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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생들의 비밀 : 역사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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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변지선 (123.♡.33.101)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70회   작성일Date 24-11-17 07:22

    본문

    핵티비스트로 활동하던 영택이는 호기심이 충만한 아이였지만, 머리는 좋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집이 어떻게 지어지는지 궁금해서 용감하게 ‘건축학개론’이라는 책을 사서 봤지만 어떻게 집이 지어지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택이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책을 찾아 보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호기심을 충족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형을 시작으로 친구의 부모님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친구네 부모님들의 직업은 매우 다양한 덕에 영택이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영택이의 친구 중 한 명은 늦둥이 외동아들로 아버지는 부장판사셨다. 그래서 사법 관련 이슈가 터져 궁금증이 생기면 책이나 뉴스를 보고 난 다음 부족한 부분은 현직에서 일하는 판사이신 친구의 부모님을 찾아가 여러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리고 항상 마지막에 하시는 말씀은 "서울대를 가지 못해서 실망했지만, 지방 국립대에서 남는 시간에 공부한 덕에 사법고시 패스할 수 있었어. 너희들도 어디에 있든 항상 열심히 공부를 하면 된다." 였다. 이외에도 방송국 PD, 여러 음식점을 운영하시는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군들의 이야기와 현실에 대해 접할 수 있었다. 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생생한 이야기였기에 영택이에게 가장 재미있는 세계였다. 이외에도 어느 부잣집으로 유명한 친구의 아버지에게는 ‘첩’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정도로 영택이 친구들의 주변 부모님들은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다 영택이에게 흥미로운 생각을 안겨준 친구의 아버지가 있었다. 언론과 관련된 이슈가 터졌을 때, H대학의 언론정보학과 교수인 친구의 아버지를 찾아가게 되었다. 어느 때처럼 영택이는 질문을 던졌고 친구의 아버지는 친절하게 답해주셨다. 그런데 친구의 아버지는 마지막에 푸념 아닌 푸념을 털어놓으셨다.

    “사실 나는 이 대학에 있을 정도는 아닌데,,” 

    수도권 내 유명 대학교 교수면 훌륭한 지식인 아닌가? SKY 정도 레벨의 대학교 교수가 되길 바라시는 건가?

    또 다른 친구의 아버지 또한 대학 교수셨는데, 그분은 다른 말을 던지셨다. 

    “너희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해. 사실 나는 ‘국박’이라는 타이틀이거든. 그래서 남들이 1개의 논문을 낼 때 나는 3~4개의 논물을 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놀라더라도. 내 타이틀만 보면 다들 외국 유명 대학의 박사 출신인줄 아는 데 말이야.”

    영택이는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생생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이는 핵티비스트 활동을 할 때에도 계속 유지되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생각을 전해듣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 중에서도 영택이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어느 주간지의 마지막 페이지 글이었다.

    ‘일본인들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교육 받는다.’ 라는 논조의 글이었다.

    영택이는 이 사실이 궁금했다. 정말 일본 역사 시간에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교육시킬까? 그래서 영택이는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일본인과 대화하기로 결심했다. 찾고 찾고 찾은 끝에 한국 드라마, 예능을 일본어 자막으로 번역하는 사람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의 이름은 카즈키, 성은 모른다.

    “카즈키님 안녕하세요? 저는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궁금한데요. 혹시 한국에 오시면 일본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나요? 먹고 싶으신 한국 음식 다 사드릴게요!”

    하지만 영택이가 친구들의 아버지와 만났을 때처럼 일사천리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카즈키는 바빴는지 내 메일에 답신하지 않았다. 

    "하이 카즈키! 반가워요! 나는 한국인 영택! 난 일본 여행을 통해 일본 도모다찌를 만들고 싶다데수!! 하지만 와타시는 니혼고 실력이 부족해 부끄러이마셍!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일본 정보 구다사이!“

    영택이는 전략을 바꿔 친근한 일본어를 섞어서 썼음에도 카즈키에게 답신은 오지 않았다. 

    “카즈키님, 저는 일본에 대해 궁금한 게 참 많은데요. 우리 나라에는 일본과 관련된 서적도 없고 저는 일본어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일본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요. 저에게 시간을 내주신다면, 먹고 싶으신 음식 다 사드릴게요.”
     

    그제서야 내 메일을 읽었는지 카즈키에게 답신이 왔다.

    “죄송합니다. 이제 메일을 봤어요. ㅇㅇ월, ㅇㅇ일에 한국에 갈 예정이고 하루가 비네요. 그때 시간 괜찮을까요?”

    “그럼요! 음식은 어떤 거 먹고 싶으신가요?”

    “저는 한국의 오리고기를 먹고 싶습니다.”

    “좋아요. 제가 오리고기 사드릴게요.”

    약속의 장소, 정해진 시간이 되자 멀리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누가봐도 일본인. 정리하려 했지만 정리되지 않은 듯한 덥수룩한 머리, 면도기를 잃어버려 이틀 동안 면도를 하지 못한 수엽자국, 샤프한 얼굴형, 내 눈치를 보며 수줍게 다가오는 태도. 누가봐도 카즈키였다.

    “반가워요 카즈키! 나는 영택! 그럼 오리고기 먹으러 가볼까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오리고기 집을 향하는 길부터 오리고기를 먹으며, 일본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처음부터 역사와 관련된 주제를 던질 수 없으니 가벼운 대화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주로 어디로 취업하고 싶어하나요?”

    “음.. 제 친구들을 보면 파나소닉이나 소니 같은 대기업을 좋아해요.”

    ‘뭐지..? 일본은 대기업 못지 않게 더 나아가 대기업보다 급여를 많이 주는 강소기업들이 많은데,, 문돌이인가?’ 

    영택이는 다소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문과 쪽은 어디를 많이 지원하나요?”

    “제.. 친구들을 보면 언론사나 잡지사 같은 쪽을 많이 갔어요.”

    “아 그렇군요.. 사실 일본에는 히든 챔피언으로 분류되는 강소 기업들이 많아서 그 부분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거든요.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일본에서 부품을 산 다음에 잘 조립하는 방식이어서요. 마치 미니카를 잘 조립하는 것처럼요.”

    “네~ 그렇군요~”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오지 않자 영택이는 실망했다.

    ‘이 사람.. 일본인 맞나?? 그렇다! 이 사람은 한국 예능과 드라마만 보느라 일본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칙쇼!ㅠㅜㅠㅜㅠ’

    *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더 필요한거 있으시면 말하세요.”  

    약속을 했으니 오리고기를 사줬지만 영택이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실패한 인터뷰였을지도 모른다. 

    “저.. 맥주도 같이..”

    아는 게 없는 일본인 카즈키는 염치도 없었는지 음침하게 부탁했다.

    “아~ 그럼요. 다 드세요! 콜라도 사이다도 소주도 맥주도 다 말하세요. 이게 한국인의 정입니다! 밥을 사기로 했으면 그 사람이 배부를 때까지 만족할 정도로 주문하는 것이죠!! (어떠냐? 대한민국의 이것이 정 문화다!! 부럽지??? 캬하하하!!)”

    “감사합니다!”

    영택이는 본전을 뽑기 위해 마지막까지 감춰놓았던 질문을 던졌다.

    “조금 민감한 주제인데, 일본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교육한다는 글을 봤거든요. 그거 진짜인가요?”

    “음.. 안중근이 누구죠? 독립 운동가인가요?”

    “네.”

    “음..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때 당시의 역사를 배우기는 하지만, 안중근이라는 인물까지 깊게 들어갈 정도로 다루지는 않아요.”

    “아~ 그렇군요.. (이런 칙쇼..!! ㅠㅠ 역시 넌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그런데.. 제가 도쿄대에서 공부할 때 들었던 말이 있어요.”

    “아 .. 네 .. (어쩌라고 아는 것도 없는 넌!! 도쿄대의 수치다! 일본으로 가서 락교나 먹어라!)”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석기시대에 나온 유물은 그 시대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역사는 달라요.”

    “음.. 그렇게도 볼 수 있군요?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순간, 넌 도시락 폭탄을 맛보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역사라 하는 건은 석기시대 유물이 아니라, 역사라는 재료를 바탕으로 현대인들이 다시 쓴 것이에요. 다시 말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쓰여지고 필요에 따라 다시 받아들여지죠. 위인들이 그런 존재들이고요.”

    “아..네..”

    이과, 공돌이 영택이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깊어질 수록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일본도 제 2차 세계대전 전, 다시 말해 일본제국에 대한 인식은 현대에 들어서 바뀌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슬로건이 <뛰어들자, 1억의 불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일본의 인구는 1억 명이 아니었어요. 조선과 대만 등의 식민지를 포함한 제국의 총 인구를 말한 것이죠. 이렇게 보면 일본은 단일민족이 아닌 다민족주의를 추구한 것으로 보여지죠. 하지만 이건 잘못된 해석이에요. 조선인과 대만인을 일본의 국민으로 집어넣어 전쟁에 동원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죠. 다시 말해 역사는 절대적 진리가 아닌, 이를 서술하는 자가 시대적 상황과 어떻게 관계를 지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이에요.”

    “오…그렇네요. 맥주 한 병 더 주문할까요?”

    카즈키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맥주잔을 모두 비운 뒤 말을 이어 나갔다​

    “이어서 말하자면, 역사를 왜곡해서 정치적 요구에 영합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물론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역사적 상황을 꿰뚫어 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요.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생활과 당시 권력자들의 행동, 모든 전쟁의 세부적인 사항 그리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포착할 수 없죠. 연구를 통해 논문을 쓰더라도 이 방대한 사료들을 모두 취합할 수 없죠. 결국 생략하고 도식화를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방향이 달라지기 마련이에요.”

    “오…(역시 도쿄대.. 스바라시!)”

    영택이는 카즈키의 맥주잔이 비워질 때마다 조용히 따라주며 이야기에 경청했다.

    “요즘은 다민족국가를 다양성의 가치를 품은 것처럼 보여지잖아요? 하지만 남아공은 다민족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이 만연했죠. 그리고 여느 다민족 국가들은 침략전쟁을 일삼았고요. 그러니 다양성을 품었다는 게 꼭 가치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동안의 일본은 단일민족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은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을 포함한 다민족국가를 지향하다 세계대전 패배 이후 자신감을 잃고 단일민족으로 돌아가자는 논조가 지배적이었기에 이런 생각이 등장하게 된 것이었어요. 그리고 1980년대 다시 다민족국가라는 개념이 정착하게 되었고요. 세계대전 패배 이후 국경을 넘는 것이 나쁘다는 역사관을 바탕으로 단일민족주의를 추구했지만, 이제는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다민족주의 역사관이 지배적이죠. 다시 말해, 역사관은 지금을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어렵네요. 그러면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거죠?”

    “제가 배운 바에 따르면,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을 인식해야 해요.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해체하는 과정을 거쳐야 지금을 다른 시각으로 파악할 수 있고요. 역사를 나만의 시선으로 볼 수 있어요. 저는 조선의 독립운동가가 테러리스트라고 교육 받지 않고 이렇게 교육 받았어요.”








    쓰다가 끝낸 이유 아침밥 먹을 시간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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