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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돈키호테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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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서연정 (223.♡.222.111)
    댓글 댓글 1건   조회Hit 9,141회   작성일Date 20-08-01 01:04

    본문

    돈키호테를 읽으며, 생각했다.
    난 돈키호테를 만나본 적이 있는가?
    한명, 두명, 세명...
    손가락을 하나씩 꾹꾹 눌러가며
    만난 돈키호테를 세고 있는 나를 보며
    혼자 피식 웃었다.
    그럼 미친 사람을 많이 만났다는 건가?
    아님 나도 미친 사람이였다는 건가?

    그 중에 최고의 주인공은, 아빠다.
    2014년 갑자기 말기 암 진단을 받고
    두달만에 돌아가셨다.
    그 두달동안 있었던 아빠의 돈키호테같은
    행동들은 그 후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분이
    하루만에 제대로 걷기도 힘든 말기
    암환자가 되어버렸다.
    암세포를 죽이려던 강력한 시술이
    너무 건강했던 다른 모든 장기들에게
    전쟁 선포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장기들이 생존을 거부한 대반란을 시작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사건을
    가장 잊을 수 없다.
    유난히 길었던 추석 연휴가 있었고,
    블루문이 떠서 달이 참 밝았던 밤이였다.

    새벽 2시
    “아빠가 없어졌어! 아빠가 없어졌어!”
    엄마의 다급한 외침에 벌떡 일어났다.
    아빠는 살과 근육이 모두 빠져 몇 걸음 혼자
    걷지도 못하고, 문을 열어 혼자 계단 한발짝도
    걸을 수 없는데 3층에서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후다닥 옥상으로 올라가는 동생에게 말했다.
    “119 신고할까?”
    동생은 잠깐 있어보라며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동생은 말했다.
    “아빠가 안보여”
    다시 확인하겠다고 나가는 동생에게 말했다.
    “119 신고할까?”
    동생은 “있어 봐” 라고 말하고 다시 나갔다.
    그리고, “아빠 찾았어”라고 외치며 1층을 향해
    계단을 달려가는 발소리만 들렸다.

    누룽지 한 숟가락도 먹지 못했던 아빠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면도를 했다.
    그 날은 특별히 면도를 세번이나 하셨다.
    난 아빠의 장대한 계획을 꿈에도 모르고,
    “아빠, 깔끔하니까 면도 그만해도 되겠어”
    라며 아빠를 신기해하며 말했다.

    모든 의료적 치료를 거부한 아빠는,
    고통을 스스로 중단시킬 시도를 하셨다.
    난 아직도 그 과정을 상상할 수가 없다.
    계단 한 걸음도 걷기 힘든 사람이
    어떻게 1층까지 계단으로 걸어가,
    누구보다 단단하게 빨래줄로 매듭을 만들었는지,
    유난히 밝았던 블루문은 다 봤지만,
    나에게 아무말도 해주지 않았다.

    아빠는 돈키호테의 처참한 몰골처럼
    축 늘어진 채 아들의 등에 옆혀 올라왔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속옷을 몇 개 껴입었지만 이미 바지는
    축축해져 있었다.
    쇼파에 눕자 엄마는 서글픈 말들을 쏟으면서도
    아빠의 젖은 바지부터 처리하느라 바빴다.

    쇼파에 축 늘어져 있는 아빠 손을 잡으며,
    나는 말했다. “아빠, 병원에 가자.
    다른 조치 전혀 안하고 진통제만 맞자.”
    아빠는 통증이 너무 심해 한계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 아빠는
    허탈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래 가자. 죽는 것도 맘대로 안되는 구나”
    튼튼한 빨래줄이 허망하게
    두번이나 끊어져버렸다는 것이다.

    동생이 본 풍경은 이렇다.
    옥상에서 아래를 향해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은가루가 뿌려진 듯 반짝이는 형체가
    보였다는 것이다. 1층에 가서 확인해보니,
    정말 거짓말처럼 빨래줄이 고운 가루처럼
    끊어져서 아빠 몸 위로 떨어져 반짝빤짝
    빛을 내고 있었단다.

    해가 뜨자, 자녀들은 병실을 알아보느라 바빴다.
    아빠는 다른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느라 바빴다.
    아들 등에 업혀 가야하는 병원에
    무슨 옷을 입고 갈지가 고민이라니...
    괜찮으니 그냥 가자고 재촉하는 자식들에게
    아빠는 말했다.
    “의사 선생님 뵈러가는데,
    이렇게 가는 건 아니다”
    그리고, 결국 옷을 갈아입었다.

    돌아가시기 하루전까지,
    편안 침대 위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걸음이 필요한 화장실을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면도도 잊지 않으셨다.
    돌아가시고 며칠 후,
    서랍에서 아빠가 쓴 편지를 발견했다.

    빽빽한 3장의 편지 속에는 세상의
    좋은 말은 다 들어있는 듯 했다.
    ‘1만시간의 법칙에 대한 강조, 풍랑을 견뎌야
    훌륭한 선장이 된다는 것, 사람은 서로 다르니
    차이를 존중할 것...’
    나중에 아빠의 신문 스크랩 뭉치를 발견하고
    생각해보니, 그 편지글은 아빠가 신문 속 좋은 글귀를 최대한 많이 전해주려고 애쓴 흔적이었다.

    아빠는 두달동안 누구보다 살아있었고
    나는 두달동안 누구보다 죽어가고 있었다.
    아빠는 누가 살아있고,
    누가 죽어있는건지 생각하라는 숙제를 주고
    떠나신 것 같았다.
    그리고, 난 긴 시간 답을 찾는 여행을 했다.

    내가 만난 멋진 돈키호테였던
    아빠는 지금도 하늘에서 바쁘실 거다.
    이젠 나도 다시 씩씩하게 내 길을
    걸어가야겠다. 아빠는 또 사고친다고
    뭐라고 하시겠지만,  항상 그랬듯 며칠 지나면
    큰 꿈을 가지라고 응원해주실 거다.
    멋진 돈키호테 아빠!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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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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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석님의 댓글

    최진석 아이피 (183.♡.22.121) 작성일 Date

    그렇게 크신 아빠를 가지셨었군요.... 무슨 말씀을 덧붙일 수 있겠습니까? 아빠를 맘껏 그리워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런 날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