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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인식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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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한상도 (1.♡.46.95)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06회   작성일Date 24-10-25 21:56

    본문

    이번 글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삶을 인식한다는 것’, 즉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은 인식 능력에 따라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인식하는 자

    2. 느끼는 자

    3. 공허한 자

     

    각 단계별로의 인식 수준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축구공을 인식하는 차이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인식한 자와 느끼는 자의 차이는, 대상을 얼마나 지적으로 인식하느냐로 나뉜다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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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인식의 대상을 ‘축구공'에서 ‘존재(자기 자신)’로 옮겨보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얼마나 인식하느냐가 자기완성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를 그래프 형태로 그려보겠습니다. (해당 그래프는 각 부류의 인물들이 삶의 매 순간에 경험하는 인식의 범위를 나타냅니다. 많은 과장과 비약이 들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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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해 공허한 사람은, 나와 남 사이를 갈팡질팡 하며 살아갑니다. 자기 완성과 거리가 가장 멉니다.

    자기 자신의 존재를 느끼는 사람은, 공허한 자보다 훨씬 더 자기 자신에 가깝고 자신을 잘 압니다.

    자신을 완전히 인식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매우 높은 인식능력을 가집니다. 자기 완성의 정도도 가장 높습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점은, 각 부류의 인간들은 사실상 다른 종과 다름 없다는 점입니다.

    공허한 자는 존재를 느끼는 자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존재를 느낀다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는 감각되는 일이기에 언어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존재를 느끼는 자는 공허한 자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번도 공허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고, 자신이 속한 곳에서 빛을 내고 있습니다. 높은 생산성을 보여주고 스스로가 삶이 충만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존재를 인식한다는 말에 크게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은 평생 소통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각자가 서로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차이를 인식하게 된다면, 많은 갈등과 오해가 해결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느끼는 자와 공허한 자 모두 자신을 인식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한다면 만족감으로 충만한 삶을 더욱 오랫동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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