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로그인
  • 참여
  • 자유게시판
  • 참여

    자유게시판

    격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한상도 (1.♡.46.95)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694회   작성일Date 23-02-05 21:24

    본문

    초록나라의 민수는 공놀이를 좋아했다. 평소처럼 공놀이를 하던 어느 날, 민수에게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네모난 경기장에 그물코를 이용하여 골대를 만들고, 발로만 공을 차서 넣는 경기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민수는 집으로 달려가서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경기, ‘격구’를 만들었다.


    민수는 자기가 만든 ‘격구’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같이 경기를 하며 놀았다. 시행착오 끝에 규칙과 경기방식을 조금씩 수정해나갔고, 어느 시점부터는 안정적으로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놀이로 자리잡게 되었다. ‘격구’를 본 다른 친구들도 흥미가 생겼고, 민수를 몰랐던 사람들도 함께 ‘격구’를 즐겼다. ‘격구’는 빠르게 전파되었고, 어느새 초록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즐기는 스포츠가 되었다.


    초록나라에서 ‘격구’가 대유행을 하자 주변의 빨강나라와 노랑나라, 그리고 파랑나라에서도 ‘격구’를 즐기기 시작했다. 점점 ‘격구’인이 늘어나자 동네마다 특수 규칙이 생기는 경우가 생기고, 이에 시비가 붙거나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생겼다. ‘격구’의 창시자인 민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격구협회’를 설립하고, 초대 협회장으로 활동했다. 민수는 경기 규칙을 문서화하고, 이를 표준화해 온 이웃나라에도 전파했다. ‘격구협회’는 초록나라의 동호회단체에서 금방 국제스포츠연맹의 지위까지 상승하게 되었다.


    ‘격구’의 인기는 점점 높아지고, 국제대회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에 ‘격구협회’는 국제대회를 창설했고, 이를 월드컵이라고 불렀다. 월드컵은 매년 열리는 대회로, 4국 중 어느 나라가 가장 ‘격구’를 잘 하는지를 겨루는 대회일 뿐 아니라, 사실상 각국의 국력을 겨루는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누구보다 ‘격구’를 사랑했던 민수는 당연히 초록나라가 우승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이상하게도 초록나라는 매 대회마다 2위 자리를 지켰다. 종주국의 자존심이 구겨질대로 구겨지자, 민수는 초록나라의 ‘격구’리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리그에서 훌륭한 선수들이 배출되어야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수는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세우고, 모든 리그 경기를 관전하기 시작했다. 민수의 눈에 보이는 초록나라의 리그경기는 엉망진창이었다. 훌륭한 선수들이 벤치에 앉아있고, 무능한 선수들이 경기를 뛰고 있었다. 그날부터 민수는 협회장 권한으로 선수들의 선발여부를 결정했다.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더 부여하고, 무능한 선수들은 경기를 뛸 수 없게 했다.


    그러나 민수의 눈에는 다른 문제도 보였다. 좋은 찬스 타이밍을 끊어먹는 심판들이 문제였다. 민수의 눈에 심판들은 공정한 판정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경기 자체를 망치는 주역이었다. 이에 민수는 경기의 판정을 공정하게 하기 위해 직접 판정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무능한 심판은 직접 배제시키고, 논란이 있는 판정에는 개입하였다.


    민수의 눈에는 감독도 문제였다. ‘격구’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감독들이 말도 안되는 전술을 짜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격구’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감독들을 직접 선임하고, 어느 팀에 배정될지도 직접 결정했다. 선수들의 훈련 방법도 민수가 직접 관여했다.


    그러자 한순간에 직장을 잃은 감독, 심판, 그리고 선수들은 생계가 막막해졌다. 겨우 직장을 유지하게 된 ‘격구’인들은 빠르게 상황판단을 하기 시작했다. 감독들은 민수가 좋아하는 ‘격구’ 스타일을 알아내려고 노력했고, 민수의 입맛에 맞는 전술을 짰다. 선수들은 민수가 좋아하는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을 따라했고, 심판들은 민수의 판정들을 하나하나 공부하며 민수의 뜻을 헤아리려고 노력했다.


    시간은 흐르고, 민수가 보기에 초록나라의 ‘격구’리그 수준은 꽤나 상승한 것으로 보였다. 이제 좀 국제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민수는 다음 월드컵이 기대되었고, 언제든 우승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신만만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 월드컵에서 초록나라는 4위를 기록하고, 단 한번의 우승도 하지 못했다. 민수는 충격에 빠졌다. 초록나라의 감독들, 선수들, 심판들은 민수가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었을지, 앞으로의 ‘격구’판이 어떻게 변화될지가 걱정되어 조마조마했다. 초록나라의 ‘격구’분석가들은 민수의 혼이 담긴 ‘격구’가 통하지 않았던 데에는 월드컵 심판들이 부정한 판정을 내린 것이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격구’의 가치가 훼손되었다며 혀를 찼다.


    그러나 빨강, 노랑, 파랑나라의 해설자들과 ‘격구’인들은 한목소리로 초록나라의 ‘격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들이 보기에 초록나라의 ‘격구’는 다양한 전술을 펼치지 못했다. 선수들의 스타일이 비슷비슷하다보니 다양한 경기흐름에 유연한 대응을 할 수도 없었다. 우승국인 파랑나라의 감독 철민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초록나라의 ‘격구’선수들은 골을 넣는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경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매스게임을 하는 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

    추천1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