다. 이를 전술국가에서 전략국가로,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도 말씀하셨죠. ‘힘 센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날 것의 언어로도 표현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힘은 통제력과 영향력이라는 의미로 최진석 교수님은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힘 센 존재의 출발은 종속적인 삶의 태도에 대한 철저한 자각과 자기반성으로부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적호전성>은 자신의 삶의 변화를 위해 더 적극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그래서 최 교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욕망에 따라 세상을 자기 뜻대로 디자인하려는 태도를 나는 지적 호전성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이르면, 자칫 선택의 문제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미 지금으로도 충분한데 더 잘 하기 위한 가능의 문제로도 볼 수 있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철저히 생존에 관한 문제이었습니다. ‘할 수 있냐, 아니냐가 아니라 해야만 하는그런 문제인 것이지요. 이런 측면에서 박훈 교수의 글은 너무나도 실증적인 우리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칼럼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894년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은 1637년 병자호란 후 무려 250여 년 만이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전쟁이 없는 것은 세계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그것은 팍스 시니카(Pax Sinica·청에 의한 평화)로 가능한 것이었다. 조선은 청에는 사대외교, 일본에는 교린외교라는 정교한 외교술로 태평천하를 구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 조선은 당시 유수한 국가 중 가장 비무장상태에 가까운 국가가 되었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의 전쟁도 우리 땅에서 치러진 아픈 전쟁의 역사이지만, 청일전쟁 전후로 치러진 이 땅에서의 전쟁은 한국전쟁까지 포함하여 지금까지도 서글픈 우리의 종속적이고 굴종적인 역사의 단면을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박훈 교수는 이 글의 제목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인 것이 아닐까 합니다.
     
    청일전쟁은 박 교수의 말처럼 조선이 참여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전쟁이 조선 땅에서 벌어진, 유례없는 전쟁이었다고 일갈합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수많은 사상자들을 떠올리지 않아도 청일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사람들이 쓰러져 갔을지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Q는 먼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굴종적이고 종속적인 삶의 태도는 다름 아닌 우리의 지난 과거였던 것을, 지금의 우리는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박 교수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청일전쟁으로 장구한 세월동안 유지되어 왔던 중국의 영향력은 사라졌다. 그 틈을 러시아와 일본이 치고 들어왔다. 그러나 중국세력은 6.25전쟁 참전으로 불과 50여 년만에 한반도에 복귀했다. 남쪽에는 일본 대신 미국이 들어왔다. 최근 격화되는 미중 대립은 천하의 요충지한반도를 다시 위협하고 있다. 가공할만한 역사의 반복이다.”
     
    이러한 한반도의 눈물은 남의 눈물이 아닙니다. 바로 나의 눈물이며, 우리의 눈물인 것을 자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중국이냐 미국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것을 질문하는 어느 기자의 시선보다는 차라리 어느 대기업 총수가 사회관계망서비스 (SNS)에서 '멸공'을 말하는 시선이 훨씬 더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최진석 교수님의 더 자유롭고, 더 주체적이며, 더 독립적인 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흘린 눈물을 거두고, 건너가기를 위해 온몸을 던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새 말 새 몸짓으로 함께 건너갑시다.

     (아래 최진석 교수님의 칼럼과 박훈 교수의 칼럼 링크를 붙입니다. 참조하세요. )
    추천5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