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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한 세상속에서 나의 마음을 다스리는 최고의 방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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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정 (59.♡.132.190)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5,324회   작성일Date 20-07-21 21:08

    본문

    반야심경에 대한 추가 설명

     

    반야(바라밀다)심경첫 두줄에 모든 내용의 기초가 설명되어 있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일체의 고통과 괴로움을 헤아리기 위함이다.

    (헤아린다면 자연히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지게 된다)

    누가?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

    어떻게? 깨달음 찾기를 깊이 수행할 때에 나를 바라봄을 통해서.

    방법은? 명상을 통해서 나를 비추어 바라보되, 바라보는 시각/방법론(Frame)을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으로 확장하여 5가지((), (), (), (), ())로 구분하고, 이를 모두 비움()의 상태에서 헤아림이다. (여기서 헤아림은 계산하고, 분별함의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음)

    비움()이 아닌 다른 방법론을 택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거꾸로 채움(완성)부터 만들어 내려간다면 완성의 기준점(절대 완성이란 있을 수 있을까?)을 찾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중간 점을 찾고 거기에서 (+)방향과 (-)방향을 논하는 방법 또한 기준점을 잡는 것이 제 각각이다. 그래서 0(비움)에서 출발이 효율적이다.

    현재에도 자연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에 대한 인식은 비움(0)에서 출발함은 다르지 않다. 0에서 존재함으로 인식하고, 그 존재는 다시 0의 방향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0과 존재(1,2,3,….) 무수히 많은 점들 사이에 수많은 불연속적인 소수점들 또한 존재한다. 그것을 모두 이해하고 헤아리는 것은 자연계, 인간, 사회의 복잡성으로 인해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워 있는 상태로 회귀하는 방법론을 통해 깨달음을 구하고자 함이다.

    명상 속에서 모든 것(5가지)을 비워() 놓고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나를 둘러싼 일체의 법(/)을 헤아릴 수 있다면 깨달음에 다다른 상태이다.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해보라 눈 앞에 보이던 모든 색(, 물질계)는 공()이 된다. 그렇다고 색(, 물질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워 있는 공()인 상태에서도 색()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논리는 나와 물질계의 관계를 공()으로 비우고 시작하라는 방법론을 제시함이다. 물질계 뿐 만 아니라 내가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모든 것(그로 인해서 발생되는 희, , , 락 등의 감정의 단계 포함) 또한 공(), , 비움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나의 모든 생각(좋은 생각, 나쁜 생각, 발전적 생각, 후진 생각, 악한 생각, 선한 생각, 이성, 감성의 영역 모두 포함)또한 공()으로부터 출발하여 헤아림을 의미한다. 행동과 앎(지식, 기록)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 )이라는 글자는 언어와 기호(문자), 기록에 의해 세워진 모든 지식의 구조물이 포함될 수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수많은 지식 및 얕은 지식과 잡다한 지식의 혼재와 혼란속에 묻혀서 헤어나지 못 하는 상황이 현실이며, 다반사다. 더 많이 머리속에 무언가를 채워 넣고, 복잡하게 만들어야 높아지고, 좋아진다는 착각 속에서 살기 쉽다. 수만의 글자와 수십만의 좋은 문구가 오히려 괴로움을 가중시키는 꼴이다.

    이에 반해 300 글자도 안되는 반야심경의 방법론(Framework)은 이 시대 최고의 선물이다. 다만, 우리가 얼마나 이해하고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명상을 할 때에 색즉시공 공즉시색만 살필 것이 아니라, 필히, 수상행식에 대해서도 비움의 의미를 찾고 수행하여야 한다. 글자 그대로 읽는 것은 무의미 하다. 글자 또한 그동안 만들어온 식()에 불과함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글자 너머에 있는 구조와 접근 방법론을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초입에 서있는 현재, , 기술과 미래에 대한 탐욕으로 달궈진 지구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의해 공간 이동에 대한 제한, 다사 다망한 관계 맺음에 대한 제한의 시대를 맞아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한 도구(방법)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반야심경(명상)을 추천한다.

    노자 도덕경에서는 성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방법론)을 이야기하였다면, 반야심경은 깨달음을 얻고자 나를 바라보는 시각(방법론)에 대한 설명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사리자의 두번째 말씀, 제법공상(諸法空相)의 의미를 좀더 살펴보자. 인간이 만들어내는 규칙 및 법칙, 법식(다양한 형식) 등이 어우러질 때 복잡성이 증가한다. 5()이 만들어 내는 논리적인 구조물이 법()이다. 법의 글자 어원을 보면 물이 흐르고, 동물과 사람이 땅에서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어원이다. , 객체 간에 만들어지는 규칙, 규율이 법이다. 하지만 그 법()중에서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은 오류가 많다. 그래서 세상사에는 이런 법이 있을 수 있나? 싶다. 하지만 근원적인 자연의 법칙은 우리가 아직까지 정의하고, 정리하지 못했을 뿐 근원적인 법칙()은 존재한다. 그 근원적인 법()이 여기에서 설명하는 법이다.

    노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세상은 독립이불개(獨立以不改), 주행이불태(周行以不殆)라 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독립적이고, 변화한다. 자연을 이루는 법칙 또한 우리의 인식에 의해 지속 변화하고 수정된다. 하지만, 근원적인 본연의 법칙은 변하지 않으며 그 관계에 있어, 여기에서는 공상(空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른 말로 서로 어우러짐이 없이 독립적이다. 관계는 5온과 더불어 발생한다. 제법()간의 관계는 충돌이 없다. 근원적인 법()은 생겨나지도 소멸하지도, 오점이 있거나 깨끗하지도,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는다. 다만 인간의 생각, 인식 등이 부족하여 오해를 할 뿐이다. 이부분에 대한 이해를 색(, 물질계의 물체와 생명체)을 대입하여 생명을 낳고, 소멸함이 없다고 오해를 한다면 곤란하다.

    사리자의 첫번째 말씀과 두번째 말씀의 문구를 벗어나는 사항(구조적인 frame)은 없다. 나를 기준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간략하고 명확한 설명이다.

     무안계(無眼界) 무의식계(無意識界) 관련,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계를 버림으로써, 무의식계로 들어간다고 명상의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눈은 외부로부터 인식의 주요 통로(70% 이상)로 눈을 감는 행위 만으로도 뇌의 단기기억장소 비활성화에 따른 에너지 소모가 현저히 감소된다. , 외부로부터 잡음의 차단이다. 아울러, 나머지 감각기관에 대해서도 초월하고, 모든 감각기관에서 오는 외부의 의식적인 요소를 비활성화(최소화)하고, 내부에서 생성되는 일체의 법식(인간인 이상 오감에 의해 형상화된다)을 비활성화한다면 나의 잠재된 에너지를 근본적인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극진한 명상 수행을 통해 눈을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밝음으로 나를 비추어 볼 수 있다. 그 밝음(깨달음)이 극에 다다르면 살면서 발생하는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초월하고 열반에 이르게 된다.

     

    끝으로, 세상에서 소홀히 넘기기 쉬운 정신 영역의 탐구와 계발은 눈에 보이는 경제 활동 못지않게 소중하다는 법정스님의 말씀에 힘입어 이 글을 정리한다. 명상을 통해 만인 스스로 괴로움과 고통에서 헤어나고, 사람들 간평화를 주고받는 사회가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2020.6.20 청풍명원(淸風明園)에서 成大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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